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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Jul 17. 2022

거리 사진 2 - 남겨진 기억. Kota Tua

인도네시아의 거리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2017년 9월. 인도네시아 근무를 위해 인도네시아를 떠 돌아다닌 지 몇 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인도네시아어라 하는 Bahasa Indonesia는 쉬운 문법 체계를 가지고 있어 단어를 조금만 공부해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 단어 안에서 가지고 있는 아름답고 시적인 표현에 매료되어 원래 전공이었던 영문학 이상으로 시간 날 때마다 공부하는 언어가 되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할 때는 "Thanks you."라는 말을 건넨다. 그냥 단순히 고맙다는 표현을 전달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어로 Trima Kashi는 듣기만 해도 시적인 표현이었는데, "사랑을 당신에게 드립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감사했으면 사랑을 준다고 했을까? 단어 하나의 의미를 통해서 그날의 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식민지 지배자가 만들어준 언어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할 수밖에 없는 인도네시아. 단지 식민지 지배자들의 통치를 위해 만든 Bahasa Indonesia는 전 세계 그 언어보다 단순한 문법 규칙이 있으며, 영어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였다.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은 말레이시아는 같은 어족임에도 불구하고 영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은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도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북한과 남한의 언어와 같은 상황일지 모른다. 다소 다른 상황이라면, 적어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같은 민족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상호 방문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것 정도일 뿐. 그래도 왕정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대통령제를 표방하는 인도네시아는 상호 국민소득의 차이 등으로 인해 서로 알지 못하는 벽을 가지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차이일지 모르겠다.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자신을 통치한 영국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통치자였던 영국을 여전히 찬양하고 있으며, 영연방의 일원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은 자신의 언어인(혹은 식민지 통치자가 만들어준) Bahasa를 사용하는 것을 부끄럽다 생각했다. 오히려 영국식 발음의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교양의 척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달랐다. 애써 자신의 통치 역사를 지우고자 노력했다. 자신들의 고유의 역사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은 여전히 있기 마련이다. 인도네시아 방방곡곡에 남아있는 네덜란드 통치자의 흔적은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의 건물과 문화는 여전히 지울 수 없다. 그런 인도네시아의 지우고 싶은 역사 속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은 공존의 삶을 선택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관광명소인 Kota Tua는 오래된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언뜻 보면 인도네시아 고대 건축물이 즐비할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우리 눈에는 현대식 건물들이 있어 다소 이아할 뿐이다. Kota Tua 중앙에 위치한 Kantor Pos는 우리로 치면 우체국이다. 우체국 안을 들어서는 순간 다 무너져 내릴 듯한 건물 내관은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Kota Tua에 위치한 Kantor Pos(Leica X1, Elmarit 28/2.8)


혹자는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인도네시아인들은 동남아인들이며, 원래 더운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이렇게 건물이 망가져도 고치질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실제 필자가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도 한국인 가이드는 비슷하게 관광객들에게 설명을 했다. 실제 그렇게 설명을 했다면 100% 틀린 이야기다. 조금만 더 옆으로 가보자. Kantor Pos 옆에는 Cafe Batavia가 있다. 자카르타를 방문하면 꼭 가야 할 명소라고 나와 있는 곳. 하지만, 역시 카페 안의 풍경은 그리 깨끗하지만은 않다. 

Cafe Batavia  거리(Leica X1, Elmarit 28/2.8)

마찬가지로 가이드는 우리에게 동남아시아는 원래 지저분하고, 원래 낡은 것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고 설명할 것이다. 국민성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빨리빨리 문화를 부각하곤 한다. 역시 이 설명은 틀린 것이다. Kota Tua를 조금만 둘러보자. 넓은 광장 주위에 있는 대포들. 그 대포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한 무리 학생들. 그 학생들은 이곳이 무엇이라 생각할까? 많은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방문을 하며 이곳을 지켜보곤 한다.  

Kota Tua(Leica X1, Elmarit 28/2.8)


Kota Tua는 슬픈 공간이다. 네덜란드 식민 지청의 본관이었던 Kota Tua는 독립을 갈망하던 많은 인도네시아의 애국지사들의 피가 묻어있던 곳이다. 지금은 학생들의 휴식처이며, 사진을 찍는 공간일지 모르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도네시아인들을 향해 겨냥하던 네덜란드 제국주의의 폭력을 상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파괴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의 건물과 흔적을 철저히 자신들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단, 보수를 하지 않고 현재 그대로 사용한다. 벽돌이 무너지고 낡더라도, 그것조차 인도네시아의 아픈 역사이다. 이렇게 낡아지고 무너지는 벽돌은 언젠가는 새로운 벽돌로 쌓이게 되고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역사를 상징하게 될지 모른다. Kota Tua는 절대로 오래된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잊힐 수밖에 없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로 부모님을 뜻하는 용어가 바로 Orang Tua이다. 즉, 오늘날의 내가 있는 건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듯, 오늘날의 인도네시아가 있는 것도 슬픈 역사가 만들어낸 Kota Tua가 있기 때문이다. 잊지 않고자 하는 인도네시아인의 노력. 그 모습은 바로 단어 속에 녹아들어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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