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누군가 말했다. 자율적 집순이와 강제 집순이는 다르다고. (집돌이도 마찬가지) 나는 워낙 약골에다가 체력도 바닥이기 때문에 외출을 하고 나면 몸이 급격히 피로해져서 집에서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정이 없는 날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침대와 하나가 되어서 뒹굴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기도 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쉴 때는 왜 이렇게 시간이 금방 가버리는지.
그래도 완벽한 집순이는 아니었다. 집에서만 있는 이틀째가 되면 답답해져서 바깥바람을 쐬러 잠시 옥상에 올라가거나 집 앞에 있는 마트라도 갔다. 그땐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섭지 않았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집 안에서 쉬고 싶으면 쉬고, 자율적 집순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이불 밖은 위험해졌고 필요한 외출을 제외하고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강제 집순이가 되었다. 하루는 낫지 않는 역류성 식도염으로 진료를 받으러 동네 내과에 간 적이 있었는데, 열이 높아 진료를 해줄 수 없다며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셨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하루가 아주 길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혹시나 코로나에 걸렸다고 하는 건 아닐까, 그러면 어떡하지. 오만 생각을 하면서 집 밖을 못 나가니까 집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전화로 결과를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강제 집순이라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 19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내겐 그보다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병이 더 큰 장애물이 되어 강제 집순이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 이유는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해 하루 종일 크게 트림이 나오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웠다.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나는 트림이 제일 심했다) 이 병에 걸리기 전에는 길거리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어르신들이 대놓고 방귀를 뿡뿡 뀌거나 트림을 꺽꺽하는 모습을 보면 매너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는데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까 너무 괴로웠다. 보통 우리는 식사를 한 뒤, 음식물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트림이 나온다. 그런데 상상해보라. 그 트림이 두세 번이 아니라 하루 종일 나오면 어떠하겠는가. ‘하루 종일’이라는 말에 과장은 보태지 않았다. 평범했던 일상생활은 병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위산이 역류하다 보니까 내 의지로 트림을 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떤 날은 트림이 너무 심해서 호흡곤란을 느끼기도 했다. 보통 잠들기 전에 가장 심했는데 누우려고 하면 트림이 끝없이 나오다 보니,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을 자는 순간까지 트림이 나와서 내일 일어날 때는 제발 트림을 멈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은 트림이 멈췄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꺼억-’ 하고 바로 나오는 트림 소리에 실낱같은 희망은 무너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병이 계속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과연 이 상태로 취업은 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면접을 보는 동안 열심히 트림을 참아내서 취업이 된다 하더라도 8시간 근무를 하면서 평일 내내 트림을 조절할 수 있을지, 내 몸이 감당할 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도 쉽게 무기력해지는 편인데, 두 달이 넘도록 낫지 않는 병 때문에 더 자주 무기력을 느꼈다. 동네 한의원에서 20만 원을 내고 3주간 먹은 한약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더 길게 복용하기에는 백수로서 돈이 부담스러웠다. 더 먹는다고 확실히 낫는다는 보장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내과를 찾아서(세 번째 병원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주신 약을 2주 정도 복용했는데 효과가 아주 미미했다.
밥의 양도 절반으로 줄이고 건강하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위주로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마른 상태에서 볼품없이 살만 더 빠졌다. 집에서 운동도 하고 뒷산도 산책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으로 하고 있는데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낫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하는 마음에, 습관적으로 유튜브에 역류성 식도염을 검색했는데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게 근본적인 답이라는 앵무새 같은 소리만 흘러나왔다. 병이 나으려고 매달릴수록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며 더욱 무기력에 빠졌다. 이미 길어진 병을 어떻게든 빨리 나으려고 조급하게 마음먹어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한없이 우울해지려고 할 땐, 웃긴 영상이나 즐겨보는 웹툰도 보고 싶지 않았다.
역류성 식도염은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내 책임이 크겠지만, 하나님한테 왜 낫지 않게 해 주시는 거냐며 원망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기도에 침묵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날은 엄마한테 너무 지친다며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글을 쓰면서 아프고 괴로운 내 감정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렇게 자꾸만 늪으로 빠지는 생각을 건져 올리려고 애를 쓰면서 이 상황이 얼른 넘어갔으면 하고 바랐다. 그래도 좋아질 거라고,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아지는 중이라고 내 마음에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