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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Nov 16. 2020

글쓰기가 산으로 갈 때

노트북 앞에 앉아서 백지의 상태에서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은 느낌이 충만할 때가 아닌 보통의 날이라면 어렵게 느껴진다. 무엇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어도 단어 하나, 한 문장에 의지해서 한 줄씩 써 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다. 술술 써지는 날도 있지만 꾸역꾸역 힘겹게 쓰는 날도 많다. 더군다나 의식의 흐름으로 글을 쓰는 날이 대부분이어서 한 주제만 가지고 집중력 있게 글을 풀어낸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말을 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짧고 간단하게 말하는 것보다 세밀하게 말하는 스타일이다.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을 때도 있다 보니, 가끔은 나도 말을 하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하고 까먹을 때도 있다. 당연하겠지만 나의 글은 말을 닮아있다. 열심히 적어 내려가다가도 문득,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글을 쓰는 배를 타면서 양쪽에 노를 잡고 힘껏 저으며 열심히 가는데 방향이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서 결국엔 산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뱃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고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오로지 나 혼자인데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내 안에는 내가 너무 많다고,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얘기, 저 얘기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그럴 때도 있고 엉켜있는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생각들도 있다.




그것을 그저 그대로 내버려 두면, 결론을 짓지 못한 글이 되거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는 글이 탄생한다.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잔뜩 떨었는데, 돌아오면서 집에 갈 때 ‘근데 무슨 얘기 했더라?’ 하고 생각하면 막상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벼운 근황부터 깊은 얘기까지 화제 전환이 금방금방 바뀌니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친구와의 대화는 가끔 산으로 가더라도 괜찮지만, 내가 쓰는 글은 적어도 내가 봤을 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어야 읽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볍게 의식의 흐름으로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글의 흐름을 그림의 스케치처럼 간단하게 적어놓고 글을 써 내려가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글이 방향을 잃어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아깝게 적은 글을 날리지 않으려면,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나 뒤를 돌아보며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게 강박이 되어서 글을 쓰지 못한다면 그건 또 안 되겠지만.




글의 방향을 확인하며 고쳐나가는 과정은 때론 힘겹고 고단하지만 즐겁다. 내가 쓴 글을 다시 볼 때 글의 방향이 다르게 흘러가면, 글을 고치면서 올바르게 방향을 잡아간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쓸 수는 없다. 헤밍웨이도 모든 초고는 걸레라고 말했다고 한다. 초고가 엉망인 건 당연하다. 엉망인 글을 누군가에게 그대로 보일 수는 없기에 고쳐 쓰는 과정도 당연하다.


글을 고칠 때면 머리를 쥐어짜기도 하지만, 나의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고 단순화된다.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생각의 덩어리를 쪼개면서 오히려 글감이 풍성해지는 경험도 한다. ‘비슷한 느낌이지만 다른 주제의 글이었구나, 이 주제로도 글을 써봐야겠다’라고 글감을 얻는다. 그렇게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애써 열심히 적은 문장이라도 주제와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지워버려야 하지만, 쿨하게 버리기는 아까울 때 따로 파일에 저장해놓는다. 나의 경우는 ‘버리기 아까운 문장들’이라고 한글 파일 제목을 붙여놓고 문장을 그곳에 따로 버리면서(?) 저장해놓고 있다. 가끔 글을 쓰다가 머릿속에 그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 파일을 열어서 이전에 내가 써놓은 문장들을 살펴본다. 그렇게 이전의 글에서 빛을 발하지 못해 잠들어 있는 문장을 깨워서 알맞은 자리에 써먹기도 한다. 마치 테트리스처럼 끼워 맞춘다. 그때의 쾌감은,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글쓰기는 산으로 갔으려나. 상관없다. 가끔은 뜬금없더라도 산으로 가는 재미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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