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바람 Dec 31. 2022

추억은 질감에서 만들어진다.

https://brunch.co.kr/@pilgrim6/126

너무나 선명하고 완벽한 사진보다는 거친 사진이 묘한 매력을 만들어내곤 한다. 아무래도 우리의 기억 자체가 완벽하지가 않다 보니, 기억의 불완전함을 보상해주고자 하는 듯 거친 사진을 바라볼 때 왠지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특히 완벽하지 않은 기술과 조합이 되어 구시대의 유물이라 여겨질 만한 인화된 사진을 바라보았을 때의 느낌은 어떠할까? 마찬가지로 우리는 선명한 색상의 사진보다 흑백 사진에 좀 더 애틋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불완전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보곤 한다.

늘 사진을 찍으며 나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해 고민을 해 보곤 한다. 구부정한 어깨 때문에 맞춰지지 않는 수평의 사진. 감각이 없으니, 어떠한 색이 조화로운지를 몰라 흑백이라는 사진을 활용한다. 그리고 기술적인 테크닉을 활용할 수 없으니, 빛이 만들어낸 우연에 기대기 위해 필름 사진을 사용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은 결국 "나 자신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의존하게 됨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내 가방 속에는 언제나 필름이 두 롤 들어가 있다.

그날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 두 대를 들고 사진을 찍을 때만 하더라도 큰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쓸쓸함 - 추움이란 감정보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나올 수 있다는 그 여유가 너무나 행복했던 하루였다. 하지만 날이 너무 추워서 그런가? 주위에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사실은 사람들이 지나가곤 하였으나, 내 기억 속에 사람들의 이동이라는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내 기억은 불완전하니 그 불완전함을 사진에 기대려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날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직후, 필름 카메라 현상을 바로 하지 못하고 며칠이 지난 시점에 현상을 진행하게 되었다. 어떤 사진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못하고,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였다. 그러다 받게 된 그 사진의 느낌은 정말 새로웠다. 당연히 디지털의 느낌도 아니니 그 거친 질감은 그 당시의 기억과 함께 희석되어 간다. 아마 그 당시 사진을 찍을 때 감정인 "쓸쓸함"과는 다른 감정이 생기게 되었는지 모른다.

필름 사진 자체에는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를 않으니, 단지 그 당시에 어떤 사진을 찍었을 것이란 짐작만으로 사진을 바라봐야만 한다. 분명 이 사진을 찍을 당시의 느낌은 두 발과 두 걸음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 그리고 이 발걸음으로 만들어낸 사진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희석될 즈음 다시 한번 사진을 바라보며 당시의 기억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 당연히 사진이 흐릿하고 낡을수록 그 기억은 새롭게만 다가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잊히길 바라는 사람들 - 우리는 목격자들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