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릭 Oct 17. 2020

고슴도치여도 괜찮아

쉽게 상처받는 여린 마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별일 아니었는데,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오랜만에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방 안에서 TV를 보고 계시던 아빠가 페달을 밟고 조용히 쳐 달라고 하셨다. 가운데 페달은 이미 밟은 상태였는데 아빠한테는 소리가 크게 들렸나 보다. 조금 작게 치겠다고 하면 될 텐데 나는 그 말에 마음이 뾰족해져서 “엄마가 피아노 칠 때는 아무 말씀 안 하시더니, 왜 저한테만 그렇게 얘기하세요?”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제가 피아노 치는 건 시끄럽고 못마땅하냐고, 아빠는 나한테만 뭐라 하시는 것 같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가슴속에 쌓였던 아빠에 대한 응어리가 나도 모르게 툭 하고 튀어나왔다. 가부장적인 아빠는 자녀에 대해 엄격한 교육 철학을 갖고 계셨다. 첫째도 예의, 둘째도 예의, 셋째도 예의였다. 아빠 기준에서 예의에 벗어난 언행으로 판단되면,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사랑의 매라고 불리는 회초리를 맞으면서 자주 꾸지람을 들었다.


누군가 형제가 있냐고 물으면 위에는 오빠, 밑에는 남동생이 있다고 대답했고 그 말에 혼자 딸이어서 사랑을 많이 받겠다고,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여자라고 봐주는 건 없었다. 똑같이 맞으면서 컸다. 아니, 사실 내가 느끼기에는 오빠랑 남동생보다 더 많이 맞았던 것 같다. 너는 왜 그렇게 예의가 없냐며. 억울했다. 아빠가 보기에 내가 묻는 건 왜 다 말대꾸로 보이는지, 내가 정말 그렇게 기본이 안 된 인간인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아빠에게 받은 상처는 낫지 않고 혼날 때마다 겹겹이 쌓여갔다. 내 안에는 그런 응어리가 있었기에 작게 피아노를 쳐달라는 아빠의 부탁이 나를 지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빠는 너한테만 그런 게 아니고 엄마는 손가락에 힘이 없어서 피아노를 칠 때 그렇게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갑자기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렇고 너는 딸이라고 했다. 아빠는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씀하셨지만 나는 순간 무슨 뜻인가 싶었다. 나는 ‘그냥’ 딸이라는 건가. 마지막 말에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나왔다. 아빠한테 "그럼 엄마는 사랑하고 나는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질문이었다. 농담 삼아 그렇게 말한 거라고 하셨지만 나에겐 농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빠가 툭 내뱉은 말 한마디가 가시처럼 나를 찔렀고 그동안 괜찮다고 어설프게 덮어놓았던 마음을 들춰보니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마음이 아프고 쓰렸다. 나는 그 한마디에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 방문을 닫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다. 아빠는 늘 나를 못마땅한 딸로 여기는 것 같았다. 엄마한테 대들고 예의가 없는 딸. 그게 아빠가 보는 나의 모습인 것 같았다. 최근에는 아빠랑 부딪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관계가 전보다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한 발 나아간 줄 알았는데, 조금 성장한 줄 알았는데 거울 속에 울고 있는 내 모습은 여전히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날카로운 말을 던지면 가볍게 넘어가지 못하고 그 말이 나를 깊숙이 찌르고 상처로 남았다. 정작 그 말을 던진 사람은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고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나는 곱씹으면서 힘들어했다. 그래서 한껏 예민해져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다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내가 세운 가시가 나를 찌르는 줄도 몰랐다. 사실 아빠가 하신 말이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일 말은 아니었는데 머리로는 알면서도 너무 속상해서 계속 눈물이 나왔다. 방 안에서 혼자 우는 것이 초라하고 서글퍼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휴대폰으로 잔잔한 찬양을 틀었다. 주님께 너무 슬프고 속상하다고 울면서 얘기했다.


기도하는 것으로는 내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서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아무 종이에다가 지금 드는 생각과 내 마음을 글로 적어 내려갔다. 눈물을 쏟으면서 적다 보니 주님께서 나를 따뜻하게 어루만지시고 포근하게 안아주시는 것 같았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토닥이면서 괜찮다고 위로해주시는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엄마가 방문을 여시 더니, 아빠가 부른다고 하셨다.


아직 아빠에게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기에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갔다. 아빠는 늘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아빠는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울면서 말했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생각들, 쌓여있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털어놓았다.


아빠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어쩔  없고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셨다. 그리고 작은 말에 쉽게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하셨다. 아빠의 말에 ‘저도 사랑해요.’라는 말은 나오지 않아서 “네”라고 짧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울면서 내 속에 있던 얘기를 하고, 아빠의 마음도 들으면서 아까보다 한결 나아졌다.






고슴도치같이 예민한 내가 싫었다. 작은 말에 상처 받고 아파하는 내가 싫었다. 그래서 늘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고슴도치인 내가 힘세고 용감한 사자로 바뀔 수는 없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포장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는 없다.


여전히 내가 고슴도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작은 말에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내면이 치유되고 힘이 생긴다면 굳이 나를 보호하려고 가시를 있는 힘껏 세우고 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빠한테 조금이나마 나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과거에 받아왔던 상처가 조금은 치유되어서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나의 변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빠의 변화도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너는 말투가 왜 그러냐고, 어른한테 버릇없다며 혼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빠도 고슴도치였다. (고슴도치 아빠에 고슴도치 딸이다) 그런 아빠가 내게 먼저 사과를 건넸다.

 

계속 참기만 한다면 상처는 낫지 못하고 곪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모르는 순간에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드러낼  있다면 치유의 시작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아직은 작은 말을 곱씹고 또 곱씹는 일이 많지만 조금씩 웃으면서 넘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주변 사람 이전에 내가 제일 아프고 힘들 테니 말이다.


누군가 가볍게 던진 말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나만 아프고, 나만 힘들고, 나만 상처받은 것처럼 느껴질 때, 나의 상처만 바라보며 한없이 자기 연민에 빠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나에게만 향해있는 시선을 위로 들어 주변을 둘러보기를 원한다. 내 안에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여유가 생긴다면 가시를 눕히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나와 같은 고슴도치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으리라.

이전 10화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