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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Aug 08. 2024

아빠는 나를 사랑했을까

아빠에 대한 기억#4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아빠가 날 많이 사랑해 줬다면, 그래서 내 무의식과 기억에 그 사랑이 새겨져 있다면, 아빠가 아무리 자살 시도를 한들, 큰 병에 걸려 병수발을 했어야 한들 힘들더라도 분노가 치밀어오르지는 않지 않을까. 내가 느끼는 아빠, 그리고 부모에 대한 좌절감은 어쩌면 사랑받은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은 아닐까.


이 가정이 틀릴 수도 있지만, 나는 내 기억속에서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끄집어내고 싶어졌다. 하지만 잘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아주 어렸을 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때에는 아빠가 나를 많이 사랑해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대뜸 물어보기도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빠는 날 많이 사랑해 줬냐고.


엄마의 대답은 아쉽게도 '아니다에 가까운 모르겠다'였다. 별로 기억나는 것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보였다. 아쉽게도 사진이나 동영상이 흔한 시대에 살았던 것은 아니었기에,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도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억지로 몇 가지를 사랑 받은 기억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끄집어내 봤다.


#1 자전거 금식 사건

어렸을 때 나는 떼를 많이 썼던 것 같다. 대부분은 갖고 싶은 걸 얻기 위해서였는데, 가정 형편상 허용되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이례적으로 허용됐던 기억 중 하나는 초1-2학년 즈음의 자전거 구입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매장에서 자전거를 파는 경우도 있었지만, 삼O리처럼 유명 브랜드가 아닌, 그야말로 이름 없는 자전거들은 1톤 트럭에 싣고 다니면서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가끔 그분들이 내가 살던 동네를 다녀가셨는데, 어느날 나는 자전거가 너무 갖고 싶어서 부모님을 조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주위에 누군가가 새 자전거를 가졌던 게 방아쇠를 당겼던 것 같다.


부모님은 당연히 안 된다고 하셨고, 나는 속상한 마음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밥도 먹지 않고 계속 누워 있자, 엄마 혹은 아빠가 날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아직 동네를 떠나지 않고 있던 자전거 트럭에 데려가서 자전거를 고르도록 하셨다. 그렇게 난 새 자전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때 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자전거를 사 주신 분이 엄마였는지 아빠였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왠지 아빠에게 사랑 받은 기억을 짜내려 하자 그 순간이 생각났다. 비록 새 자전거를 산지 얼마 되지 않아 도둑맞고 부모님께 크게 혼나야 했지만, 억울함보다는 큰맘먹고 자전거를 사 주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다.


#2 청계천과 레고, 그리고 워크맨

어려서부터 샘이 많았던 나는 사촌 형네 집에 갈 때마다 집에 즐비한 레고를 보며 부러웠다. 길이가 50cm 정도 되는 커다란 배 모양의 레고를 보며 몇 번인가 아빠 엄마를 졸랐다. 그래서 아빠가 날 데려간 곳이 청계천 인근의 문구거리다. 아마 지금의 창신동 문구거리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곳은 예전에도 다양한 장난감을 비교적 싼 가격에 팔았다. 하지만 사촌 형 집에 있는 것 같은 최상위 모델의 레고는 없었다. 지금으로 치면 이월상품이나 한단계 급이 낮은 제품들을 팔았던 것 같다. 사촌형 집에서 눈높이만 한참 높아진 나는 고르고 골라 그나마 마음에 드는 블럭을 손에 쥐었다. 그러면 며칠간은 신나게 가지고 놀다가, 이내 시들해졌던 것 같다.


아빤 한달에 한두 번씩 청계천에 나가셨는데, 그 길에 따라나서는 것이 내겐 신나는 일이었다. 그곳에 가면 각종 비디오테잎과, 중고 오디오, 워크맨, 휴대용 CD플레이어 등을 원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아빤 먼지 묻은 중국 무협영화 시리즈의 비디오테잎을 한보따리 사고 파는 게 일이었고, 나는 그 틈에서 어린이용 만화나 영화 (후뢰시맨, 마스크맨, 울트라맨 등)를 한두 개 골랐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빠딱빠딱한 투명 포장지에 싸인 소니, 아이와 워크맨과 CD플레이어를 사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이면서 집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기억한다. 나는 세뱃돈 등을 모아 마침내 청계천에서 아이와 브랜드의 워크맨을 살 수 있었다. 얇고 세련된 기기가 아니라, 두껍고 투박한, 기본 기능만 되는 기기라 아쉽기도 했지만 그걸 손에 넣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가수들의 앨범을 사서 테잎이 늘어지도록 듣고, 학교수련회나 소풍 때도 가지고 다녔다. 물론 친구들이 가진 것보다 후졌다는 생각에 자랑스레 꺼내놓고 듣지는 못했지만.. 내겐 잊지 못할 추억이다.


어렵게 워크맨을 사고, 소중하게 썼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나는 휴대용 전자기기를 사용하다가 고장나거나 새 제품으로 바꾸더라도 쓰던 기계를 보관해 두곤 한다. 대학에 입학해 썼던 중고 산요폰도, 처음 컬러 액정을 장착했던 삼성 폴더폰도, 스마트폰이라는 신세계를 열어 줬던 애플의 아이폰3GS도 여태 가지고 있다.


'아빠가 날 사랑했을까'라는, 어쩌면 당연하고 바보같은 질문에서 시작해 아빠와 관련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아빤 나름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날 아껴줬던 게 아닐까 싶다. 마지못해 갖고 싶어하는 자전거를 사주고, 본인이 좋아하는 곳에 날 데려가고, 그리고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 비록 자식이 원하는 것과 똑같은 레고는 아닐지라도 아빠 딴애는 비슷한 것 하나라도 사주셨던 것이.. 아빠에게는 그래도 최선의 애정표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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