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 대한 기억#3
아빠에 대한 기억이 모두 아빠에 대한 상처가 담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아빠에게 미안했던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때 뭔가를 학교에 가져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점심시간쯤 아빠가 학교에 가져다 주시기로 했다. 운동장에 나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아빠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까이 가면 갈수록 마음이 몹시 불편하고, 심장박동도 빨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아이들이 신경쓰였다.
아빠를 만나자마자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받아야 할 물건을 건네받고, 바로 뒤돌아섰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빠른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학교 건물에 다다랏을 즈음 슬쩍 뒤돌아보니, 아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계셨다. 내가 있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것 같았다.
아빠도 내가 아빠를 부끄러워했다는 걸 알았을까. 아빠는 키가 무척 작고, 뚱뚱했다. 그리고 직업도 (그 당시 내 생각으로는) 변변찮은 직업이었다. 학교에서 부모님 가정환경 조사를 할 때면 부모님 직업을 뭉뚱그려 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아빠가 부끄럽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날 분명하게 드러났다. 아빠의 겉모습이 부끄럽고, 그런 나와 아빠를 친구들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내게 있었던 것이다.
그 일에 대해 아빠가 어떻게 느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슬며시 내게 "너 아빠한테 아는 척도 안 하고 가버리더라?"는 말을 하셨던 걸로 봐서는 어느 정도 눈치는 채셨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부끄러운 감정은 없다. 몰골이 전보다 더 형편없는 노인이 되어버렸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로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다녔고, 부모님의 다툼을 지금도 위아랫집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그런 것들이 내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 초등학교 6학년때 아빠를 모른척했던 일이 잘 잊혀지지 않고, 생각할 때마다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아빠였다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언젠가 내 딸이나 아들이 친구들 앞에서 내가 부끄러워 모른척 해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하면 할수록 아빠에게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