사정기(23)_도를 믿으십니까

'요즘 학교 어때요? 힘들죠?'에 답변하기 위한 '사회정서교육 연구기'

by 최순돌

2025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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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일이다. 단짝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한문 과목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어느 정도 이상의 성적은 절대 안 나오네. 너는 어떻게 100점을 맞냐?"


한문은 주요 과목이 아니었던지라, 내가 고등학생일 때도 학생들은 한문을 등한시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우리 한문 선생님께서는, 체벌이 만연하던 그 시절에도 학생들을 때리지 않는 유일한 장년의 남자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체벌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보통 그분을 우러르기보다는 만만하게 보았고, 수업 시간에 잠을 자도 맞지 않는 유일한 수업이라는 이유로 많이들 대놓고 잤다. 한문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나와 내 친구를 빼놓고는 모두 엎드려 있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오래도록 버스운전을 하는 기사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새벽 출근을 위해 당신의 취침에 방해되는 모든 빛과 소음을 9시 정도부터 차단하는 것이 우리 집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 잠에 들었고 충분한 시간을 잤다. 얼마나 충분한 수면이었냐면, 학교에서는 아무리 지겨운 수업을 들어도 차라리 선생님의 얼굴만 빤히 볼뿐, 잠은 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한문 수업을 열심히 들었고, 한문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며 수업을 참 열심히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한문 시간에 배운 것들이 다 사는데 필요한 중요한 문장들이었다.


세종대왕님은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뜻을 실어 펼쳐낼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문자이자 문자체계인 '훈민정음'을 만드셨다. 그런데 훈민정음에 반대하던 신하들의 반대 사유 중에 하나가, 한글은 음운을 조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글자 하나에 이치를 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자가 나름의 큰 장점이 있었다. 한자가 쓰기에 어렵기는 하지만, 글자 하나에 이치가 담겨 있다는 것도 가만히 수업을 듣던 그 한문 시간에 배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우선 그 문장들을 믿고 외웠다. 오죽 좋은 문장들이면, 우리나라만의 글자가 없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업시간에 다루겠는가?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글자이자 그 글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모아낸 문장들에 대해서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한문만큼은 나의 이러한 무비판적인 선입견을 바탕으로 모든 분량을 달달 외우는 공부법을 실천했고, 그 결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내게 한문 공부 비결을 물어본 그 친구도 결국 나랑 아침부터 화장실에 앉아 한문책을 달달 외운 덕분에 나중에는 자기 스스로도 후회 없는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해서 남은 것이 한문 성적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 달달 외운 옛 성현들의 말씀들이 나의 마음속에 남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데 계속 비빌언덕이 되어주었다.


김윤경 선생님의 책에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인성교육의 사회정서교육적 가치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사회정서학습은 우리의 전통적인 인성교육과 맞닿은 측면이 많다. 예를 들어 자기 인식에서 출발하는 사회정서학습의 다섯 가지 역량은 수신(修身)으로부터 출발하는 유·불교 전통과 연관이 있고, 전통적으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강조해 온 우리에게 친숙한 면이 있다. 또 전통적인 인성교육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나 중용지도中庸之道와 같이 자신의 도덕적 정서를 인지하고 조절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 또한 자기 인식과 자기 관리 역량 함양을 중심으로 한 사회정서학습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고등학교 때 한문 시간은 사실 그 시절 거의 유일한 사회정서학습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전공이 국어교육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교부터는 한문 공부를 할 기회가 생각보다 없었다. 그런데 내가 또 스승이나 공부 복은 제법 있는 모양인지, 우리 과에서 10명이 겨우 모여 폐강을 면한 한문 수업을 들으며 고등학교에서 익혔던 좋은 말씀들을 이어서 대학교에서도 익힐 수 있었다. 마침 그 좋았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던지라 서재를 오랜만에 뒤져 보았는데, 대학교 때 한문 시간에 쓴 교재가 아직도 서재에 있었다.


오랜만에 펼쳐본 지난 한문 수업 교재 안에서의 나는 지금의 내가 존경해도 될 정도로 지고지순하게 주어진 문장들을 믿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쪼아가며, 공부하고 또 마음에 새기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더 쓸모 있는 공부, 더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공부들에 밀려 더 이상의 경전을 믿고, 외고, 따르는 공부가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이 브런치를 쓰는 것을 계기로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의심 없이, 이것은 나에게 사회정서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옛 문장 읽기부터 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정서교육!

아침에 옛사람이 남긴 좋은 말씀을 귀하고도 감사하게 여기며, 한 번씩 천천히 읽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실천이 될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겠다.

이것이 사회정서교육의 도라면, 나는 오랜만에 의심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그저 믿고 따르겠다고 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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