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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Nov 19. 2022

늦은 가을. 차가운 도시의 빛

늦은 가을. 도시의 빛은 파란색 기운을 머금는다. 점점 떨어지는 온도와 같이 차가운 빛을 만들어 내며 도시만의 차가운 빛의 느낌을 만들어낸다. 상암동 디지털 미디어시티는 방송국과 기타 오피스가 모여있는 높은 건물의 차가움과 늦가을의 차가움이 어우러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늦가을의 차가움은 다시 흑백의 무채색으로 색을 다시 조화롭게 죽여버린다. 물론 가을이라는 계절의 특징은 색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낼 수 있긴 하지만, 늦가을에서 초 겨울로 들어서면 다시 무채색이 더욱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한다. "색"의 다양함에서 다시 "단조로움"으로 변화하는 계절. 물론,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색의 향연을 더욱 아끼긴 하겠지만, 색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이상으로 차가움이 주는 매력도 때론 지켜볼만하다. 결국 사진은 그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니 말이다.

특히, 상암동 디지털 미디어시티 부근은 차가운 고층 빌딩들의 조합이라 자칫 삭막함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이곳저곳에 있는 벤치들마저 사람의 손길이 멀어져 마치 삭막함을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만들어내는 풍경은 쓸쓸함과 삭막함 뿐이다. 때론 함께 어울리고 즐길 수 있는 계절인 가을이지만 -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내면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런 풍경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치 군중들 속에 어울리며 느끼는 고독함처럼 말이다.

마침 수동 렌즈였기 때문에 명암은 아름답게 포착을 하더라도, 포커스를 신경 쓸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흔들림 속에 만들어내는 표현은 더욱 내면의 흔들림을 함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카메라의 시선을 바라보는 사람도 없기도 하겠지만, 한 사람 - 한 사람의 움직임을 느끼는 사람도 당연히 없다는 것이 이곳의 한계 아닌 한계가 아닌가 싶다. 당연히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의 조각이며,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항상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 순간의 에피소드일 뿐. 나의 삶에 더 이상의 요소도 아니다. 그냥 그 시간에 지나치는 게임 속 NPC의 존재와 같은 모습이다.

마침 이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우리들 직장인의 모습이다. "점심에 뭘 먹을까?"를 고민하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1시간 동안 무엇을 빨리 먹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가 걱정이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 시간 동안에 내가 이 삭막한 공간에 있어야 할 시간도 정해져 있다. 당연히, 내 카메라가 바라보는 뷰파인더의 시간도 정해져 있다 그러니 어느 누군가가 찍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신기하게"바라 만 볼뿐이다. 이 사람은 여기서 아무것도 볼 게 없는데 왜 사진을 찍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래도 시각을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자. 그러면 무언가 새로운 이미지가 보일 거라 믿는다. 그 보임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내고,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거리에서 만들어내는 사진의 아름다움은 때론 차갑고, 삭막하더라도 그만의 매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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