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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다음 이야기를 들려줄래? - 1부

by 별빛바람

오늘도 마찬가지로 두영이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엎드려 잘 뿐이다. 반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딱히 친구라 할 만한 아이도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두영이의 친구는 집에서 기다릴 게임 CD와 작은 14인치 텔레비전이 전부였다. 항상 두영이의 친구들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함께 마왕을 무찌르자고 하곤 했다. 조용히 엎드려 있는 두영이를 반 일진들은 툭툭 발로 건드린다.


"야! 김두영!"


두영이는 잠깐 움찔하다 다시 엎드리고, 교복 재킷을 머리에 뒤집어쓴다. 일진 창희는 그런 두영이를 보며 재밌다는 듯 더 발로 다리를 툭툭 친다.


"야! 김두영! 일어나 봐!"


창희가 두영이를 툭툭 치는 게 짜증이 나지만, 괜히 말을 섞기가 싫은지 더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두영이를 보는 창희가 손으로 머리를 툭툭 치며 다시 이야기한다.


"야! 김두영! 일어나 보라니까! 할 이야기가 있어."


두영이는 그냥 자는 척할까 고민했지만, 더 있다간 오늘 하루도 피곤할 거란 생각이 들어 고개를 살며시 든다. 사실 잠들지 않았지만, 일부러 잠에서 깬 듯 고개를 들며 "창희구나. 무슨 일이야?"라고 이야길 한다.


"아.. 맞다. 두영이 너 아니구나. 미안. 더 자."


사실 창희가 두영이를 깨우려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듯, 항상 쉬는 시간마다 엎드려 있는 두영이의 모습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점심시간 때도 항상 혼자 밥을 먹고, 밥을 다 먹고 나면 혼자 노트에 무언가를 끼적이는 두영이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다. 체력장 때 우리 반에서 오래 달리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했는데도, 두영이는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며 벤치에 앉아있을 뿐이다.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두영이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 괜히 심술을 부리는지 모른다. 하지만 두영이는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이어폰으로 무얼 듣는지도 모른다. 창희는 두영이 귀에 있는 이어폰을 빼 본다. 그리고 자기 귀에 꽂아 본다. 분명 들리는 음악은 가요도 아니고, 팝송도 아닌 음악만 흘러나올 뿐이다.


"오... 클래식이야?"


두영이는 이어폰을 돌려달라고 이야기하며,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던 CD플레이어를 주섬주섬 가방에 집어넣는다.


"클래식은 아니고... 영화 OST야..."


OST가 무슨 뜻인지 대충은 들어본 적이 있다. 아마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라고 TV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음악이었던 듯하다. 두영이가 듣는 음악은 다른 친구들이 듣는 음악과는 차이가 있었다.


"무슨 영화인데?"


"아... 그게..."


창희는 두영이가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CD 플레이어를 빼앗아 열어본다. 영어가 적혀있고, "인디펜던스데이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라 적혀있었다.


"야. 이거 영화도 아닌데 왜 듣냐?"


"아.. 그냥.. 들으면 왠지, 영화 내용이 생각이 나서 말이야..."


두영이는 창희 패거리와 말을 최대한 피하려 한다. 그러다 두영이가 깔고 있었던 노트를 바라본다. 두영이의 노트를 빼앗아 쓰윽 가져간다.


"이건 뭐냐?"


노트를 펼쳐보니 앞에는 영어 단어 몇 개가 적혀있었다. 두영이는 항상 점심시간마다 이 노트에 뭔가를 끼적이고 있었는데, 고작 영어단어를 쓰려고 끼적이는 거 같지는 않았다. 몇 페이지를 넘겨보니 무언가 빽빽하게 글이 쓰여 있었다. 두영이는 뒷장부터 글을 쓰고 있었는지 창희는 뒤에서부터 읽으려고 뒷장을 폈다.


"창희야... 미안한데, 돌려주면 안 될까?"


자신의 노트를 다시 가져가려는 두영이를 손으로 밀치며 두영이가 쓴 글을 바라본다. 분명 연필로 또박또박 쓴 글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오! 용의 전설. 캬. 소설 쓰나 보네. 그다음엔 뭐야. 어둠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영웅들이 시대가 끝난 뒤 평화로운 세상이 돌아온 지 500년. 이거 뭔 내용이냐?"


두영이는 창희가 자신의 글을 읽으려 하는 것을 보니 너무나 부끄러웠던지, 혹은 자신의 비밀이 들켜서 그랬는지 노트를 다시 돌려달라고 했다.


"창희야.. 돌려줘... 나한테 소중한 거야."


"뭐가 소중해. 그냥 노트인데."


"창희야... 제발..."


"조금만 읽고 돌려줄게."


창희는 그다음 내용을 읽어간다.


"아트라스 대륙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근데, 아트라스 대륙이 어디야?"


두영이는 뛰어가 노트를 다시 돌려받으려 했지만, 창희는 계속 피해 다니며 노트를 읽으려 했다. 그때 마침 반장이었던 세희가 소리쳤다.


"야! 김창희! 같은 반 친구를 괴롭히는 게 그렇게 좋아?"


창희는 두영이의 노트를 가지고 뛰다가 잠깐 멈췄다.


"뭐... 장난이잖아. 그리고, 노트에 있는 거 잠깐 읽는 건데 뭐가 잘못되었다 그래?"


세희는 창희를 노려보며 말한다.


"두영이가 싫다잖아. 넌 싫다는데 왜 그래? 일진이면 다야? 어서 빨리 돌려줘."


창희는 세희를 노려보다 두영이 한테 노트를 던진다. 두영이는 너무나 소중한 보물을 다시 돌려받은 듯 가방 속 깊숙이 찔러 넣는다. 그리고 CD플레이어도 다시 집어넣는다. 아까까지만 해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지만, 창희가 또 괴롭힐 거 같았는지 이어폰을 꽂지 않고 엎드려 눕는다. 그때 세희가 두영이에게 다가간다.


"야. 정두영. 넌 바보야? 아무리 창희가 괴롭힌다 해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지. 그러니까 일진들이 널 괴롭히지."


두영이는 잠깐 세희를 쳐다보더니 다시 엎드려 눕는다. 세희는 반에서 뿐만 아니라 전교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아마도 외고로 진학할 수 있는지, 선생님들도 세희를 엄청 예뻐했다. 세희도 새침한 듯 표정에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운동도 열심히 하며 항상 친구들과 잘 어울리곤 했다. 여자애들 사이에선 가장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두영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항상 혼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노트에 무언가 끼적이곤 했다. 공부는 반에서 중간보다 조금 잘하는 수준이라 인문계 고등학교는 무난하게 갈 수준이었지만, 중학교에 들어온 뒤론 친구가 없었는지 항상 혼자만 있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도 항상 혼자 먹을 때가 많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하지만, 두영이는 혼자서 우걱우걱 도시락을 먹고, 조용히 서랍에서 아까 그 노트를 꺼내 다시 무언가를 끼적일 뿐이었다. 특별한 내용은 없어 보였지만 계속 연필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아마 아까 보았던 그 내용을 이어서 쓰는 듯 보였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창희 패거리가 또 장난칠게 두려웠는지 CD플레이어는 가방 속 깊숙이 넣어두었는지 모른다. 세희는 점심을 먹다 두영이를 유심히 바라본다. 혼자 골똘히 생각하다 연필로 무언가를 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영이가 무얼 쓰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하교를 하면 두영이에게 말을 걸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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