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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May 16. 2024

내향인의 외국인 친구 사귀는 법

틀려도 괜찮다는 마음

돌고 돌아 결국, 처음 내가 원했던 어학원에 등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여기로 결정하는 거였는데. 어쨌든 등록하기 전에 상담을 받았는데 오전에는 발음, 듣기, 문법 수업으로 구성되고 오후에는 주제를 정해서 조별로 토론을 나누는 식으로 회화에 집중한다고 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수업이 진행되는 모습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들었다. 일단 규모가 큰 어학원이어서 도서관도 있고 식당과 공간이 넉넉한 라운지도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각자 자리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며 밥을 먹었던 이전 학원과 다르게 라운지에서 오손도손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였다. 사람이 많아서 기가 조금 빨리긴 했지만,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가 적막감에 숨이 막히는 것보다 나았다.

출처: Worldwide School of English


그렇게 해서 150만 원 거금을 들이고 한 달을 다녔다. 첫날 오전에 시험을 치고 그 결과 반을 배정받아 오후부터 수업을 들었다. 예전 학원에는 중국인 비율이 많았는데, 이곳에는 일본, 태국, 칠레, 스페인, 멕시코, 대만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내성적인 나는 그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진 못했다. 아침에 학원에 도착해서 'Good morning' 또는 'Hello'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부터 작은 도전이었다. 오후 수업을 진행했던 선생님은 자리를 바꿔가면서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거나 교실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질문하고 답하고 식의 활동들을 많이 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외국인과의 교류 또한 결국 인간관계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와 비슷한 결을 가졌거나 먼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들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하고 대화도 술술 나오는 반면, 나와 성향이 다른 친구들과 대화 짝꿍이 되면 그렇게나 어색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을 쥐어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오후 2시 반에 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 활동으로 탁구, 볼링, 농구 등이 있었는데 잘 참여하지 않았다. 사실 방과 후 활동까지 해야 내가 낸 금액의 뽕을 뽑을 텐데, 체육활동을 안 좋아하기도 하고 수업이 끝나면 이미 지쳐있었다. 수업을 같이 듣는 반 친구들 중에서도 어색한 친구들이 많은데, 아예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를 계속 갖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었다.



그래도 반에서 친해진 소수의 친구들과 맛집과 카페를 가기도 하고 주변 가게를 구경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등 소소하게 추억을 쌓는 시간을 가졌다. 한 달을 다니면서 두 번 정도는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첫 맛집은 내가 고른 한식집이었다. 외국인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


꼭 특별하게 시간을 가져야 친해지는 건 아니었다. 매일 보내는 일상에서 안부를 묻고 점심 도시락 메뉴를 묻는 등, 꾸준히 관심을 가지면서 친해지게 됐다. 물론 반 친구들이랑 전부 그렇게 하진 않았다. 첫날 오후 수업을 들으면서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던 태국 친구랑 친해지고 싶었고, 다음날 오전 수업을 들으면서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거절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엄청 용기를 내서 다가갔던 거였는데 고맙게도 'Yes'로 답해줬다. 자신의 남자친구도 있는데 같이 먹어도 되냐고 해서 그렇게 우리는 반 친구이자, 점심 메이트가 되었다.



가끔은 그 커플 외에도 다른 태국인 친구들이 합석해서 태국인들 사이에 나 혼자만 한국인이 되는 날도 자주 있었다. 태국어를 사용할 땐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가마니가 되어 가만히 있었지만, 그 친구는 나에게 영어로 통역해 주면서 신경 써주는 것이 참 고마웠다. 한 달을 다니고 졸업한 후에도 태국 친구와 가끔 연락하고 만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락을 이어왔다. 언젠가 한국에 여행 오기로 했는데 그때가 되면 치킨을 사주기로 했고 나도 태국에 놀러 가기로 했다. 국적도 나이도 사용하는 언어도 환경도 전부 다르지만 결이 비슷한 사람이라면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첫날만 해도 영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에 있어서 굉장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4주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 두려움을 깰 수 있었다. 영어를 말할 때 실수해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부럽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했는데, 내가 더듬거리면서 하는 영어를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려주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중에는 틀린 영어도 거침없이 내뱉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처럼 영어를 못하면 초반에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꽤나 위축될 수 있다. 안 그래도 내향적인 사람이 두려움까지 있으면 입을 다물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겐 파파고와 구글이 있다. 얼마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번역기를 돌려서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또한 어학원을 다니는 외국인도 영어를 엄청나게 잘하진 않는다. 그들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이기 때문에 어학원을 다니면서 영어를 배우고 있는 거다. 어차피 시험을 쳐서 같은 반으로 배정이 된 것은 수준이 비슷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위축될 필요도 없다. 조금 못하고 조금 잘하는 것에 크게 의의를 두지 않고 나는 나의 영어를 말하면 된다. 틀려도 괜찮다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 그 마음을 지니면 외국인 친구를 사귈 때도 더욱 열린 마음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많은 친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 나와 결이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되어있다. 




그렇게 한 달의 과정이 끝나고 그 주 금요일 졸업식 때 앞에 나가서 소감을 발표했다(이곳은 매주 금요일마다 오후엔 졸업식이 있고 일주일 과정만 등록해도 졸업식을 해준다). 떨리는 마음 가득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그때 내가 썼던 대본을 다시 읽어보면서 오늘 밑줄을 그어본다.



"저는 앞으로도 많이 틀리고 많이 실수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이 부딪히며 배우고 성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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