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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May 13. 2024

등록한 어학원, 하루 만에 그만뒀다.

내가 이루고 싶은 목적을 분명히 하자.

우울하고 외로운 상태가 지속되자, 이렇게 나를 내버려 둘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밖에 나가 뭐라도 해야 했다. 일을 구하는 것과 어학원을 등록하는 그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다. 대문자 P인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뉴질랜드 어학원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막연하게 다녀볼까 생각만 하고 무작정 왔었다. 어학원을 생각했던 이유는 언어 공부가 주목적이라기보다 현지 생활에 적응하면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알아보니 금액이 너~무 비쌌다. 학원 주제에 입학금도 따로 있었는데, 합쳐서 한 달에 약 150만 원이었다. 세 달을 다니면 좀 저렴하지만 여전히 비싸긴 마찬가지였다. 학원이 기숙사도 아니고 수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였는데도 그랬다.


아무래도 일을 먼저 구해야겠다 싶다가도 객관적으로 지금 나의 상태를 생각해 봤다. 영어도 안 되는 데다가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일단 학원을 다니면서 이 두려움을 깨는 게 더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쯤에서 워홀을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한국에 있는 동안 영어 공부를 철저히 하고 가시라고 조언드리고 싶다. 의지가 부족하다면 회화학원을 추천한다. 필자는 돈과 시간을 고려해서 인강을 결제했었는데, 결국 나중엔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한 달 어학원 다닐 수 있는 비용으로 한국에선 몇 달을 다닐 수 있다. 물론 비용적인 측면만 생각했다면 어학원에 등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 또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어학원을 다녀보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아무튼 생각했던 것보다 비용이 비싸서 고민하고 있는 중에 교회 집사님을 통해 어학원 한 곳을 소개받았다. 원장님은 인자하셨고  2인 1조로 청소를 하게 되면 학비를 할인해 주는 장학제도가 있다고 하여 그 말에 솔깃했다(그러면 안 됐는데...). 지인 할인까지 들어가서 파격적으로 저렴하게 해 주겠다는 얘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등록 지원서를 썼다. 상담이 끝난 후, 기쁜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근처 바닷가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술술 잘 풀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치가 끝내줬다. 푸호히 초코우유 진짜 맛있다. 강추!!


그리고 수업 첫날, 여기는 안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학원에 간 이유는 언어 공부보다 외국인 친구들과 교류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요소가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 구성원이 중국인 할아버지들, 한국인 아주머니들, 중국인 청소년 3-4명 정도가 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한국인 아주머니들하고 친해질까 싶었는데 그분들은 오전 수업만 듣고 가셨다. 알고 보니 그 학원은 주로 학생비자를 받기 위해 오신 분들이 많았다. 심지어 수업 방식도 한국에서 배운 주입식 교육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팀을 짜서 주제토론을 한다거나 그런 것도 없었다. 점심시간에는 각자 자리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면서 밥을 먹는 삭막한 분위기였다. 실망의 연속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여기는 안 되겠다 싶었다. 교회 집사님이 소개해준 곳이기도 해서 죄송한 마음도 들고 하루 만에 그만둔다는 것이 너무 고민이 됐지만, 그건 그거고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NO'를 말하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다음날 아침, 학원으로 바로 가서 원장님 얼굴을 직접 뵙고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다니지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하루 만에 등록을 취소하는 것임에도, 입학금은 정부에서 관리해서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뭐 이런 거지 같은 시스템이 다 있나 싶었다.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입학금은 50만 원 정도였는데, 생돈을 날려서 너무 슬프고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지만 인생 교육비로 삼았다.




이번 일을 통해 몸소 부딪히고 돈을 날리면서 무언가를 선택할 때 돈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내가 이루고 싶은 목적을 더 중심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돈 앞에서는 눈을 낮추고 자기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비용이 비싸더라도 만족하는 수준이 된다면, 또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기꺼이 투자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의 시간과 에너지도 곧 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돈(시간, 에너지)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쓸 때, 더욱 좋은 퀄리티가 나올 수 있다. 물론 눈에 보이는 돈으로도 내가 원하는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가성비만 기준으로 삼고 따라간다면 결코 내가 원하는 퀄리티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원하지 않는 시간과 에너지, 돈이 더 깨질 수 있다. 




워홀러에게 어학원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어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했다면, 어떤 목적을 위해 어학원을 다니고 싶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외국인과의 교류를 위해 어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했음에도, '돈'이 기준이 되어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로 인해 시간, 에너지, 돈이 낭비가 되었다. 어학원을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부디 나의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자신의 목적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쌩돈을 날려 마음이 쓰렸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나의 목적을 분명히 했으니 됐다. 이젠 내가 원하는 어학원을 직접 찾아서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카푸나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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