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을 보았다
사회성이 부족한 아빠가 그런 모임과 활동에 잘 참여할 수 있을까 무척 걱정했지만, 아빠는 예상밖의 성실함으로 비가 오는 날에 옷이 흠뻑 젖더라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열심을 보이고 계신다. 교육 시작시간은 10시지만 그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서서, 9시 30분쯤에는 도착할 정도로 빨리 센터로 가신다.
얼마 전의 일이다. 센터에서 내게 전화가 왔다.
"어르신들 모시고 가을소풍을 가려고 해요. 아버님 참석하실 수 있을까요? 잘 말씀드려 주세요. 가신다고 하시면 준비물을 꼭 챙겨 와 주세요."
소풍이라니, 정말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빠가 간다고 할까? 가시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설득하지?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아빠에게 말을 꺼냈다.
"아빠, 치매안심센터에서 OO으로 소풍을 간다고 하는데, 가실 수 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빠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근래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빤 정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뒤에 바로 표정을 수습하고 자신은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좋은지 이미 그 진심을 느낄 수 있었기에 안 가시겠다는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며칠 뒤 담당 복지사님에게 안내를 받으시고 오셔서는, "맛있는 음식 많이 준다고 하니 가봐야겠다"라고 넌지시 말씀하셨다.
소풍 가는 날, 아침 일찍 아빠에게 편한 운동화를 신으실 것과 따뜻하게 입고 가실 것을 전화로 당부했다. 그리고 나는 아빠가 없는 빈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다. 아빠는 오후 늦게까지 귀가하시 않으셨고, 저녁 6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돌아오셨다.
무척 피곤한 모습이었다. 어땠냐는 물음에 별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많이 보고, 많이 움직이셨던 것 같다. 평소 집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지내시다 보니 오랜만에 활동량이 커서 많이 피곤하셨을 것 같았다. 소풍에 대해 별다른 말씀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좋은 시간을 보내셨으리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냥 그런 분위기? 냄새? 가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느낌이랄까. 어렸을 때 하루종일 어린이대공원이나 롯데월드에서 놀고 피곤에 젖어서 돌아왔을 때의 모습처럼, 많이 피곤하지만 즐거웠던 하루가 아니었을까. 그런 인상을 받았다.
나이가 든다는 건, 어린이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조금 실감이 났다. 마치 내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소풍 준비물을 챙기고, 치매안심센터에서 아빠가 무엇을 배우시는지 학습에 신경 쓰는 모습이 보호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외로움이라는 건 그런 걸까. 스스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지고,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존재할 필요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죽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냥 어린아이처럼 관심과 보살핌을 바라게 되는 걸까. 아마도 가보신지 65년은 더 됐을 소풍을 다시 경험하시는 아빠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시도하는 아빠의 마음도 이 외로움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의 사슬이 묶어 이끌어낸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아빠의 하루하루가 나쁘진 않겠다. 묶였던 사슬을 끊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적인 생각도 들었다.
아빠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