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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Oct 23. 2020

첫 직장의 쓰라림

초짜 신입의 미숙함

오전 9시 정시 출근까지 15분 정도 남았다. 회사까지 달려가면 세이프할 수 있을 것 같다. 지하철에 내려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바로 신호등이 나온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익숙해서 어깨를 톡톡 치니까 직장 동료였다. 순간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었고 우리는 내리막길을 우다다다 뛰었다. 혹여 늦을까 봐 심장이 떨리는 느낌까지 생생했는데 꿈이었다.


퇴사한 지 2주 하고 반이 지났을 때였나. 출근하는 꿈을 꿨다. 진짜처럼 생생했지만 가짜였다. 몸은 회사를 벗어났지만, 마음은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여전히 회사에 대한 기억과 내가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곳이 내겐 첫 직장이어서 그랬나 보다. 뭐든 처음은 새로워서 기억에 강하게 남는 것 같다.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첫 직장생활이었기에 무엇을 하든 서툴렀고 실수도 많이 했다.


잘하고 싶은 의욕은 앞섰지만, 몸은 굼떴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면서 눈치를 살폈다면, 경력이 있는 동료는 나보다 한결 여유롭게 주변을 살피며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 빠르게 대처했다. 한마디로 나는 눈치를 봤다면, 동료는 눈치(센스)가 있었다.


직장에서 주는 월급의 몫을 해내려면 그냥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해야 했다. 나도 차분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반복되는 실수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내 모습에 한숨만 나왔다. 출근하는 아침 길에는 오늘 하루 잘해보자고 힘차게 마음을 다져도 또다시 실수하게 될 때면, 머릿속은 새하얘졌고 내 마음은 까맣게 어두워졌다.


어떤 날은 근무시간 동안 꾹꾹 눌러놓은 마음이 퇴근길에 풀어지면서 눈물이 나왔는데 눈물이 도통 멈추지 않아서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가 숨죽여 울기도 했다. 그렇게 울다가 감정이 정돈되면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사람이 가득한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울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처음 면접에 합격했다고 전화를 받았을 때가 기억이 난다. 얼떨떨하면서 기쁘고 내가 이제 직장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유능한 신입사원이 아니라 무능한 신입사원이었다. 열정은 있지만, 실력은 갖춰져 있지 않은 신입이었다. 계약직으로 1년을 보내면서 혼나고 또 혼나는 연속이었다. 못하니까 혼나는 건 당연했지만 그와 별개로 발전이 없는 내가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1년을 마치고 회사를 나왔다. 패기 넘치게 시작했던 첫 직장 생활은 마칠 때는 너덜너덜해져서 마무리를 지었다. 마지막 날까지도 정신없이 일을 마무리 지으면서 퇴근했다. 끝났을 때 시원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복잡한 감정들이 엉켜있었다.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 곳이었기에 나름대로 정도 들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일하는 동안 좀 더 잘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그곳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았다면 내면도 단단해지고 처음보다 실력도 좀 더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확신도, 자신도 없는 상태에서 견디기에는 힘이 없었다.


내게 첫 직장은 직접 부딪히지 않고는 어떤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신입사원에 대한 수많은 책과 조언이 있었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회사가 어떤지,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의 능력치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시험을 본 후,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일하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직면하는 게 두려웠고 피하고 싶었다. 학생 때는 어느 정도 넘어가는 게 가능할지 몰라도 직장인은 달랐다. 내가 계획하고 결정하고 행동한 부분에서는 온전히 내가 책임을 져야 했다. 다른 누가 대신해줄 수 없었다. 학교 다닐 때 용돈을 벌려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부모님의 울타리라는 보살핌 속에서 자라왔던 나는, 그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퇴사하고 백수가 되어 먼저 얻은 것은 몸과 마음의 쉼이었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와장창 깨졌던 첫 직장의 쓰라림을 위로하면서 보듬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애써왔다고 스스로 토닥였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미숙한 존재였다.


그전에는 그런 나에 대해서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봤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덤덤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런 나에게 1년 동안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회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버틸 수 있도록 의지가 되어준 사람들에게도 참 감사했다.




출처: 드라마 미생 공식 홈페이지

예전에 드라마 <미생>을 재밌게 봤었다. 바둑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장그래가 회사에 계약직으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그땐 학생이었는데도 마치 내가 회사원이 된 것처럼 몰입하면서 봤다. (아직 못 봤다면, 추천한다) 여러 명대사가 있었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드라마의 제목처럼,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라는 말이었다. 바둑에서 미생의 의미는 완전하게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드라마는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완전하게 살지 못하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앞으로 나는 몇 번을 더 깨지고 넘어질지, 얼마나 그것을 반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시간을 통해 더욱 단단해질 것이고 조금씩 성장할 것이다. 우린 아직 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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