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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Oct 10. 2020

의미 있는 방황

꿈은 이루어진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표적인 응원 문구였다. 그 당시 나는 초등학생 2학년이었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집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온 마음으로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골이 들어가면 환호성을 지르고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그때 이후로 18년이 지나 지금은 27살이 되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지금 나의 모습은 그 당시 내가 꿈꾸던 모습이었을까. 사실 그 나이에 내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9살의 나는 그저 친구들과 학교 앞에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집에 와서는 투니버스를 보며 만화 속으로 빠져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9살의 내 모습이 까마득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강렬하게 남았던 월드컵이었다. 그때 사람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각자의 꿈은 다르겠지만 경기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나라가 승리를 거머쥐기를 한마음으로 꿈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우리나라가 4강 신화를 기록하도록 만들었다. 경기를 직접 뛰었던 선수들과 감독은 물론이고 그것을 간절히 꿈꿨던 사람들의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꿈, 도전, 열정. 참 멋진 단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으로 빛나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부러웠다. 나도 분명 꿈이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을 때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맛있는 빵을 먹을 때는 나중에 빵집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어렸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마다 꿈이 달라졌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하다.

그러다 어느 날, TV에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말썽꾸러기였던 아이가 달라지고 결국 가정까지 변화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상담사가 굉장히 멋져 보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그분은 오은영 박사님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나름대로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하면서 대학교에서는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이 길을 계속 걸어왔다.


그런데 길을 열심히 걷다 보니 내가 이 길을 계속 걷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맞을까?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미로에서 헤매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헤매고 있는 나와는 달리 자신의 꿈과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며 멋지게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럽고 그에 비해 나는 뒤처지는 것 같아서 초라해 보였다. 사회에 나오기 전에 좀 더 많은 경험을 해볼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계속 신세 한탄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진로 탐색 차원에서 직업 관련 심리 검사나, 적성검사를 해봤다. 나의 성향에 대해 어렴풋이 알 수 있는 자료였지만 내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진 못했다. 도전을 꿈꿨지만, 겁이 많은 졸보여서 전공이 아닌 다른 길로 가는 게 두려웠다. 실패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처럼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에게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고, 우린 아직 젊다고 얘기했지만 정작 나는 방향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작정 아무 일에 뛰어들기에는 시간 낭비로 느껴졌다.

고장 난 신호등처럼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을 만난 기분이었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억지로 미래를 그릴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나는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스스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건 무엇이었는지 질문했다. 적성검사도 주변 사람의 말도 단지 참고사항이었다. 타인에게 기준을 맞춰서 반강제적으로 했을 때보다 내가 하고 싶어서 도전하고 성취를 이뤘을 때, 작지만 그 노력을 인정받았을 때가 훨씬 즐겁고 뿌듯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내가 예전에도 지금도 좋아하는 게 뭘까 하고 계속 질문을 던진 끝에, 작지만 한 가지 발견한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잘 쓴다고 자신할 수는 없겠지만, 좋아하는 건 맞았다. 사회복지 기관에서 계약직 1년을 마치고 퇴사했다. 나에 대한 글을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때 마침 아는 언니가 글쓰기를 같이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어쩜, 타이밍이 참 신기했다. 나에겐 당연히 고마운 제안이었고 아는 동생과 그 언니와 셋이서 소규모의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지만, 기록은 남았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글로 남겼을 때,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고 더욱 깊어졌다. 어떤 날은 글을 쓰다가 혼자 감동해서 울기도 하고 생각의 영역이 확대되어 신기하기도 했다. 낫지 않는 병으로 마음이 힘들어지면 글을 쓰며 위로를 받았다. 글을 쓰는 자체가 마냥 즐거웠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하면 여전히 막막하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를 찾았으니 아무렴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하는 자신감이 조금 생긴다. 대책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꿈꾸는 자는 멋지다. 그들이 멋진 이유를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기 일에 확신과 자신감이 넘치고, 눈이 빛나 보이는 사람이 멋지다는 걸. 그것은 직업과 상관없었다. 위치와도 상관없었다. 어떤 일을 하든 그런 사람은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내가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 내가 참으로 행복하다면, 그 인생은 가치 있다.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방향을 바르게 맞추는 것이 중요할 테니. 지금의 방황도 분명 의미 있는 과정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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