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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Oct 09. 2024

아빠가 내게 걸림돌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나의 사회적 성공과 결혼, 그리고 부모님

40년을 조금 넘게 살면서 내게는 몇 번의 선택의 갈림길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직업 선택의 갈림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장래 배우자가 될 수도 있는, 이성교제에 관한 선택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는 가끔씩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내 삶은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럴 때마다 결국 다다르는 결론은 남들이 말하는 성공의 길을 가지 않은 것과, 소위 배경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내게는 큰 축복이고 은혜라는 것이다. 내가 의사가 됐다면, 대학 교수의 배우자가 됐다면.. 나는 아빠를 내 삶의 걸림돌로 여기지 않았을까.



재수시절 나는 감사하게도 의과대학이나 약학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수능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점수로만 놓고 보면 일부 지방 의대/약대에 합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나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오래된 꿈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꿈이 얼마 안 가서 시들어버릴 줄은 정말 몰랐다;;)


대학 졸업이 다가올 시기, 과학자가 되기에는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길을 모색했을 때도 여러 선후배들은 유행처럼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고 진학했지만, 나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흥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합격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직업 안정성과 높은 소득, 사회적인 지위를 보고 그 직업을 선택해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물론 지금 그때로 돌아가면 그런 나를 말리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과학을 전공한 과학전문기자가 되었다. 작은 회사, 소박한 월급이었지만 천직이라 여기며 12년간 최선을 다했다. 선후배와 동기들이 의사가 되거나, 대기업에서 좋은 보수를 받는 모습을 보며 부러울 때도 많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며 나에게 주신 사명이라 여겼다. 결국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아 현재의 일을 할 수 있게 됐기에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자연과학대학에 진학한 나는 필연적인 이끌림에 따라 대학언론사 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과학을 다루는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된 시작점이었다. 내가 속한 매체는 영어로 기사를 쓰는 영자 잡지여서, 동료들 대부분이 해외 경험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부모님이 대학 교수여서 미국에서 1-2년간 생활하다 온 친구들도 있었고,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 임원의 자녀들도 있었다. 소위 금수저라고 할 수 있는 선후배들이 많은 곳이었다. 한마디로 흑수저인 나와는 배경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어서, 자주 이질감을 느꼈다.


20대 초반의 남녀 청년들이 모여 있는 곳은 어디나 그렇겠지만, 그 안에서도 수많은 사랑의 짝대기가 오갔다. 몇몇은 커플이 됐고, 선배들 중에는 결혼에 이르게 된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호감을 가진 친구도 있었고, 나에게 호감을 느낀 친구도 있었다. 나는 남중, 남고를 졸업해 연애 경험이 전무했기에, 나로서는 첫사랑이 될 수도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 첫사랑은 동아리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22살에 교회에서 만나 오랜 교제 끝에 결혼에 이른 현재의 배우자가 내 첫사랑이다. 동아리에서 내가 호감을 갖고, 또 내게 호감을 가졌던 친구들과 교제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내 선택에 있어 중요했던 기준은 나를 원하는 그 친구의 마음만큼 내가 정말 그 친구에게 애정을 느끼는가였다. 그리고 그 친구의 배경이 나와 다르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한국 최고 명문대 교수의 외동딸이라는 점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나와 같은 신앙을 공유하고,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제적인 배경을 가진 가정에서 자란 현재의 아내를 만나 오랜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렀다. 내 아내는 우리 부모님의 다툼, 아빠의 자살 시도 등 모든 것을 품는다. 나의 아픔을 공감하고, 안타까워하고, 이해하고, 돕고자 한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다.


만약 내가 의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내가 나를 좋아하던 명문대 교수의 외동딸, 지금은 그 스스로도 명문대 교수가 된 친구와 교제했다면, 그래서 결혼까지 이르렀다면 어땠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그랬다면 내가 했던 것처럼 수차례 자살을 시도한 아빠를 구하고, 돌볼 수 있었을까. 아빠를 내 체면이나 명예를 깎아먹는 존재로 여겨 멀리하지는 않았을까. 아빠를 돌보는 일과 내 원가정의 상처를 이해받을 수 있었을까. 배우자와 그 가족에게 나의 부모님이 한없이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존재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랬다면, 나는 아빠를 돕기 어려웠을 것이고, 어쩌면 아빠는 이미 돌아가시고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모두가 가정이고 그저 생각일 뿐이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현재 내게 주어진 내 삶의 여건이 감사할 뿐이다. 이 브런치북의 많은 내용이 아빠와 엄마에 대한 나의 상처를 털어놓는 내용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모님을 외면하고 살고 싶지는 않다. 성격상 내가 성공하거나, 유력한 집안에 장가를 갔다 해도 부모님을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에 그 사이에서 더욱 괴롭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선택한, 그리고 내게 허락된 삶의 경로와 현재의 모습이 내게는 그래도 가장 적합한 방향이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모순적이게도 나는 성공 지향적인 욕구가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에 이끌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애쓰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눈치 보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본능이기에, 내 본능과 욕구대로 되지 않은 삶이 오히려 내게 좋은 것이었다고 고백하게 된다.


우리 부모님이 그저 평범한 수준의 가정을 이루셨거나, 혹은 내 대학 선후배들처럼 자녀들에게 최선의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여건이 되셨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반복되는 투병과 자살시도로 자녀를 괴롭게 만드는 부모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사회, 경제적으로 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때문에 현재 불행하거나,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것 또한 감사할 일이다. 나는 그저 아빠와 엄마가 더 이상 갈등하지 않고, 자살을 시도하지 않고, 평범하고 평안하게 남은 여생을 보내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자식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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