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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Dec 30. 2024

End + And

분노에서 이해와 치유로

1달 넘게 글을 쓰지 못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아빠에 대한 감정과 기억들을 정리하는 글을 써 왔는데, 예상치 못했던 또 하나의 문제가 내 삶에 다가와 정신이 없었다.


이번엔 내 친아버지의 문제가 아닌, 장인어른의 문제였다.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던 장인어른이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이었다. 나 몰라라 할 수도 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구체적으로 기록하기에는 혹시 언젠가 이 글을 볼 수도 있는 아내의 감정을 힘들게 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브런치에는 적지 않으려 한다.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처럼 '장인어른 구하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아빠를 만나기도 어려웠고, 글도 쓰기 어려웠다. 아직도 '장인어른 구하기'는 진행 중이다. 다행히 그동안 부모님 사이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아빠에게 정부에서 진행하는 어르신 일자리 사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봐 드리려 했지만, 아쉽게도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많은 수가 기초연금을 수급하는 어르신을 위한 일자리였고, 그렇지 않은 일들은 아빠가 하기에는 어려워 보이는 사무보조나 통학 안전 지킴이 같은 일들이었다. 내심 기대하셨을 수도 있지만, 아빠의 일자리 구하기는 이렇게 일단락됐다.


아빠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는 글쓰기는 이번화를 끝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지난 1년간 글을 쓰면서 아빠와 엄마를 향한 마음속 분노가 누그러졌고, 두 분의 입장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자살을 시도하고, 엄마를 칼로 위협하는 아빠를 향한 분노였다. 누군가에게 나의 불행한 가정환경을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 언젠가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를, 내 아이들에게 내 삶을 이해받기 원하는 마음이 컸다.


기획 없이 쓰기 시작한 글이었기에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감정과 생각이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 글을 이어왔다. 놀랍게도 이제와 작성한 글들을 돌아보며 깨닫는 것은 '이해'와 '치유'다. 아빠에 대한 분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조금씩 아빠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자살 시도와 배우자를 향한 폭력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투병과 사회로부터의 단절, 고립감 등의 감정이 사람을 어떻게 늪으로 빠뜨릴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같은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경각심도 느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 분노의 밑바탕이 되는 상처도 조금은 아물었음을 느낀다. 결코 완전히 치유될 수 없을 것이고,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상처가 더 깊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빠의 행동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나도 알게 되었고, 아빠 역시 그 원인을 없애기 위해 우울증 약 복용과 치매안심센터 교육 참석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희망을 걸어보게 된다.


아빠를 '가해자'로, 나를 '피해자'로 여기는 생각도 달라졌다. 불행한 환경에서 받은 상처는 분명하지만, 그 상처에 매몰되어 부모를 탓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되새겨 본다. 또한 현재의 내 삶은 부모님이 겪은 질곡에 비하면 감사할 것으로 넘쳐남을 고백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시고, 위로를 건네 주신 독자들께도 감사드린다. 내 이야기를 읽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든 계속 써 내려가게 만드는 큰 힘이 되었다. 읽는 이에게 도움이 되는 재테크나 커리어 개발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우울할 수도 있는 어느 가정의 이야기를 읽어 주신 독자들은, 나에게는 마치 상담치료자와 같은 존재였다.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지만, 2025년에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내가 살아오며 경험한 것과 생각한 것들을 바탕으로 나의 아이들에게, 길을 찾는 청년들에게,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고민하는 청장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 '아빠가 자살을 시도했다'를 읽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2025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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