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셔터를 눌렀다.

(그래서, 난 카메라를 들고 간다 7화)

by 별빛바람

내 아버지는 참 훌륭한 분이셨다. 배움은 많으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에게만큼은 영원한 영웅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유가 없으셨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시고, 집에 들어오면 피로를 떨치기 힘들었는지 눈이 스르르 감기셨다. 그러다 눈을 뜨면 TV의 뉴스를 보며 머릿속을 정리하시던 하루의 일상. 우리의 아버지는 늘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다. 어쩌면 목이 늘어난 러닝을 입고 땀이 밴 베개를 베고 누워 TV를 보다 잠드신 아버지의 모습. 그 모습이 이젠 나에게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런 아버지도 가족들에게 사진을 찍고 싶으셨는지, 어느 날 큰 맘먹고 Olympus의 IZM-100 자동카메라를 들고 오셨다. 그 이전의 Nikon FM2는 너무 어려운 카메라였는지, 자동 필름 카메라의 편리함 때문에 우리 가족의 앨범에는 많은 사진들이 채워져 있었다. 여름철 휴가, 혹은 입학과 졸업 때마다 항상 아버지 손에는 항상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사진이 익숙하지 않았다. 놀이공원 입구에서,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장 입구에서 차렷 자세로 인증숏을 찍는 어색하며 부자연스러운 모습. 오히려 그 당시의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현재의 사진은 어찌 보면 특별한 행위로써, 어찌 보면 일상으로서 다가오게 된다. 마치 의식을 치르듯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은 다양한 어플을 통해 인스타그램 혹은 다른 SNS들을 가득 채운 사진으로 돌아오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남기는 사진들. 그리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방문했을 때 남기는 인증숏. 그 밑에 달리는 수많은 헤시 태그들. 나의 행위를 기억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해 찍는 사진. 사진은 일상으로 다가왔지만, 카메라는 점점 사라지게 되고 일상의 의식이 된다. 그 시절 아버지의 카메라는 의식을 치르듯 사진을 찍었고, 요즘은 일상에 축복을 내리듯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창가에서 여유(Leica MP, Summicron-C 40/2.0, Kentmere 400)

이젠 셔터를 누르는 게 익숙한 사람이 드물기만 하다. 그리고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게 익숙한 사람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 Nikon에서 DSLR 개발을 중단했다는 것은 더 이상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잠시 동안 미러리스가 혹은 액션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만, 결국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스마트폰에게 양보하는 순간이 와 버린 것이다.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인터넷도 검색하는 그 스마트폰. 이젠 사진도 찍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하지만, 난 여전히 카메라를 사용한다. 그것도 자동 노출과 AF 기능조차 없는 수동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것. 36장의 필름이라는 장수의 한계와 ISO의 제한이라는 불편함의 연속에서 찍는 사진의 결과물들. 그리고,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불편함이 때론 기다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찍는 사진들. 그 사진들의 결과물이 때론 나에게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다가온다.

그날은 가족들과 용두동에 있는 "카페 림"을 방문하였을 때다. 그곳은 예전 우리가 살던 구옥 주택을 개조하여 만든 그곳이었다. 작은 마당을 합판으로 가리다 보니 빛이 부족한 곳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놀이터였다. 사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과 똑같은 구조였다. 러닝 셔츠 차림의 아버지가 카메라를 들고 마당에서 뛰어놀던 나와 누나를 찍던 그곳. 마당에 묶어놓은 갈색 진돗개 진순이 등을 올라타던 내 모습을 찍던 그곳.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그곳에서 스텔라와 소피아는 무언가 신기한 듯 신나게 뛰어논다.

때론 빛이 충분하다면, 어떤 사진이라도 내 의도대로 나온다. 하지만 부족한 빛에서는 조리개 값은 최대한 작은 수치로 놔두고, 셔터 스피드를 조정하며 사진을 찍어댄다. 삼각대가 없이 그나마 안정적으로 나올 수 있는 셔터 스피드인 1/60보다 작다면 외부 광원이 필요하겠지만,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나는 외부 광원을 항상 준비하지 않기 때문에 1 ~ 2 스탑 조정해 가면 사진을 찍는다. 당연히 내가 찍는 사진이 잘 나올 거란 기대보다는, 혹시 어떤 사진이 나올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역시, 그날 방문한 카페의 빛은 너무나 어두웠다. 빛을 찾아 최소한의 셔터스피드를 확보하고자 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순간을 놓칠 수 없어 나는 셔터를 눌렀다.

처음 만난 풍금(Leica MP, Summicron-C 40/2.0, Kentmere 400)


사진은 기다림을 통해 만들어낸다. 특히 필름 사진의 경우 현상이라는 추가 기다림이 필요하다. 물론 예전처럼 인화라는 작업이 생략된 것은 그나마 디지털이라는 문물의 장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레임 속에서 내가 원하는 순간이 다가올 수 있고, 혹은 순간의 찰나에 프레 임안에 가두고 싶은 그런 이미지가 다가올 수 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 순간은 아직 3살이 안된 소피아에게는 가끔 다가오는 순간이다.

특히 어린아이의 사진을 찍기 힘든 이유는 어느 한순간에 멈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진을 찍는 행위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아빠가 누르는 셔터의 순간을 대부분 인지하지 못하고 본능에 맡겨 움직일 뿐이다. 그날도 아이의 외출 가방이 마치 장난감인양 메고 뛰어다니던 순간이다. 그 수많은 순간 중 찰나의 1초라는 순간 만든 포즈는 근처에 카메라가 없었으면 만들지 못했을 순간이다. 그렇다. 난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주위에서 카메라가 항상 다가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기대한다. 실패한 사진이라 하더라도 내가 의도한 그 순간일 테니 말이다. 내가 누른 셔터의 그 순간. 설렘을 향해 다가간다.


외출하고 싶어요(Leica MP, Summicron 50/2.0 DR, Ilford XP2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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