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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May 30. 2024

뉴질랜드에서 청소 일을 하다니(1)

제 구역은 화장실이라고요?

그렇게 나의 결정을 책임지고 생존하기 위해서 겨우겨우 일을 구했다. 그것은 청소였다.(9화에 이어서)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나는 한인잡 중에서도 손이 빠른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영어를 안 써도 되는 일이 뭘까 알아보다가 청소를 시작하게 됐다. 막상 해보니까 손이 빠른 것은 중요했지만, 구인공고엔 딱히 그런 말이 없었다. 또 그 청소회사에서 오피스 클리닝을 주 1회 3시간 하는 지인이 있었는데, 사장님 성격도 괜찮은 것 같고 청소도 나름 할만하다고 하여 일단 해보자 싶었다.     


면접은 어느 커피숍에서 사장님과 일대일로 진행됐다. 월부터 금, 주 5일 진행하는 홈클리닝은 2인 1조 또는 3인 1조로 팀을 짜서 청소를 한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맡게 될 구역은 화장실과 주방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속으로 기겁을 했다. 


‘네???? 화장실이요???????!!!!’ 


내성적 인간인지라 차마 겉으로 말은 못 하고 속으로 아우성을 쳤다. 아마 티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겉으로도 동공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사장님도 내가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느끼셨는지 1, 2주마다 관리하는 홈클리닝이어서 자주 가는 집은 화장실이 깨끗하다며, 그렇게 더럽지 않다고 하셨다. 또 자기 구역만 맡아서 청소하는 장점을 늘어놓으셨다. 근데 당시엔 그 말이 그렇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청소 일을 하기 싫었는데, 내가 맡게 될 구역이 화장실+주방 청소라니. 더 하기 싫었다. 생각하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고 일단 면접을 마무리했다. 거기서 나를 뽑아주는 갑의 입장이라기보단 사람이 필요한 처지여서 내가 그것을 하느냐, 마느냐 선택의 문제였다.     




아니, 한국에서 부모님 하고 살 때도 화장실 청소를 안 했는데, 엄마가 시켜도 냄새나서 하기 싫다고 안 했는데,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고? 어디 사람 없는 곳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나는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출근 첫날이 되었다. 바로 전날까지도 못 하겠다고 말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하루만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부담 없이 관둬도 좋다고 간절하게 얘기하셨던 모습도 생각났고, 일단 나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해보자.’ 


싶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또 마음먹었는데도 회사로 출근하는 길은, 마치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그만큼 너무너무 하기 싫었다.    

 



그랬는데. 어라?? 생각보다 괜찮았다. 거의 울부짖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엄청 더러워서 구역질이 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받는 집은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더럽지 않았다. 


좀 더 해보니까 첫날 갔던 두 집은 정말 깨끗한 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만. 그러고 보면 첫날부터 도망가면 안 되니까 그날 오라고 했던 건가. 


어찌 됐든, 첫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는 점이 정말 의외였다. 성경 속 인물 중 노예로 끌려가서 청소했던 요셉을 생각하면서 나는 노예로 끌려온 건 아니지만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절망했는데, 생각보다 할 만했다.      



이전에 했던 일이 장시간 오래 서 있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면, 단시간 힘들게 땀 흘리면서 몸의 근육을 다방면으로 사용하니까 오히려 그런 점에선 낫기도 했다. 또 생활용품점에서 일할 땐 반복적인 업무가 금방 지루해져서 시간이 더디게 갔는데, 청소는 집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청소 서비스를 집중해서 끝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금방 갔다. 더러워진 곳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깔끔하게 만들면 하나의 미션을 성공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도 있었다.    

 

한국에선 청소를 3D업종(Difficult, Dirty, Dangerous)으로 분류하다 보니, 나도 청소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솔직하게 오픈하자면, 청소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 취업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상담사로 일했을 때도 청소를 일자리로 제안했을 때(업체에선 사람이 필요하니 구해달라고 한다), 대부분은 꺼리는 반응이었다. 나이가 많아 취업이 어려운 분들도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청소였다.     


그러니 내가 청소를 시작하게 됐을 때 심정이 어땠겠는가.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은 직종과 낮은 직종은 분명히 있다. 어렵거나 더럽거나 위험한 일을 누가 하고 싶을까.      



그런데 이런 내 고정관념을 깨준 분들이 있었으니, 청소회사를 운영하는 젊은 부부 사장님이셨다.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 청소업을 시작한다면, 그러려니 할 것 같은데 일단 그것부터 나의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청소는 체력이 있어야 하는 일이어서 젊고 건강할 때 하는 것도 맞겠다 싶다.     


어쨌든 그분들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청소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편견과 달리 영어로 의사소통도 가능한 분들이셨다. 특히 여자 사장님은 원어민 뺨칠 정도로 발음도 무척 좋아서 부러웠다. 남자 사장님이 이 일을 먼저 하다가 아내 분이 함께하게 된 경우였는데, 청소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하고 있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손님이 보지 못하는 부분도 청소해 주는 것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청소 서비스를 통해 삶의 질을 올려준다고 생각하고 보람을 느끼며 그 부분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남자 사장님은 청소만 시작하면 마치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그 모습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 같아서 좋아 보이고 가끔은 삘 받으셨는지 노래를 너무 크게 부르셔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양면성이 있는 게 인간이라고. 사장님의 일에 대한 철학과 태도는 배울 점이 많았지만, 일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높아서 그것에 도달하기까진 너무 힘들었다. 나는 곧 한계에 부딪혔다. 







대문사진: Pixabay로부터 입수된 Stefano Ferrario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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