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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May 28. 2024

투잡 하려다 4시간 만에 그만둔 치킨집

빨리 그만두는 용기

청소 얘기를 하기 전에 이야기의 흐름상 치킨집을 먼저 얘기하려고 한다. (청소 얘기는 목요일 연재 예정)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4시간 만에 그만둔 건 아마 최단 시간이 아닐까 싶다.


상황은 이러했다. 청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풀타임 근무라기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돈을 좀 더 벌고 싶은 욕심에 투잡을 하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저질체력을 알고 있어서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작 나는 일단 해보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에서 알 수 있듯이, 그땐 지나친 욕심이었다. 당시 같이 사는 플랫메이트 언니가 쓰리잡에 장시간 근무를 하는 것을 보며 나도 한번 그렇게 해볼까 싶었다.


또 청소를 그만두고 싶었기 때문에 치킨집에서 일해보고 괜찮으면 아예 이직할 생각으로 면접을 보고 트라이얼을 시작했다. 한국 치킨 브랜드였는데, 뉴질랜드에 처음 오픈하는 1호점 매장이어서 사람을 많이 채용했다. 그래서 면접을 보고 비교적 쉽게 붙었다. 나의 포지션은 캐셔, 홀서빙이어서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생활용품샵에서 근무했을 때보다 메뉴도 한정적이어서 부담이 적었고 금방 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웬걸. 막상 출근을 했는데 매장에 트라이얼생이 너무 많고 정신이 없었다. 지인 중에 치킨집 투잡을 하는 분이 이제 막 오픈하는 곳은 힘들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퍼뜩 생각났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나마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은 저마다 주어진 역할이 있는 반면, 캐셔와 홀서빙은 트라이얼생이 너무 많아서 할 일은 별로 없는데 눈치는 보이니까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심지어 서빙 트레이도 하나였고 빗자루, 마포도 하나씩이었다. 매장이 그렇게나 크고 트라이얼은 10명이 넘었는데 말이다.      


가오픈 시기여서 사장님 손님들만 받았는데 카페 브랜드 체인점을 여러 개 갖고 있는 중국 부자 사장님이어서 꽤나 많은 직원들과 지인들이 손님들로 왔다.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 영업한 줄 알고 들어오는 사람들 하며 주방 공간은 트라이얼생으로 바글바글하고 어디 서 있어야 하는지도 모호한 위치에서 자꾸 정신줄을 놓게 됐다. 관리자들도 이제 막 시작한 매장이어서 트라이얼생한테 분명하게 업무 지시를 하지 못했다. 시간은 안 가고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혼란스러움 그 잡채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배가 너무 고팠다. 청소 일을 끝내자마자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버스를 2번 갈아타고 치킨집에 4시에 맞춰 도착했다.


점심부터 근무했던 트라이얼생들은 일을 마치고 공짜 치킨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8시까지 근무였기에, 중간에 치킨을 조금이라도 주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행운(?)이 주어지지 않았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근무를 하는데 그래도 손님들 편에 카페 사장님이 치킨집 직원들한테 버블티를 배달해 주셔서 먹으면서 버틸 수 있는 건 감사했다. 주방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자기네들끼리 치킨을 만들면서 먹는데, 부럽기도 하고 나도 달라고 말하지 못해서 괜히 서럽기도 했다.     




좀 더 근무하면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또 한국인 절반, 외국인 절반이어서 일하면서 영어 쓸 일이 더 많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아무런 체계도 없는 아수라장 같은 오픈 매장에서 근무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투잡을 하기엔 저질 체력의 몸뚱이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청소 근무를 끝내고 오니까 4시간 동안 서 있기만 해도 머리가 어질 했고 다리가 아팠다.


체계가 잡히지 않아서 관리자들이 직원들을 살필 겨를이 없어 보였다.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딱히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없는 곳으로 보였다. 워낙에 눈치를 살피는 성격이어서 이런 곳에선 나를 챙기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럼에도 트라이얼 시작한 지 4시간 만에 그만두겠다는 얘기한다는 게 너무 의지박약 한 사람으로 보여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도 아니고 고작 4시간인데.




그래도 내가 감당할 수 없겠다 싶으면 빨리 그만두는 것도 용기였다. 돈 몇 푼 더 벌자고 골병들 바엔, 적당히 일하고 나를 챙기는 게 맞았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한 달이 지나서 트라이얼 했던 급여도 받을 수 있었다(트라이얼 했을 때, 급여를 주는 곳도 있지만 아닌 곳도 많다). 어쨌든, 경험은 했으니까. 시도해 본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 경험이 아니라 할지라도 아니라는 답을 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만약 해보지 않았으면 계속 미련이 남았을 거다. 주변 사람이 나에게 해준 조언이 쓸데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내가 해봐야 알겠다고 한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보는 거다.


내가 선택한 게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자. 금방 포기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보일까 봐 두려워말자. 이것저것 하다 보면 나에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이 더 분명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발을 살짝만 담그고 빼는 것들이 많다 해서 내가 모자란 사람인 건 아니다. 나와 맞지 않을 때, 빨리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며 그만두는 것도 용기다.


그렇게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면 어떤 세계에는 깊숙이 발을 넣고 싶어 질 테니.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실패의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한 발 디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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