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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Nov 27. 2022

늦은 가을, 어둠이 만들어 낸 빛

빛이 소중한 이유는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두울 때 찍는 사진의 작은 빛 한 조각이 너무나 소중할 때가 많다. 그런 빛의 집착 때문이었던가? 스텐리 큐브릭은 "베리 린든"을 찍을 때, 자연의 빛 만을 담기 위해 외부 조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촛불 하나만으로 만든 찍었을 때 정말 아름다운 빛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려 할 때 전부 다 돈이 될 수밖에 없다. 분명 밝은 렌즈를 사야 하는데, F값 1.2 이하의 렌즈는 가격이 놀랄 정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보이그랜더 렌즈는 저렴하게 구할 수 있으니 그 렌즈를 활용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날은 늦은 저녁 밤 산책을 하려고 카메라를 들고나가던 때였다. 집 근처 석계역 근처 고가도로 주위를 걸으며 사진이나 한 장 찍을 생각으로 밖을 나갔을 때 첫째 딸도 함께 나가고 싶어 했다. 첫째 딸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연필과 수첩을 들고 갔다. 당연히 초 저녁 - 저녁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만들어낸 빛은 어둠 속에 점점 내려가며 사라지는 빛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신호등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다. 신호등의 불빛마저 부각이 되는 시간이다.

아직은 어둠이 드리우지 않았지만, 이제 빛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면 작은 네온사인의 불빛마저 화려함으로 물든다. 특히 가을의 차가움은 빛으로 승화되어 공기 내 퍼져있는 차가움과 함께 펼쳐지는 작은 따뜻함이 함께 펼쳐진다. 그러니 지금의 사진이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작은 불 빛 하나만을 찾아가며 "혹시나 잘 나오지 않을까?"라는 희망만으로 찍는 사진이다.


거리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많다. 분명 더욱 아름답고 멋진 사진을 찍을 기회는 많이 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모델과 멋진 풍경을 만드는 장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거리사진"은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순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니, 아름다움이 아니라, 익숙해진 순간을 좀 더 새롭가 바라보고 - 아름답게 바라보고자 내 마음을 다시 잡는 순간이다. 그러니,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그 순간마저도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마도 외국인 관광객이 연신 셔터를 눌리듯, 거리 사진사들은 주변의 풍경을 고민하며 찍어야 하는 소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둠이 깔리면서 점점 빛과 그림자와 어둠과 명암이 함께 드리우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밝은 곳은 더욱 도드라지고, 어두운 곳도 더욱 어두워지는 시간. 그러다 보니 이 어두움 덕분에 빛이 있다는 것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작은 불빛 하나만으로 어느 정도 셔터스피드가 확보되고, 더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그 사진 속에서 아름다움과 빛을 찾아낸다. 그 아름다움 속에서 색을 찾기도 하고 빛을 찾기도 한다. 분명 그 빛은 다시 색을 만들고 -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좀 더 늦은 시간이 되면 빛은 더욱 어둠 속에 쌓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빛"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마치 어두운 터널에서 작은 조명 하나에 의지하듯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이 아직은 터널 같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우리 앞에 작은 빛이라도 있으니 그 빛에 의지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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