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하루는 혼자 자라지 않는다.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빛을 받으며, 같은 온도를 나누며 자란다.
서로의 시선을 주고받고, 때로는 닮아가고, 또 때로는 다투며. 그 모든 순간이 성장의 한 장면이 된다.
아침의 부드러운 빛 아래, 아이 둘이 마주 누워 있다.
말은 없지만, 눈빛이 말을 대신한다.
동생의 손이 언니의 팔을 더듬듯 잡고, 언니는 그 손을 놓지 않는다.
그 짧은 순간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신뢰와 친밀함이 있다.
빛이 두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며,시간마저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다.
장난감 소리가 방 안을 채우고, 작은 웃음이 따라온다.
언니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동생은 그 모습을 지켜본다.
아직 세상을 다 알지 못하는 눈으로 언니를 바라보는 그 시선은, 세상을 배우는 첫 번째 수업 같았다.
‘배운다’는 것은 꼭 가르침이 있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오래 바라보는 일이라는 걸 이 아이들을 통해 자주 느낀다.
하루가 깊어갈수록 둘 사이의 거리도 바뀐다.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웃는다.
때로는 장난감 하나를 두고 다투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그들의 방식으로 ‘함께 있음’을 배우는 과정이다.
아이들이 자라며 배워가는 건 말이나 행동보다도 ‘공간을 나누는 법’이다.
내가 찍은 사진 속에서도, 두 아이는 언제나 함께 있다.
한 명이 화면에 있으면, 다른 한 명은 그 곁에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진조차도, 그 거리감 속에 묘한 연결이 느껴진다.
서로를 향한 시선이 가장 아름다웠던 날이 있다.
노란 아기 의자에 앉은 동생과, 그 앞에서 얼굴을 맞댄 언니. 입술을 살짝 내밀며 장난을 거는 모습,
그 옆에서 터져 나온 웃음.
그 웃음이 공기 중에 남아 필름 위로 스며든다.
빛은 그 순간을 잊지 않았다.
어떤 사진은 흐릿하게 흔들렸다.
아이들이 웃으며 움직이는 속도를 카메라가 다 따라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오히려 진짜였다.
정확하지 않아도 좋다.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그래서 더욱 빛난다.
사진의 초점이 어긋나듯, 기억도 종종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 바로 성장의 모양이다.
나는 두 아이를 찍으며 종종 나 자신을 본다.
어린 시절의 기억, 형제와의 거리, 그리고 그때 느꼈던 ‘함께 있음의 안도감’이 다시 떠오른다.
사진을 찍는 손끝에는 그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아이들의 세계는 단순하지만, 그 안의 감정은 깊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세상을 배우고, 나 또한 잊었던 것을 다시 배운다.
이후로 나는 종종 생각한다.
사진이란 결국 ‘함께 있는 순간’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의 형태가 아닐까.
이 시절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 빛은 필름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아이들은 함께 놀며 세상을 배우고, 나는 그 곁에서 함께 자라는 법을 배운다.
그것이 내가 이 시간을 찍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