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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Aug 08. 2024

명절만 되면 두려웠던 싸움

아빠에 대한 기억#2

내 기억 속 아빠의 형제들은 별로 친하지 않아서, 멀리 떨어져 살지 않음에도 명절이 아니면 왕래하지 않았다. 명절에도 으레 한 번씩은 꼭 큰 소리가 오가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아빠와 형제들 간에 다툼이 있거나, 아니면 엄마와 아빠의 다툼이 있었다.


그래서 내게는 명절에 용돈을 받았던 일 외에는 좋은 기억이 없다. 나이가 들어 내가 성인이 되고, 가정을 이룬 뒤에도 이상하게 다툼이 이어졌다. 나와 부모님 사이에 갈등이 있거나, 나와 아내 사이의 갈등이 생겨서 명절을 즐겁게 보낸 적이 그리 많지 않다. 마치 유산처럼 이어지는 이 갈등의 원인은 뭘까.


아빤 피해의식이 많은 사람이다. 명절에 싸우고 종종 하시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없이 살았던 그때 형제들 사이에 생겼던 마음의 앙금이 지금껏 이어져온 것을 알 수 있다. 가난한 집에 형제가 많다는 이유로, 장남에게만 지원이 집중되어 차남인 아빠 본인은 신발도 제대로 신고 다니지 못했던 것이 그렇게 가슴에 사무쳤던 것 같다. 아빠에게는 그런 결핍과 불공평한 대우들이 쌓여 피해의식이 되었고, 다른 형제들은 그들 입장에서 받았던 상처들이 쌓여 갈등의 골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빠의 이런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내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아빠는 엄마와 다툴 때 특히 "남편 알기를 우습게 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도 종종 아내와 자녀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화를 내고, 부부싸움에 이르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스스로를 돌아볼 때면, 어김없이 내 모습이 마치 아빠의 모습인 것 같아 씁쓸해진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며 아빠와 같은 모습이라며 걱정하신다. 작은 일에도 욱해서 크게 화를 내는 게 꼭 아빠를 닮았다고 한다. 고모는 이런 모습이 아빠와 형제들에게 모두 있다며, '우리 집안에 이어지는 저주'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내게 그걸 끊어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신다. 나까지 그러면 안 된다고. 내 자녀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저주까지야 아니겠지만, 자녀는 부모의 말과 행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에 분명히 아빠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나와 아이들에게 이어질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결국 이 문제 역시 아빠에게서 나에게 넘겨진 숙제가 아닐까. 아빠와 똑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아빠와 형제들을 옭아맨 피해의식과 열등감에서 벗어나려면 나 스스로를 잘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과 반응을 다스리거나,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까지 내게는 그게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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