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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Aug 08. 2024

술과 부부싸움, 그리고 타인의 시선

아빠에 대한 기억#1

재택근무는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줬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가족과 나에 대해 좀 더 많은 걸 생각하게 됐다. 그 중 하나가 아빠에 대한 과거 기억을 정리하고,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되짚어 보는 일이다.


어린시절 아빠에 대해 떠오르는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인 것들이다. 자주 술을 드셨고, 엄마와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다. 고성이 오가는 것은 기본이고, 발을 딛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물건이 던져지고 깨져서 집안에 나뒹굴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느날은 아빠가 던진 물건에 맞은 엄마가 피를 흘려 병원에 갔던 기억도 있다. 물론 내 기억속의 일이라 왜곡되었거나, 심지어 꿈을 사실로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해 떠오르는 기억은 대개 그런 것들이다.


아주 어렸을 때 나는 다투는 부모님을 향해 울며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생 시절엔 집안 어딘가에 들어가 있거나, 아예 집밖으로 나가기도 했던 것 같다. 혹은 할머니께 전화해서 엄마 아빠가 싸운다고, SOS를 청하기도 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 중 하나는, 집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밖에서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고성이 오가는 우리집을 바라보던 모습이다. 나는 그게 많이 부끄러웠던 것 같다. 이웃집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들이 나를 싸우는집 아들로 보는 것만 같아서 눈길을 마주치는 것도 싫었다.


어쩌면 그때의 일들이 나라는 사람의 내면에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볼까?'라는 무의식이 깊게 자리잡게 한 사건이 아니었을까. 남의 시선을 이토록 의식하는 내 모습이, 아빠 엄마의 다툼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지는 않을까.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종종 든다.


지금은 조금 나아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나는 다른 사람을 무척 많이 의식했다. 친구들이 마치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성적은 그저 그런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움츠러들었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유쾌하고 리더십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한동안 애쓰기도 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면서부터는 층간소음 등으로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오히려 아이들에게 크게 야단을 치거나 심지어 자발적으로 이사를 하기도 했다.


물론 나의 이런 모습이 100% 부모님 탓은 아닐 수 있지만,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싸우던 모습과 우리집을 쳐다보던 이웃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의 모습이 연결됐다. 


한편으로 내 자녀들에게는 나의 이런 모습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데, 이미 첫째에게서도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하는 모습이 보여 속상하기도 하다.


지금 나에게는 커리어적인 성취나 사회적인 성공보다, 아이들을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기르는 것이 최우선순위이기에,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 문제의 원인을 찾고, 아이들에게 악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방법을 찾고 싶다. 그리고 엄마 아빠로부터 시작되어 나를 옭아매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끊어내고 자유로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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