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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Dec 07. 2020

10개월 차 백수입니다

글을 쓰며 꿈을 찾고 있습니다

올해 2월 10일에 퇴사했으니, 벌써 백수 10개월 차가 되었다. 마지막 실업급여를 받았던 8월 초가 끝나고 수입 ‘0’ 원의 상태는 4개월이 되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인지, 백수로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그런지 유독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내가 전 직장에서 퇴사했던 이유는 코로나 때문은 아니었다. 계약직 1년으로 일했기 때문에, 계약기간 종료로 퇴사하게 되었다. 사실 계약 연장 제안도 받긴 했었다. 정규직을 제안한 건 아니었고 계약직이라는 조건은 같았지만, 그래도 사회복지 분야 치고 월급도 무난했고 일의 강도와 복리후생도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요소들이 내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시 내가 덜 찌들었던 사회초년생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을 막 시작했던 초반을 제외하고 한 달마다 들어오는 월급에 별 감흥이 없었다. 자라온 가정환경이 유복했다거나 애초에 돈 욕심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우리 집은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이 있었고 용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 아르바이트는 일일 알바였던 호텔 서빙이었다. 8~9시간 동안 검정 구두에 유니폼을 입고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나르는 일, 포크나 나이프를 닦는 등등의 일이었다. 딱 2번 해봤는데 온종일 불편한 구두를 신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보니 꽤 강도가 높았다. 게다가 호텔 서빙 알바는 보통 서울에 많이 몰려있어서 경기도에 사는 내겐 너무 먼 곳이었다. 일이 마치고 집에 오는 전철에서는 운 좋게 앉아서 가더라도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고 힘들었다. 장시간 굽이 있는 구두를 신다 보니 뒤꿈치는 까지고 발에는 물집이 잡혔다. 물론 일의 강도는 호텔마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이다. 나는 워낙 약골이어서 이 일은 내가 알바로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후에도 고깃집, 패스트푸드, 도시락전문점, 공장, 편의점 등등 다양한 알바를 경험했다. 그렇게 나의 피땀으로 번 돈은 당연히 소중했다. 하지만 이왕 돈을 번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직업에 관한 얘기를 나눌 때가 있었다. 한 친구는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할 생각이라고, 어차피 돈 버는 일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똑같을 것 같다고 했다. 직업에 관한 가치관은 저마다 다르기에 친구의 생각도 존중했지만,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다 똑같을 것 같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직업은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했기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회복지를 배우면서도 내가 이 일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는 한 달간 종합복지관에서 방중 실습을 했고, 4학년 2학기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노인복지관에서 학기 중 실습을 했다. 중간에 다양한 봉사활동도 했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설레고 기대되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그저 무미건조하게 느낄 뿐이었다. 그럼에도 4년 동안 배웠던 시간이 아까웠고 고민 끝에,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 분야에서 1년간 일했다.


그리고 지금은 10개월째 백수이다. 그 자리에서 이 악물고 버텼다면 언젠가 그 일이 좋아졌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지금 당장 힘들어서 더 못하겠는데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견디라는 말은 내겐 답이 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고 싶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에 나를 맞추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퇴사 후, 4월부터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편씩 글을 썼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면 뿌듯했고 성취감을 느꼈다. 일을 할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글을 쓰면서 혼자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 글쓰기가 좋았고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좋았다.


퇴사했을 때 막연한 계획은 실업급여를 마지막으로 받을 때쯤, 새로운 직장으로 취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4월 말에 역류성 식도염에 심하게 걸리면서 출퇴근하면서 직장을 다니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약을 먹으며 더디게 회복 중이다. ‘글쓰기’는 좋아서 시작하기도 했지만, 몸이 아프다 보니 제약이 생겨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기도 했다. 어쨌든 몸이 아프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건 축복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막연하게 느껴졌던 나의 첫 책을 진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는 언니를 통해 온라인 글쓰기반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어 글을 좀 더 꾸준히 쓰는 환경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9월 26일에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브런치 작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현재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그사이에 나는 반강제적인 백수에서 자발적인 백수로 변한 것 같다. 아무래도 작가라는 꿈이 생겨서 그런 듯싶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당장 전업작가를 꿈꾸는 건 아니다. 지금도 건강이 완전하게 회복되진 않았지만, 이젠 재택근무 알바라도 알아보면서 조금씩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쓰고 주말은 쉬자고 혼자 정했다. 그런데 지난주 월~목 한 편씩은 올렸는데, 금요일 하루 글을 못 썼더니 마음이 안 좋았고 안 써지는 글을 주말까지 붙잡고 있었다. 남들에겐 괜찮다고 하면서 나에겐 엄격해지는 완벽주의자다. 피곤했다. 그래서 ‘월~금 쓰겠다.’는 말도 일단 지웠다. 되도록 매일 쓰고 싶지만 못썼다고 해서 나를 압박하고 괴롭히고 싶진 않다. 완벽해지려는 마음을 내려놔야 할 것 같은데 글을 못 쓴 날은 조급하고 불안함이 생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백수’라는 점에 크게 불안하진 않다. 백수가 체질인가. 나의 방황이 언제까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간도 의미 있는 방황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백수지만, 작가 지망생으로 글을 쓰며 꿈을 찾아가고 싶다. 앞으로 이 매거진에서 이어질 이야기는 꿈을 찾아가는 내 모습을 글로 남기려고 한다. 때론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막연하게 느껴지는 미래를 조금씩 그리면서 오늘을 살아가려고 한다. 브런치 프로필에는 ‘현재 글을 쓰는 백수’라고 나를 소개했는데, 조금 수정해야겠다. 글을 쓰며 꿈을 찾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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