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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May 10. 2024

나, 이대로 괜찮을까?

외로운 겁쟁이

뉴질랜드에서 해외 살이가 시작되는 동시에 나는 우울해졌다. 분명 첫날만 해도 자신감이 가득했는데,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뭔가에 잔뜩 눌린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위축될 리 없다. 안 좋은 날씨도 크게 한 몫했다. 도착했던 화요일 딱 그날만 제외하고 토요일까지 내내 비바람이 몰아쳤다. 나보다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로 비가 몰아치니까 집에 콕 박혀서 시간을 보내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자꾸 들어서 우울했다. 원래도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하지 않아서,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다. 하우스맘도 날씨가 너무 안 좋으니 내가 다 미안하다며 원래 이 나라가 이렇지 않았는데 2-3년 전부터 비가 너무 자주 온다는 얘기를 하셨다.



몇 년 전, 뉴질랜드로 워홀을 다녀온 친구가 내가 5월 초에 떠난다는 얘기를 듣더니 그땐 비가 많이 내려서 우울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정말 내내 비가 오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력감이 나를 덮었다. 급기야 내가 왜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여기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뉴질랜드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여유로울 테니 글도 매일 쓰고 책도 많이 읽고 유튜브도 시작하고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런데 계획한 것 중에 하나도 할 수가 없었다. 넘치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하게 유튜브만 보면서 퍼져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산책도 하고 마트도 다녀왔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때 깨달았던 건, 절대적 시간이 많다고 하여 생산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점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안에 힘이 없으면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름의 구체적인 목표를 잡고 갔음에도, 내가 이렇게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인 줄 몰랐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고 그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뉴질랜드 오기 전에 아는 언니가 다니는 교회로 연결을 받았는데, 막상 그 언니는 둘째를 출산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도착해서도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고 한동안 연락만 주고받았다. 목사님, 사모님도 선교로 인해 한 달간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심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다른 청년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겉도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교회가 아닌 지역 커뮤니티에도 들어가고자 노력했다.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Meetup'이라는 어플도 깔아보고 그 안에 영어와 한국어 언어교환모임도 나가보려고 했으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주 1회 모임 시간이 갑자기 일요일로 변경되어서 예배 시간이랑 겹치는 바람에 갈 수 없었다. 다른 모임에 가입하기엔 내 영어 실력에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영어&한국어 언어교환모임이어서 가보려고 했던 건데 너무 아쉬웠다.


그다음엔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뉴질랜드 한인모임을 찾아봤다. 술모임은 왠지 겁이 나서 카톡방에 들어갔다가 인사만 하고 나갔다. 한 번은 여자들만 하는 운동모임을 실제로 갔었는데, 1시간 40분 동안 내내 진짜 운동만 했다. 약간의 친목을 원했던 나의 목적과는 맞지 않다는 걸 느꼈다. 파워풀한 운동 모임에 들기엔 내 저질체력으로는 무리수였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선 외로울 틈이 별로 없었다. 북적이는 회사 분위기에 동료, 선배들과 관계가 좋았고 집에서도 부모님과 같이 살다 보니까 적막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오히려 약속이 많아서 피곤했다. 막상 약속이 생기면 취소됐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가 약속을 잡는 날엔, 왜 그랬을까 후회하는 날도 있었다. 그만큼 혼자서 충전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런데 막상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혼자 동떨어진 기분을 느끼고 있으니 너무나 외로웠다. 내가 이렇게 외로움을 크게 느끼는 사람인 줄도 몰랐다. 누구라도 만났으면 좋겠다 싶은데, 또 내향적 성격이라 외부로 나가서 활발하게 사람들을 사귀는 건 정말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나 만나는 건 너무 겁나고 무서웠다. 자신감 넘쳤던 '나'는 사라지고 외로운 겁쟁이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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