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릭 May 20. 2024

난생처음 집을 계약하다

나에게 맞는 집과 주인을 찾아서

뉴질랜드에서 처음 지냈던 곳은 지인을 통해 연결된 홈스테이였다. 한두 달만 지내고 최대한 빠르게 플랫을 구하려고 했다. 플랫이 홈스테이보단 집세도 저렴하고 좀 더 자율적이고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학원에서 계획이 꼬이는 바람에 일단 이사는 어학원을 마치고 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이사 갈 집을 계속 알아봤다.



뉴질랜드에서 한인커뮤니티는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라는 곳으로 일자리, 플랫, 렌트, 판매, 유학 등 다양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주로 이곳에서 일자리, 플랫을 알아봤고 중고거래도 가끔 했다.



한국에선 부모님과 쭉 같이 살았고 자취경험이 전무해서 혼자서 집을 알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뉴질랜드는 집세가 비싸기 때문에 보통 혼자 사는 형태보다 매매 또는 렌트하는 당사자와 여러 플랫메이트가 함께 사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누울 방구석 하나를 구하는 일이지만 거실, 주방, 화장실 및 샤워실은 전부 공유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게다가 나 혼자 사는 게 아니고 집주인과 플랫메이트도 함께 사는 것이어서 그들과의 매칭도 잘 맞아야 했다. 사실 전자보다 후자가 더욱더 중요(more important)하다. 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집도 마찬가지다. 물론 집은 주거공간이니까 경우가 다르지만 그래도 같이 지내는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가 더 중요하다.  



아무튼 나는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매뉴얼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집을 알아보는 일도 처음 도전하는 영역이어서 매뉴얼이 필요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 검색을 통해 집을 알아볼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 많이 찾아봤다. 주워들은 건 많아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나에게 맞는 집을 구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총 7군데 집을 보고 결정했다. 자, 이제 그 여정을 함께 가보자.




1. 이거 사기 아니야? 

첫 번째로 본 집에 대한 소감이었다. 사진이랑 달라도 정도껏 달라야지. 너무 심했다. 사기나 다름없는 정도였다. 집주인은 시간 약속을 한 명씩 잡는 게 번거로웠는지 네 명이 같은 시간에 봤는데, 그중 계약하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말없이 조용하게 집을 보고 나왔다. 화장실이 너무 더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하층에 있는 방이었는데, 냄새도 퀴퀴하고 영 아닌 곳이었다. 집주인은 진심 양심이 있으신 걸까 의문이 들었다.



2. 타이밍도 중요

두 번째 집은 나쁘진 않았다. 그렇다고 막 좋지도 않았고 바로 결정을 내리기엔 고민스러운 곳이었다. 장년층의 부부가 사는 곳에 플랫메이트는 여성이었고 집도 나름 깔끔한 느낌이어서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어학원을 다니려고 하는 때여서 일단 급한 건 아니니까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더 살고 나중에 구하자 싶었다. 결과적으로 딱 마음에 들진 않았고 타이밍이 안 맞았다.



3. 혼돈의 카오스

세 번째 집은 정말 지저분했다. 뉴질랜드는 보통 카펫 생활을 하는데, 집 자체가 낡아서 습기가 찼는지 바닥에 깔려있는 카펫이 전체적으로 축축했고 냄새가 심각했다. 건조대에 빨래도 겹쳐서 널려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아니, 저러면 빨래가 마를까?' 게다가 부엌은 식기류와 그릇들이 정리도 안 되어 있는 채로 마구 쌓아져 있었다. 집주인아주머니는 내가 오기 전에 집을 좀 치우셨다고 했다. '치운 게 이 정도라고?' 속으로 놀랐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다. 표정에서 티가 났으려나. 모르겠다. 주말에 볼 집이 더 있다고 말씀드리고 황급하게 인사로 마무리를 지으며 그곳을 나왔다. 집주인아주머니는 둥글둥글하신 것 같았는데, 그것과 정리정돈은 상관없나 보다.



4. 밥솥을 사야 한다고요?

네 번째 집은 젊은 부부와 5살 정도 되는 어린 아들,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사는 집이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 머리가 산발이 되어 도착했는데, 집은 무척 깔끔했고 관리가 잘 되어 보였다. 새 집을 산 지 얼마 안 된다고 하셨다. 부엌과 거실, 화장실 등 곳곳을 보여주시다가 얘기를 나눴는데, 밥솥을 사 와야 한다고 했다. 보통 전자레인지, 밥솥, 프라이팬, 식기류 등을 공유하는데 밥솥을 사 와야 한다는 곳은 처음이었다. 밥솥이 1, 2만 원도 아니고 가난한 워홀러에겐 부담되는 조건이었다. 게다가 장기 거주자를 희망하는데, 애초에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였기 때문에 조건이 맞지 않는 곳이었다. 연락을 드리겠다 하고 나왔지만 이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분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5. 면접을 보는 기분

다섯 번째 집을 보게 될 때쯤엔 너무 지쳐있었다. 집을 보러 다니는 일도 만만치 않구나 싶었고 정말 내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따지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계속 보러 다니다 보면 한 곳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이곳은 시세보다 저렴하게 집세를 올려놔서 그런지 연락 온 사람이 많다고 했다. 처음에 집 대문을 못 찾아서 뒷문으로 갔는데 아저씨가 깜짝 놀라면서 대문으로 와야지, 하고 혼내듯이 얘기하는데 민망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집을 보여주셨는데 일단 앉아보라고 하시더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부터 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는데 면접을 보는 기분이었다. 요리를 자주 하는 것도 싫어하는 눈치여서 속으로 '이곳은 아니구나' 싶었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집주인이 갑이 되어 사람을 고르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갈아타는 버스가 취소되는 바람에(뉴질랜드는 대중교통이 최악이다. 버스 취소라니. 문화충격이었다.)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집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6.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집이라면?

여섯 번째 집은 5살, 7살 되는 어린아이들과 홈스테이 하는 중학생 여자아이가 사는 곳이었다. 집주인아주머니는 젊으셨는데 성격도 쾌활하시고 너무 친절하고 좋으셨다. 밥솥을 사야 할 필요도 없고 부엌을 마음껏 써도 되고 집도 넓고 깨끗했으며 쾌적했다. 바닷가도 근처여서 좋다고 생각했다. 진짜 연락을 드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친한 언니가 애들이 어려서 뛰어놀고 울고 그럴 텐데 그거 감당할 수 있겠냐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아차 싶었다. 집주인아주머니가 좋으셔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집에서는 조용하게 쉬고 싶은데 애들이 뛰어놀고 하면 피곤하겠다고 느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7. 드디어...!!

일곱 번째 집. 집주인아주머니와 플랫언니가 사는 곳이었고 한 명의 여성 플랫메이트를 구하는 곳이었다. 집을 다 둘러보고 설명을 듣고 난 다음에 나는 '여기다!!!!!' 싶었다. 앞뒤 더 재지 않고 바로 계약하겠다고 했다. 나 다음으로 집을 보러 온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계약하겠다고 하니 그 약속을 취소하셨다. 만약 고민하겠다고 하고 집에 갔으면 아마도 그 사람이 계약했을 거다.



일단 집은 크지 않지만 아늑하고 깔끔했으며 부엌에서 마음대로 요리해도 좋다고 하셨다. 빨래를 널 수 있는 햇빛 드는 공간에 건조대가 놓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빨래, 요리 이런 부분은 생활과 직결되는 영역이어서 집을 알아볼 때 체크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사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집주인아주머니가 일주일만 이곳에서 같이 지내고 3주는 딸 집에서 지내면서 아기를 봐주신다고 했다. 집주인아주머니도 좋은 분인 것이 느껴졌는데, 그래도 플랫메이트하고 둘이 지내면 눈치 볼 것 없고 더 편한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플랫 생활이 되겠다 싶어서 당장 계약했다.




내가 살 수 있는 집을 알아보는 일은 시간도 에너지도 많이 드는 일이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았을 때 그 뿌듯함이란! 성취감과 함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여정이었다. 집을 알아보면서 나름대로 나만의 기준이 생기고 집을 볼 수 있는 눈도 생겼다. 여러 곳을 직접 발로 뛰면서 내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도 점점 구체적으로 나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플랫메이트 언니와도 성격이 잘 맞았고 지내는 동안 큰 트러블 없었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알게 모르게 의지하는 좋은 사이가 되었다.



추가로 덧붙이자면, 내 방은 햇빛이 들지 않아서 그 점은 아쉬웠다. 그래도 거실과 부엌에 따뜻한 햇빛이 들어서 만족했다. 나에게 맞는 집을 고를 때, 당연히 100프로 만족할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기준을 잘 세워보고 난 후에 그것을 만족하는지, 단점은 내가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인지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이 좋다. 집주인과 플랫메이트도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