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의 첫 번째 여름방학, 소피아의 첫 번째 여행 2

(그래서, 난 카메라를 들고 간다 5화)

by 별빛바람

이틀 동안의 지루했던 장대비가 그쳤다. 늦은 8월이었지만 포항은 여전히 비가 내렸다. 코로나 때문에 해수욕장을 방문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에어 바운스로 만든 물놀이 장을 처갓집 마당에 폈다. 따뜻한 물을 조금 담아 물놀이장을 개설하니 아니 들은 너무나 신났다. 아무래도 늦여름이라 그런지 아주 차가운 물은 아이들이 감기 걸릴 듯하여 온수를 계속 틀어서 옮겼다. 화장실에서 온수를 담아 마당의 물놀이장까지 옮기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날의 사진은 Leica MP가 아니라 Canon EOS 30과 EF 28-105, 3.5-5.6 렌즈로 찍었다. AF가 가능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몇 대 가지고 있는 필름 카메라였기 때문에 물에 젖어 고장 난다 하더라도 별 부담이 없었다.

이날은 Kodak Ultramax 400이 제 역할은 했다고 생각한다. 보통 Kodak Ultramax 400은 해수욕장을 갈 때 주로 사용하는 필름이라 했다. 쨍한 색감이 어우러져 알록달록한 느낌을 너무나 아름답게 만들어주곤 하는 필름이었다. 거기에 Canon EOS 30의 P 모드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정 노출로 촬영하였음에도 색이 뜨거나 밝거나 어둡게 만들지 않았다는 장점을 주었다. 아무래도 카메라 회사의 기술력은 사람의 판단 이상으로 뛰어난 결과를 만들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물론 낭만을 위해서는 수동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있을 수 있지만 편하게 찍기에는 자동카메라가 정말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난 아직도 Canon과 Nikon의 DSLR을 그리워할 때가 많다.


34250009.JPG 물놀이 1 (Canon EOS 30, EF 28-105, 3.5-5.6, Kodak Ultramax 400)
34250019.JPG 물놀이 2(Canon EOS 30, EF 28-105, 3.5-5.6, Kodak Ultramax 400)
34250029.JPG 물놀이 3(Canon EOS 30, EF 28-105, 3.5-5.6, Kodak Ultramax 400)

그때는 차를 가지고 있는 게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모님 댁인 거제도를 방문하려면 고속버스가 아닌 관광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서울 청량리에서 밤늦게 시내버스를 타고 2시간. 거기서 관광버스를 기다려 거제도까지 내려갔다. 그때 아버지는 Nikon FM2와 Olympus IZM-100을 서로 맞바꿨다 했다. 아마 추가금 몇만 원을 더 주셨던 거 같다. 현대에서 수입한 제품이 아닌 일본 내수용 제품이라 한국어 메뉴도 없었고, 설명서는 손으로 슥슥 쓴 A4용지 한 장이 다 였다. 아버지는 그 카메라를 들고 가족과의 여름휴가를 출발했다. 무슨 필름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 거제도의 몽돌 해수욕장과 구조라 해수욕장을 돌며 폐타이어로 만든 튜브를 타고 즐거운 여름방학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덤으로 추워서 떨고 있으면 맛있게 끓여주신 육개장 사발면. 여전히 그때의 앨범을 뒤적여 보면 육개장 사발면을 포크로 먹고 있는 내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가족의 추억을 남기고자 카메라를 바꾸셨다. Nikon FM2는 아버지에게 너무나 어려운 카메라였다. 수동 초점도 어려웠지만, 노출의 개념도 공부하지 못하셨다. 아니 공부할 수 없었다. 밤늦게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피곤을 떨쳐내고자 소주 한잔에 몸을 맞기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늘 담배냄새와 소주 냄새가 났지만, 그런 아버지고 가족들의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자 사진을 남기셨던 분이다. Olympus IZM-100은 너무나 편리한 카메라였다. AF가 가능했고, 자동 노출 조정이 가능했다. 그냥 셔터만 누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줌 렌즈가 달려 있기 때문에 먼 곳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셨다. 나와 누나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중학교 졸업식에서도 이 카메라는 항상 같이 있었다. 여행을 갈 때도 들고 다니던 카메라였다. 언제나 여행을 갈 때마다 아버지는 사진점에서 필름 몇 통을 사는 게 일상이었다. 필름의 특징도 모르셨다. 한 롤에 3천 원 정도 하는 돈을 주고 필름을 사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사진점에 가서 돈을 주고 필름을 맡기면 현상된 필름과 인화된 사진을 들고 와 그때의 추억을 되새겼다. 아버지도 역시 사진을 잘 알지는 못하셨지만 사진을 찍는 것을 너무나 사랑하셨던 것 같다.

이제 내가 찍는 사진은 스텔라와 소피아의 추억을 위한 사진이 되었다. 스텔라는 이제 초등학생이라 본인의 의사표현을 잘하였지만, 아직 28개월이 되지 않은 소피아는 의사표현보다는 울음으로 주로 표현하곤 했다. 그런 소피아에게 첫 여행은 낯선 추억이었을지 모른다. 포항은 처갓집 식구들이 모여사는 곳이기 때문에 스텔라의 외가 친적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이기도 했다. 스텔라는 늘 새롭게 보는 장소와 새로운 곳을 사진으로 남기길 좋아했다. 어렸을 때 당근 마켓을 통해 사준 핑크색 Sony Nex-3n이 스텔레에겐 장난감과 같은 카메라였다. 아직 반 셔터와 초점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눈으로 본 기억"을 "마음으로 담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그날도 친척들과 식사를 하는 날이었고, 맛있는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식사를 마쳐가던 순간이었다.

34220010.JPG 눈으로 본 기억을 마음속에 담기 위해(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34220028.JPG 자장면은 맛있어! (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집으로 돌아온 뒤 스텔라와 소피아는 또다시 신나는 일의 연속이었다. 외할아버지와 TV 시청. 그리고 뜨거운 빛을 가리기 위해 사 주었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포즈를 잡았던 가족들 앞에서의 패션쇼.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을지라도, 스텔라와 소피아는 너무나 재밌어서 한 껏 웃게 된 하루였다. 아이들의 마음은 아직 순수했던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그날의 추억은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부끄럽지만 가족들과 웃고 떠들 수 있는 것이 행복해서였을까?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카메라는 여전히 셔터를 움직이며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담곤 하였다.

그다음 날의 햇살은 너무나 따사롭고 맑았다. 푸른 하늘이 마치 바닷가를 상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여전히 그날은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많았다. 처갓집에서 경주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거리였으나, 경주는 너무 사람이 많아서 자주 방문하지 않던 터였다. 하지만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스텔라를 위해 첨섬대와 경주박물관 구경을 하기 위해 차를 운전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단체로 줄 서서 방문한 경주 수학여행은 곰팡이 냄새나는 여관방에서 몰래 담배 피며 술 마시는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나, 아무 생각 없이 셔틀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며 첨성대 잠깐 구경, 문무왕릉 잠깐 구경하던 시절의 모습만 기억에 남았었다. 하지만 첼리나는 수학여행 때 경주를 간 기억이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차 타고 30분 거리였으니 경주로 수학여행을 갈 정도로 비효율적인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수학여행을 경주로 가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도 혹은 해외 수학여행을 가곤 하는데, 오히려 경주는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 위한 곳으로 혹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바뀐 지 오래된 듯하다. 나도 처갓집 근처였긴 하지만 경주를 그리 자주 가진 못했다. 언제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거리로는 30분 거리였지만, 늘 차가 막혔기 때문에 쉽사리 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항상 우리 가족의 코스는 첨성대 등 유적지 방문 후 경리단길에서 밀면을 먹고, 잠깐 구경을 하다 복귀하는 코스를 즐기곤 하였다. 경주는 우리 가족에게 잠깐 외출을 하며 구경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었다.

그날도 햇살이 따사로웠는지 하늘이 너무 맑았다.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모두가 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당시 돌 갖지 난 아기도 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곤 했다. 물론 사람들은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질 않는다. 이젠 사람들은 주위의 모습을 관찰하기보다 나와 관계된 것만 바라보곤 한다. 스마트폰으로 시야를 줄인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 몇 명만 바라보며 누가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갖질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들 눈에 8살짜리 아이가 사진을 찍는 모습과 돌 갖지 난 아이가 사진을 찍는 모습은 그냥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였을 것이다. 우리 가족의 모습도 그랬다. 하지만, 눈으로 본 기억을 마음속에 담기 위해 스텔라는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물론, 소피아에게 카메라는 그저 장난감일 뿐이다.


34240024.jpg 꽃을 마음속에 담기 위해(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34240025.jpg 저 멀리에(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34240029.jpg 나도 카메라 좀 줘!(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길 사진을 찍을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좋은 카메라와 좋은 렌즈라 한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카메라와 렌즈는 도움을 줄 뿐이지만 진짜 필요한 것은 빛이다. 빛이 충분하고 이쁘다면 그 어느 사진보다 더 이쁘게 나올 수 있다. 색감 역시 빛이 충분했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라이트룸이나 포토샵을 통해 색감 보정을 하기 때문에 수많은 B컷들을 편집해서 활용한다면 좋은 카메라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몇 가장 좋은 것은 빛이 있기 때문에 이쁜 사진이 될 수 있었다. 우리의 사진은 그렇다. 빛이 사진을 만들고, 빛이 색을 만들어내고, 빛이 추억을 만들어낸다.

내가 찍는 사진들 대부분이 그랬다. 대부분의 렌즈는 50년이 넘은 렌즈들이었다. 조금이라도 싼 렌즈를 사기 위해 클리닝 흠집은 무시하였다. 그러다 보니 요즘의 최신 광학기술을 활용한 좋은 렌즈보다는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런 올드 렌즈는 빛이 충분하다면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가끔 호환 렌즈를 최신으로 구매하긴 하였지만, 최신 렌즈의 쨍함보다는 올드 렌즈의 몽롱함이 더 맘에 들었다.

이날의 빛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빛이 스텔라의 첫여름방학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의 추억과 함께 맑은 빛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색은 스텔라에게는 영원히 가슴속에 담을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난,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간다. 아름다운 순간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간다. 그리고, 가슴속에 기억을 담기 위해 들고 간다. 때론 카메라가 무거울 수 있다. 스마트폰 하나가 더 많은 것을 담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카메라만큼 빛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장비도 없기에 그 사진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날은,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 기억에 남는 추억의 날이었다.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간 그날. 너무나 행복한 날이었다.


34260028.jpg 푸른 하늘. (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34260040.jpg 아이 시원해(:Leica MP, Voigtlander Nokton Classic 35/1.4 SC, Kodak Ultramax 40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스텔라의 첫 번째 여름방학, 소피아의 첫 번째 여행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