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담사 세계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제일 예상치 못한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실적'이었다. 상담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실적이라니. 구인업체 및 구직자 상담, 알선, 사후관리 등 모든 게 숫자로 매겨져서 일일, 주간, 월간 실적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취업 실적의 압박은 마음을 쪼들리게 만들었다. 내가 하는 주 업무는 취업 상담이기 때문에, 상담과 알선 끝엔 결국 그 사람이 취업을 했느냐, 마느냐의 결과로 이어졌다.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서 상담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실적이 남아야 의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알선한 A가 다음날 모기업에 가기로 했다고 하자. 이때 A는 '채용예정'이 되는 건데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았다면, '채용 취소'가 되고 실적은 '0'이 되어버린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기운이 빠졌다. 일하면서 채용이 취소되는 일을 비일비재하게 겪다 보니, 처음보다 무뎌지긴 했다. 처음에 이런 일을 겪었을 땐, 종일 일하기가 싫었다. 알선취업 하나가 나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물론 그분도 나름의 사정과 고민이 있어서 결국 출근을 하지 않았겠지만, 내가 그분에게 들인 시간과 노력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는 게 꽤 힘 빠지고 슬퍼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게 실적 평가는 큰 스트레스임과 동시에 상담을 진행할 때 생기는 딜레마다. 그중 첫째로, 취업이 잘 나오는 직종과 그렇지 않은 직종은 분명 있다. 예를 들어 사무직은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 데 비해 청소나 요양서비스는 사람을 급하게 구하기 때문에 채용 결과도 금방 나오는 편이다. 실적을 빨리 채워야 한다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취업이 잘 나오는 직종만 찾아서 알선하게 된다.
두 번째, 질적 서비스와 양적 서비스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양적 서비스보다 질적 서비스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용자에게 매번 질적으로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게 쉽지 않다. 한 사람이 취업할 때까지 계속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 얕은 서비스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서 취업자가 나올 수 있도록 넓게 그물을 던지는 식이다. 양질의 서비스로 균형을 맞추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정답은 어렵다.
세 번째, 팀 전체 실적과 개인 실적이다. 실적은 업무에 따라 각자에게 할당되는 개인 실적이 다르고 각각의 개인 실적이 합쳐지면 팀 전체 실적이 되는 식이다. 실적을 얼마만큼 달성했는지 상반기, 하반기, 분기별, 심지어 월마다 평가를 받는다. 실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기준으로 개인과 팀이 평가를 받기 때문이었다. 또 개인 성과에 따라 연말에 인센티브가 달라진다. 팀 전체 실적을 생각하면 서로가 협동하면서 일을 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내 구직자가 따로 없고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면서 취업 업무를 하기 때문에, 개인 실적을 생각하면 누가 더 빠르게 알선하는지 속도전이 되고 경쟁 구도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적은 기관의 최고 관리자뿐 아니라 상위기관에도 평가를 받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음은 물론이다. 올 한 해 목표한 실적을 채워야 하는데 상반기에 많이 채우지 못하면 그만큼 하반기에 힘들어진다. 그리고 현재 그런 상황이다. 평가에 쪼들리며 허덕이고 있다.
실적 압박을 받게 되면 구직자가 취업했을 때, 기뻐할 새도 없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심정으로 그다음 알선을 해야 한다. 계속 다음, 또 다음. 언제까지? 이젠 개인 실적을 넘어 팀 전체 실적을 채울 때까지 계속 달려야 한다. 현대판 노예라고 한다면 너무 자조적인 발언일까. 내가 취업하기도 힘든데 남이 취업하는 건 얼마나 힘들겠는가.
며칠 전, 팀 회의 시간에 팀장님 왈 “단순히 숫자를 채우는 실적보다 질적인 서비스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했다. 맞다, 맞는 말인데, 지금 물을 퍼다 나르기도 바쁜데 질 높은 서비스를 요구한다. 오! 맙소사. 퇴사를 해야 하나. 끝나지 않는 딜레마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