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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Mar 05. 2021

워라밸을 꿈꾸며 시작했던 편의점 알바

휴학생 시리즈(1)

나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1, 2학년 때는 비교적 널널하게 보냈다면, 3학년 때는 학생회를 하게 되어 학과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에 참여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여름 방학에는 전공 실습도 있어서 사회복지종합복지관에서 한 달간 실습을 했고 실습 책자도 만들었다. 또 여러 대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연합예배에서 1년 동안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래저래 하는 게 많았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고민 끝에, 1년 간 휴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친한 친구도 휴학을 한다고 했다.


우선 알바를 구해야 했다. 마냥 쉬고 싶어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일은 해야 했다. 알바를 구하는 데 기준은 있었다.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내 시간을 넉넉하게 갖기 원했다. 한 마디로 워라밸을 원했다. 여러 가지를 찾아보다가 편의점 알바가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 도보로 15분 정도에 위치한 편의점이었는데, 다른 것보다 시간대가 마음에 들었다. 평일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였다. 그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기 때문에, 워라밸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면접 볼 때 사장님이 최저시급도 맞춰서 주신다고 했다. 최저시급을 맞춰서 돈을 주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편의점이 많다고 알고 있어서 좋은 곳을 잘 구했다고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이었다면 다른 일자리를 구했겠지만, 나는 돈보다 내 시간을 갖기 원했다. 알바가 끝난 뒤 나머지 시간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마냥 늘어지면 무기력해질 것 같아서 건강한 쉼을 갖기 원했다. 알바를 하는 시간을 제외한 남은 시간에는 건강한 영혼을 위해 묵상 시간을 가지고, 체력을 위해 운동도 하고, 토익공부도 하고, 봉사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계획을 열심히 세웠다.




그런데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하려고 하다 보니, 나중에는 세웠던 계획이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먼저 편의점 알바를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 전에도 다양한 알바를 해봤는데, 여러 명이 같이 일하는 방식이었고, 내가 맡은 영역만 잘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편의점 알바는 혼자서 매장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일이었으니, 내가 맡은 시간대에는 내가 매장의 주인이었고 책임자였다. 기본 업무면서 중요했던 것이 물건의 이름과 위치, 재고 파악이었다.


특히 담배가 까다로웠다. 나는 비흡연자여서 담배를 아예 몰랐던지라 처음에는 손님이 어떤 담배를 달라고 했을 때, 어리바리 헤맸던 기억이 난다. 교대할 때 돈을 세는 것부터 시작해서 담배의 재고를 점검하는 게 먼저였다. 재고에 구멍이 나면 전 타임 근무자가 메꿔야 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계산하면서 실수한 것도 결국 내 책임이었다. 물건의 선입선출도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상품을 날짜에 맞게 진열하고 폐기할 상품은 놓치지 않고 바코드로 찍어서 폐기물품으로 등록하는 것도 기본 업무 중 하나였다.


내가 익혀야 하는 업무 외에도 깐깐한 점장의 지적과 진상 손님의 등장은 정신을 쏙 빼놓았다. 알바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한 번은 점장에게 밤 12시가 다 됐는데 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다음날 출근을 위해서 거의 잠이 든 상태였는데 화들짝 놀라서 전화를 받았다. 야간 타임은 점장이 근무했는데 얘기하는 것을 듣고 보니, 오전에 교대할 때 말해줘도 될 부분이었다. 그걸 밤 12시에 전화해서 얘기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초반에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는데, 차차 일에 적응하고 까칠했던 점장과의 관계도 풀어지면서 나를 심하게 쪼는 일도 없어졌다.




그렇게 편의점 알바는 익숙해져 갔는데, 생각보다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못했다. 토익공부도 하다가 말았고, 뭘 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여행, 단기 선교, 수련회도 마음껏 가고 싶었는데 오히려 돈에 마음이 묶여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기간만큼 빠지면 아르바이트비를 적게 받을 것이고, 너무 오래 빠지면 알바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기도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려고 시작했던 건데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았다. 내가 일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일이 나의 주인이 된 상황이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 수단으로 돈을 버는 건데, 다람쥐가 마냥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되어 돈을 벌고 있었다.


편의점 알바는 그 해 2월부터 9월 추석 전날까지 약 6개월을 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다른 곳에서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게 스펙에도 도움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후회도 했다. 그런 감정은 남들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못난 마음이었다. 분명 휴학 1년은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교 3학년까지 12년을 보낸 후, 내가 결정한 첫 휴학이었으니 말이다. 빡빡하게 3학년을 보냈을 때와 달리, 학교 시험과 과제 없이 온전히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내 마음이 자유하지 못했다.




워라밸을 꿈꾸며 시작했던 편의점 알바는 단순히 나의 자유시간이 많다고 해서 ‘워라밸’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그때 깨달았던 건, 여유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돈과 시간의 넉넉함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면 나를 돌아볼 시간조차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릇이 작으면 담을 수 있는 양도 딱 그만큼인 것처럼, 내가 힘이 없다면 시간이 무한정 주어져도 균형 있게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무기력해지고 만다. 워라밸은 외부적인 조건보다 내면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발견했다. 결국 내면의 힘을 길러야 건강한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남들의 기준에 영향받지 않는 나만의 삶을 건강하게 꾸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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