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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May 08. 2024

저의 워홀 목표는 말이죠...

독립!

태어나서 스물아홉이 될 때까지 줄곧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다녔기 때문에 기숙사나 자취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다닌 곳은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회사였는데 서울의 지옥철을 경험하면서 출근도 하기 전에 지쳐버렸다.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지하철 안에서 절대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다녀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사무직 알바였고 다행히 단기 계약직이어서 3개월 좀 넘게 다니고 끝났다. 제대로 첫 직장을 다녔을 땐, 왕복 2시간 거리에 인천에서 근무해서 출퇴근길이 서울 지옥철보단 좀 나았다. 두 번째 직장은 집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였다. 딱 운동 삼아 다니기 좋은 정말 가까운 곳이었다.




자취를 하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집을 나가면 일단 고정 지출이 많이 드니까 최대한 돈을 모을 수 있을 때까지 부모님 집에 붙어있으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독립을 꿈꿨다. 나만의 공간을 꾸미고 싶은 마음은 둘째치고 몇 년을 살면서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불편했다. 화장실이 외부에 있는 것도 계속 불편했고 전체적으로 건물이 낡아서 여기저기 보수를 해야 하는 부분도 싫었다.



솔직히 말해서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 이 집구석을 얼른 나가고 싶었다. 부모님이 말다툼을 하시거나 내가 부모님과 갈등이 있는 날엔,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구질구질하다.'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우리 집을 바라볼 땐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저 빨리 독립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저렴한 월세방을 얻어서 자취하는 것과,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것. 그 사이에서 고민했다. 당연히 생활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처럼 편한 곳이 어디 있으랴. 대중교통에, 신속한 의료시스템, 널려있는 편의시설 등 한국에서 독립한다면 확실히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있는 한국이 아니라, 그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해외에서 독립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땐 왜 그랬을까. 이럴 때 보면 가끔 나도 모르는 모험심 가득한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쭉 살아왔으니까, 해외에서 1년 살다 오는 것도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많이 깨지겠지만, 그만큼 많이 성장할 것 같았다.




두 번째 다닌 직장에서 약 2년 가까이 일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여럿 있었지만,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해외에서 독립해 보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다. 나의 목표는 영어능력 향상도,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주된 목표는 아니었다. 나의 목표는 <독립>이었다. 일단 부모님을 떠나서 혼자 살아남아보는 것. 독립을 통해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는 해외살이와 독립을 충족시켜 주는 일석이조의 제도라고 생각했다.



뉴질랜드에 가기 전, 지인을 통해 오클랜드 지역의 홈스테이를 연결받았고 그곳에서 두 달 반 정도 지내게 되었다. 보통 워킹홀리데이를 가면, 홈스테이나 플랫 생활을 하게 된다. 한국으로 치면 홈스테이는 하숙, 플랫은 자취라고 생각하면 된다. 홈스테이는 집주인이 식사를 제공하고 빨래도 해주신다. 플랫은 방 하나를 혼자 쓰거나 혹은 룸셰어를 하면서 식사와 빨래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참고로 홈스테이는 플랫보다 비용이 좀 더 비싼 편이다.




따지고 보면 홈스테이는 완전한 독립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나의 경우 빨래는 내가 알아서 했고 식사도 가끔 사 먹거나 아주 드물게 요리해서 먹기도 했다. 그럴 거면 왜 홈스테이에서 지냈는지 궁금할 수 있겠다. 일단 집을 알아보는 건 큰 문제이기 때문에,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구하는 게 맞겠다 싶었고 한두 달 임시로 지낼 생각으로 홈스테이에서 지냈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눈치 보며 적응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썼던 것 같다. 자신이 다 알아서 해야 하는 플랫 생활과 다르게 식사를 챙겨주시는 홈스테이는 어느 정도 식사 시간에 나의 생활 패턴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신경이 많이 쓰였다. 급식처럼 식사 시간이 딱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어서(이건 집마다 다를 것 같다.) 고정적 일정이 없었던 초반에는 '언제 밥을 주시려나?' 하고 오직 밥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렇다고 엄마한테 하듯이 "배고파요, 밥은 언제 먹어요?" 이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기다리고 있다가 밥이 다 됐다고 부르는 소리에 득달같이 달려갈 뿐이었다.



한국에서 삼시 세끼를 챙겨 먹던 나였는데, 하루에 두 끼를 먹는 새로운 식문화에 맞추려니 간식을 계속 먹게 됐다. 돌아서면 배고프고, 허기져서 계속 간식을 먹었다. 진짜 배고파서 그랬던 것도 있겠지만, 마음이 허기져서 그랬던 것 같다. 먹는 것 외에도 타인과 라이프스타일을 맞춰 살려니 힘들었다. 지인이 소개해준 홈스테이여서 힘들 때 속얘기를 솔직하게 못하고 마음에 담아둔 것도 한몫했다. 더불어 나의 예민한 성향도 한몫했다. 타국에 오니까 그냥 모든 게 힘든 느낌이었다. 모든 감각으로부터 스트레스받는 기분이었다. 하우스맘은 잘해주려고 하시는데, 나는 벌써부터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한국이 그리웠다. 분명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었다.



아침으로 자주 끓여 먹었던 누룽지, 한국마트에서 산 진미채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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