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새벽 한 시 반이다.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 느닷없이 눈이 떠졌다. 내 방 맞은편에 있는 동생 방에서 게임 소리가 들렸다. 겜돌이 동생은 군을 전역한 후, 복학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학교를 못 가고 이미 밤낮이 바뀐 올빼미 생활을 하고 있어서 자주 내 수면을 방해한다. 너 때문에 깼다고 뭐라 뭐라 한소리를 한 뒤 방으로 돌아와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런데 계속 트림이 나오고 속은 꾸륵꾸륵 불편해서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동생은 다시 게임에 열중하면서 시끄러워지고 내 속은 트림 때문에 시끄러워지고. 이건 뭐, 대환장 콜라보였다.
잠을 못 자니 예민한 상태에서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짜증이 났다. 당장 내 몸이 나아서 하루아침에 이 고통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자고 싶은데 잠을 못 자니까 그냥 이대로 아침이 빨리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무력했다. 누우면 역류하는 상황인지라,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주님한테 힘들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계속해서 얘기했다. “주님 나 너무 힘들어요. 빨리 나아서 푹 자고 싶어요.”
어느새 시간은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맞은편 방에 있는 동생은 게임을 끝내고 잠들었는지 조용했다. 가족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나만 홀로 깨어있는 시간이었다. 눈은 푹 꺼질 듯이 무겁고 몸은 천근만근이었는데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트림도 계속 나왔다. 시간이 꽤 흘렀으나 잠을 못 자고 있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님 앞에 나의 고통을 계속해서 쏟아놓으니 어느 순간 불안한 생각과 마음이 아주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리고 오늘 이 밤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잠을 못 자는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지 않을까. 병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다른 이의 잠 못 드는 밤도 생각할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았다.
위산이 역류하다 보니 트림이 쉴 새 없이 나와서 잠을 못 자게 됐지만, 문득 트림이라는 가스를 내 몸에 품고 있는 것보다 배출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속상한 날, 시원하게 울고 나면 좀 나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를 괴롭히는 트림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고인 물은 썩듯이, 속으로 곪는 것보다는 바깥으로 드러난 것이 나을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속으로 곪아왔던 것이 이번에 터진 것일 수도 있겠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언뜻 핸드폰으로 시간을 봤을 때 5시가 좀 넘은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트림이 나와서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들었던 역류 상태는 아까보단 나아져있었다. 하루를 꼴딱 샜더니 몸은 지치고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편안해진 상태로 잠들 수 있었다. 현재 백수라는 것에 감사했다. 밤에 못 잤더라도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으니 말이다. 잠을 못 자는 건 분명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내겐 여러모로 잊지 못할 밤이었다. 트림에 대해서도 내 몸 안에 나쁜 것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니까 마냥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을 해도 잠이 안 올 때는 억지로 자려고 하기보다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는 것도 좋겠다.
우연히 네이버 클립에서 「공유의 베드 타임 스토리」를 듣게 되었는데, 1화에서 헤르만 헤세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잠 못 이루는 밤에 대해 어떻게 말했을지 궁금해서 귀 기울여 들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괴로워해 본 사람은 안다. 불면증은 내면의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
이 대목에서 특히 공감이 되었다. 불면증의 고통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알려주는 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반가웠다. 헤르만 헤세도 잠 못 이루는 밤이 가치 있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이유로든(설레고 들떠서 잠들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의 삶을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잠은 푹 자야겠어서 열심히 알아본 끝에, 역류성 식도염 베개를 주문했고 오늘 도착했다. 부디 숙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