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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May 22. 2024

뉴질랜드의 미친 물가, 생존하기 위해 시작한 요리

요알못이 요리를 통해 얻은 것들

우선 나는 요알못(요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서 쭉 부모님과 같이 살았고 엄마가 요리를 해주셨기 때문에, 내가 요리할 일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계란프라이, 라면 끓이기, 엄마가 시키면 가끔 쌀 씻어서 밥 해두기 정도가 고작이었다.      


딱히 요리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가끔 유튜브로 레시피 영상도 많이 봤다. 당연한 말이지만, 요리 영상을 많이 본다고 요리를 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막상 해보려고 하면 귀차니즘이 몰려왔고 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해서 엄마의 집밥을 먹거나 사 먹거나 했었다. 외식을 해도 그렇게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었다. 지금은 한국도 물가가 많이 올랐지만, 작년만 해도 기본 김밥을 2,500원에 파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뉴질랜드는 미-친!! 물가였다. 처음 김밥의 가격을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우리나라보다 환율이 높은 탓도 있겠지만(현재 1달러=834원), 기본 김밥 한 줄에 거의 8,500원 정도였다. 한국에선 김밥을 좋아해서 자주 사 먹었는데, 뉴질랜드에선 11개월 살면서 딱 2번 사 먹었다. 너무 비싸서 이 돈 주고 김밥을 사 먹느니 해 먹고 말지 싶었다. 그래서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왜 사 먹는지 알겠더라. 쩝.


무튼 김밥만 아니라 대체로 사람 손을 거쳐간 음식들은 한국 물가의 2-3배 정도였다. 한식당에서 돼지고기 김치찌개 1인분이 2만 원이 넘었으니 말 다 했다. 외식을 자주 하면 통장이 텅장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식당뿐 아니라 한인 마트도 물가가 비쌌다. 바다 건너와서 그런지 한국 마트에서 샀던 것에 몇 배는 더 비쌌다. 한국에 있을 때 식자재 마트에서 세일기간에는 천 원에 살 수 있던 3분 카레가 3천 원가량 하는 것을 보면서 기겁했던 게 기억난다. 우리나라 물가의 3 배구나 하고 딱 체감했던 날이었다. 과자, 라면도 비쌌고… 그냥 죄다 비쌌다. 한국에서 2-3천 원에 사 먹었던 떡도 4배 정도 하는 사악한 가격을 보고 너무 슬펐다. 참고 참다가 정말 먹고 싶을 때, 딱 3번 정도 사 먹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지의 대형마트를 가면 식자재가 한국의 물가와 비슷하거나 저렴했다. 예를 들면 야채나 과일, 고기와 같은 것이 그러했다. 한국에서 한 번도 사 먹어 본 적이 없었던 아보카도도 뉴질랜드에 살면서 먹게 됐다. 비싸서 사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뉴질랜드는 아보카도에 환장한 나라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도 자주 먹게 됐다. 우리나라가 김치에 환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통장이 텅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두 달 반 정도 살았던 홈스테이를 나와서 본격적으로 플랫생활을 시작했고 요리도 시작했다. 이때 김치찌개도 처음 끓여보고 카레도 처음 만들어봤다. 요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쉬운 요리가 카레라고 했는데, 나한텐 왜 이리 어려운지. 양파부터 감자, 당근을 손질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양파를 썰면 눈물부터 줄줄 나오지만 그땐 더 심했다. 썰다가 멈춰서 울다가 또 썰다가를 반복했다. 손도 느린 편이어서 카레 만드는데도 아마 1시간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다른 요리도 레시피에 나와 있는 소요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분명 레시피 영상에는 뚝딱뚝딱 금방 만드는 거 같은데 내가 요리를 하면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밥 한번 해서 먹고 나면 기진맥진되기 일쑤였다.      


처음 해보는 레시피는 내가 했지만 객관적으로 맛이 없을 때가 있었다. 분명 레시피를 따라 했는데 맛이 왜 이러지 싶어서 시무룩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러 번 요리를 하면서 맛있게 되는 날도 많아졌고 시간도 조금씩(많이는 아니고 조금^^;) 단축됐다. 무엇보다 내가 요리했을 때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 맛있다고 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여러 번의 경험이 쌓이니 자신감도 생겼다. 요알못에서 초보 요리사정도로 레벨업이 되었다. 같이 사는 플랫메이트 언니는 왜 이제야 요리를 했냐고, 너무 맛있다며 너스레를 떨어주었다.      


나중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서도 우당탕탕 요리는 계속 됐는데, 그곳에 사는 플랫메이트도 너는 요리의 감각이 있다고 칭찬해 줬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나를 춤추게 만든다. 요리를 더욱 재미나게 해 준다. 그렇다고 글쓰기만큼 재밌는 건 아니지만, 맛있게 성공하는 날은 꽤 뿌듯하다. 음식이 맛있게 되면 나눌 수 있으니 기쁨은 배가 된다. 가난한 워홀러였던지라 물질적인 선물은 못해도 요리를 해서 나눌 수 있었다. 한 번은 도움을 받았던 지인들에게 나누기 위한 목적으로 고추장멸치볶음을 하기도 했다.   


요리 경험이 전무했던 내가 김치찌개, 된장찌개, 콩불, 두부조림, 삼계탕 등 각종 레시피를 하나씩 섭렵(?)했다. 아직 레시피가 없으면 안 되지만, 엄청난 발전이다.      

그동안 내가 했던 요리 콜렉션이다. 먹음직스러운 사진만 모아보았다.




생존하기 위해 시작했던 요리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돈을 절약할 뿐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시간을 들이면 분명 성과가 나온다는 것, 같은 메뉴를 반복할수록 더욱 나의 레시피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뭐든 처음이 어려울 뿐이지, 자꾸 하다 보면 늘게 되어있다. 요리가 성공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은 넉넉한 마음도 생긴다. 게다가 건강한 식재료로 요리해서 나 스스로를 챙긴다는 기특한 마음도 생긴다. 아플 때는 서럽지만.


주의할 점은, 식자재 마트를 갈 때 눈이 돌아갈 수 있다. 나처럼 입이 짧은 사람은 이것저것 먹고 싶은 마음에 잔뜩 샀다가 요리를 해보지도 못하고 음식물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수 있다. 그런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당일 혹은 일주일 동안 요리할 재료를 사도록 하자.     


여전히 요리는 막상 하려고 하면 귀찮고, 피곤하다. 그래서 엄마의 소중함도 많이 느꼈다. 그럼에도 요리를 하면서 나의 살림력도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을 깨달았다. 식재료를 사는 것부터 직접 부딪히며 배워가는 요리를 통해 조금씩 독립하는 워홀러였다.

첫 요리였던 토닭볶(토마토달걀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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