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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May 06. 2024

서른 살에 떠난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프롤로그

2023년 5월 1일 밤, 인천공항에서 뉴질랜드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평소에도 보부상인 나는 공항에서 짐을 부치기 직전까지도 수화물 무게를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 일 년 치 짐을 싸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출발하기 전, 몇 주간 이어지는 짐과의 사투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한국에 있는 물건들은 뉴질랜드에도 다 있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물가가 비싼 것은 사실이라 챙겨갈 수 있다면 바리바리 싸가고 싶었다.



에어뉴질랜드 항공사를 이용했는데 23kg 수화물 하나를 추가했고 대형캐리어 하나, 이민용가방 하나 총 2개의 위탁수화물을 부쳤다. 작은 보조가방에 백팩을 메고 비행기를 타고나니, 아- 이제야 내가 한국을 떠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원래 밤 9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였는데 1시간씩 두 번 지연되는 바람에(부들부들...) 11시 30분에 탑승하게 됐다. 아마 비행기가 뜬 것은 자정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공항에 오후 5시부터 와있었던지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자리가 복도 쪽이어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통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나마 경유가 아니고 직항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고 길고 길었던 11시간 비행 끝에 머나먼 나라,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처음 봤던 구름 가득한 뉴질랜드 하늘, 그리고 뉴질랜드 시초인 마오리족의 전통문양 입구!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 괜스레 감격스러웠다.




서른 살.

당시 만 나이로 스물아홉이라서 아직 20대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경력을 열심히 쌓고, 누군가는 이직을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또 누군가는 이미 아이를 키울 수도 있는 나이였다.



그만큼 이젠 어린 나이라고 할 수 없지만, 워킹홀리데이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너무나 오랜 시간 품어왔던 꿈이었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과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 둘 중에 선택해야 했다.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은 이미 많이 해봤기 때문에 후회하더라도 일단 부딪혀보자고 마음먹었다. 그게 스물여덟 겨울이었고, 일 년을 더 일하고 스물아홉 겨울에 퇴사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해외에 대한 삶을 동경했다. 언젠가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책과 영상을 통해 해외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이들의 모습을 접할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들이 자유로워 보이고 멋있었다.



대학생 때 워킹홀리데이를 알게 되면서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땐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졸업하고 무작정 해외취업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의 반대가 있었다. 스물여섯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친한 친구는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행복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하지 않은 내 모습이 대조되었다.



스물일곱에 퇴사 후, 도전하려 했을 땐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나는 나대로 심한 역류성식도염에 걸려서 절망 가운데 있었다. 1년 3개월의 공백기를 가진 후, 스물여덟에 입사했던 두 번째 직장은 기대했던 것보다 참 좋았다. 집에서 가까운 출퇴근 거리,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이전 직장보다 좋은 사내 분위기, 점심식사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 계약직으로 입사하여 정규직까지 전환된 좋은 케이스였다.



그럼에도 내 마음속 깊은 구석의 아쉬움은 커져갔다. 주변 사람 중 해외로 떠나는 이들이 마냥 부러웠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계속 남아있었다. 그때 나에게 제일 용기를 줬던 사람이 당시 만났던 남자친구다. 후회는 그만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하고 싶으면 도전하라고, 나의 도전을 응원한다고 해주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도전'에는 나이제한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워킹홀리데이 신청 자격 조건에는 나이 제한이 있기 때문에,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도전을 하고 싶었다. '그래! 직장은 다시 돌아와서 구하면 되는 거고, 워킹홀리데이는 지금 아니면 다시는 못 갈 텐데 일단 부딪혀보자.' 고민은 시간만 늦출 뿐,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렇게 서른 살에 떠난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의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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