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의 첫 번째 여름방학, 소피아의 첫 번째 여행 1

(그래서, 난 카메라를 들고 간다 4화)

by 별빛바람

스텔라의 첫여름방학은 너무나 설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맞벌이를 하는 아빠와 엄마 스케줄 때문에 여름방학의 거의 대부분은 학교, 지역 키움센터, 학원에서만 지냈다. 그나마 학교 숙제가 없기 때문에 조금 늦게 까지 TV를 시청할 수 있는 자유만 주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어딜 이동하기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스텔라가 확진이 되면 나 아니면 첼리나 둘 중 한 명은 연차를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업무 스케줄도 꼬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많이 조심했다. 사람이 많은 곳은 되도록 피했으며, 롯데월드를 좋아하고, 아쿠아리움을 사랑하던 아이의 동선을 최대한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가 잠시 잠잠해지니, 나와 첼리나는 스텔라의 외갓집인(그리고 나의 처갓집이며, 첼리나의 친정이었던) 포항을 가기로 결정했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전 세계를 바람과 같이 떠돌던 방랑객이었는데, 한국에서 휴가 스케줄을 짜려하니 쉽지 않았다. 하지만 외갓집을 오랜만에 가는 스텔라한테는 정말 설레는 일이었을 것이다. 스텔라의 첫 번째 여름방학. 그 여름방학은 포항의 외갓집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소피아는 영문도 모른 채 첫 번째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 설렌 것은 아빠였다. 스텔라의 첫 번째 여름방학, 소피아의 첫 번째 여행을 위해 소중한 기록을 간직하고 싶었다. 아니 아빠의 목적이 더욱 중요했다. 이번 여행의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것을 "필름"으로 담고자 했다. Kodak Gold 200은 다소 어두운 감이 있어, 전천후로 사용할 수 있는 Kodak Ultramax 400 필름을 10 롤 준비했다. 디지털로 360장의 사진을 찍는 것은 몇 시간 안돼서 끝낼 수 있는 일이었지만, 필름으로 10 롤을 찍는다는 것은 정말 신중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소중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디지털 사진이 수많은 B컷 중에서 최고의 A컷을 선별해야 하는 작업이었다면, 필름은 모든 사진이 다 A컷으로 선정하고 싶을 정도였다. 카메라는 Lieca MP, Summilux 50/1.4(2nd)와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두 렌즈와 EOS 30, EF 28-105, 3.5-5.6 줌 렌즈를 들고 갔다.

직장인이었던 나와 첼리나는 하루의 연차가 너무 소중했다. 그래서 항상 여행의 출발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해외여행을 가도 금요일 저녁, 제주도를 가도 금요일 출발이었다. 그래야 그나마 토요일과 일요일이라는 이틀의 연차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린 자녀가 있는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오늘 하루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의 연차를 정말 소중하게 아껴야 했다. 언제 갑자기 아이가 열이 날지도 모르고, 학교에서 급한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은 저녁 늦게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업무를 마치고 부지런히 퇴근을 하여 집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넘었다. 급하게 저녁밥을 먹고, 캐리어에 짐을 쌌다. 나는 카메라 가방에 두 개의 바디와 렌즈를 챙겨 넣는다. 역시 중요한 필름도 챙겨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짐은 표준 줌렌즈와 디지털카메라 하나면 충분히 짐을 간소화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필름을 선택한 이상 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바디는 최대한 줄이며 갈 수 있다 치더라도, 필름은 꼭 챙겨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공간히 생길 수밖에 없다. 그날은 나의 카메라 짐만 한 짐이었다.


포항으로 출발!(Lie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벌써 도착했어요? (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포항까지 내비게이션으로는 3시간 30분 정도였지만, 저녁까지 근무를 하고 출발을 하니 많이 피곤했던 탓에 새벽 4시가 다 되어 도착을 했다. 커피 한 잔과 에너지 드링크 몇 캔을 들이키며 운전을 했지만 그리 피곤하진 않았다. 오랜만에 외갓집과 친정을 방문한 스텔라와 챌리나, 첫 여행인 소피아, 그리고 필름 사진을 원 없이 찍을 수 있었던 나. 모두의 설렘이 이번 여행의 테마였을지 모른다. 물론 몇 년동안의 꿈의 카메라였던 Leica MP를 쓸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땐 나도 번 아웃이었는지 모른다. 세상 모든 일들에 의욕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짜증만 날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발견하게 된 Leica M-E(typ240)의 판매 페이지. 미개봉 제품이지만 라이카 코리아의 정식 판매품은 아니었고, 개인 유통사에서 매점매석을 한 뒤 가격을 붙여서 팔았던 카메라였다. Leica의 M바디는 요즘은 1천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지만, Leica M-E(typ240)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저렴할 뿐이지 타 카메라에 비해서는 여전히 비쌌다. 몇 주를 홈페이지를 바라보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첼리나에게 이야기했다. 세상 모든 것에 의욕이 없고, 감정이 자꾸 다운이 되는데 아무래도 이 카메라가 나에게 전환 요법이 될 것 같다 했다. 거금이었지만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1년 넘는 기간 동안 행복하게 사진을 찍었으나, 필름으로 바꾸고자 하는 생각에 추가금을 들여 반도카메라에서 신품으로 Leica MP를 구입한 지가 2주 전이었다. 2주 전 개시를 한 뒤, 의미 있는 사진을 찍는 첫 시도였기에 나에게는 너무나 설레는 순간이었다.

수동 카메라인 Leica MP는 빠른 순간을 찍기에는 부적합한 카메라였다. 그리고 RF라는 이중 합치를 활용하는 카메라였기 때문에 렌즈의 상과 뷰파인더의 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구조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었지만,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장면이 사진을 통해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더욱 설레는 일이었다. Leica의 M body는 그런 묘한 매력이 있었다. 물론, 다소 무리할 수밖에 없는 가격이었지만, 그 가격 이상으로 내 생활에 활력을 주었고, 다시 의욕이 생기게 되었으며, 언제나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었다 생각한다.

소중한 카메라의 첫 데뷔작.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처음이라는 단어를 선물해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포항을 방문한 소피아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서울의 매연과 시끄러움과는 달리 포항은 서울보다는 한적했다. 외갓집을 몇 번 갔던 스텔라는 초등학교 첫 방학으로 외갓집에 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설레었을 것이다. 나는 첫 필름 작품집을 만들 수 있다는 설렘, 이제 막 개봉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설렘이 함께 겹치게 된 것도 하나의 큰 축이었다. 그리고 코로나로 바쁜 일상을 보낸 첼리나는 코로나 이후 첫 친정 방문이라는 설렘. 어쩌면 이 여행의 테마는 "설렘"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설렘을 필름으로 담고자 고민을 했다. 연사를 사용할 수 없으니,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렌즈의 용도를 분리해야 했고, 아이의 움직임을 관찰하더라도 항상 결정적 순간에 찍을 수 있도록 그 타이밍을 계속 포착해야 했다. 너무 이쁜 장면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다시 그 모습을 해 보라 한다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날 저녁의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소피아는 너무 낯선 외갓집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왜 그랬는지 중요하지 않다. 아이에게 한 순간은 짜증 나고 두려웠겠지만, 갑자기 변한 순간에서 아이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불과 10초도 안된 순간이다.


엄마! (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엄마? (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힘들게 결정한 첫 방학 기간 중 여행이었지만, 이 날은 그 어느 때보다 비가 많이 내렸다. 특히 포항은 폭우가 내려 거의 대부분 일상을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스텔라는 그래도 행복했다. 원 없이 게임을 할 수 있었고, 외할아버지와 TV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맛있는 밥을 먹을 수도 있었다. 스텔라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소피아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과는 다른 낯선 곳에서 웃으며 뛰어놀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행복은 너무 거창한 곳에서 짠 하고 나타나지는 않는다. 가족과 밥을 먹는 순간에도, 아이의 즐거운 표정을 바라보면서도 분명 찾을 수 있다. 그 행복을 찾았던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것 만큼 행복을 간직하는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스텔라의 첫 번째 여름방학, 소피아의 첫 번째 여행을 위한 사진은 그러한 평범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다소 특별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였지만, 그 필름 카메라를 구성하던 사진은 너무나 평범한 순간일 뿐이다.


아싸! 게임해야지! (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할아버지! 이거 신기하죠? (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먹기 싫어! (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사진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딜 가더라도 그때의 공간에 대한 느낌은 사라지더라도 그때의 설렘은 항상 간직하게 된다. 그 사진은 꼭 필름이 아니더라도, 작은 스마트폰 카메라라 하더라도 동일하다. 여행을 가며 느끼는 오감의 만족 중 기억만 남게 되지만, 사진이 함께 있다면 시각적 만족도 함께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때 느꼈던 공기의 냄새도 함께 사진으로 남길 수 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 당시 찍은 사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시 기억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카메라는 그런 장비다.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게 사실이다. 거기에 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갈 경우 무거운 렌즈는 덤으로 가져가야 한다. 간혹 줌 렌즈로 바꿀 수도 있지만 단렌즈의 매력에 빠지게 되면 화각별로 렌즈를 챙길 수밖에 없다.

사진의 매력에 조금 더 빠지게 되면 화각이라는 늪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조금만 더 넓었으면, 혹은 여기서 조금만 더 좁았으면 하는 상상을 해 보며 사진을 이리저리 찍어본다. 디지털카메라였다면 수많은 B컷 중에 한 컷을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는 좀 더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이 상황에 가장 효율적인 렌즈를 선택하기도 한다. 물론, 지금 막 선택한 렌즈가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그래도 좀 더 잘 나왔으면?이라는 재미난 상상도 해 볼 수 있으니 어찌 되었건 즐거운 매력도 함께 가지게 된다.

스텔라 첫여름방학, 소피아의 첫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난 카메라를 들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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