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수고했습니다. 6화
방통대 문예창작 석사과정을 한 지 한 학기가 지났다. 필수적으로 어학시험과 종합시험을 응시해야 하고, 이후 박사 과정을 염두해 두어 학위논문을 쓸 것인지? 혹은 학점 취득으로 마무리할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물론, 나는 그런 고민을 해 본 적은 없다. 어렸을 때 막연한 꿈인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방통대에 문예창작콘텐츠학과가 있다는 생각에 덜컥 지원을 하였다. 당연히, 문예창작콘텐츠학과는 나처럼 예비 작가 지망생들 보다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수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을 다니며 오랫동안 잃어버린 꿈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수많은 리포트며 교제를 읽어야 하는 시간. 그리고 조금이나마 발전하는가 궁금한 내 실력을 검증하고자 학우들과의 토론과 합평회를 통한 자기 발전의 꿈꿔왔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 글은 너무 거칠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감동을 이끌 수 있지도 않았고, 무언가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래도 함께 하고자 이야길 하였지만, "혼란스럽고 졸렬한 글"이라는 평을 받으며 다시 한번 단절을 경험한다. 그렇다. 내 글은 혼란스럽고 졸렬한 글이었다. 그 글을 읽어보고, 내 글의 부족한 점과 발전해 나갈 점을 조금이나마 알려달라 하였지만 기성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학우들은 "바쁜 시간 귀찮게 한다."라는 말 한마디로 다시 한번 상처를 준다.
오랫동안 고민을 해 본다. 글을 쓰고 싶어 문예창작 과정을 선택하였지만,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상처받을 말 한마디밖에 없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 본다. 수업을 들으며, 부족한 나 자신을 뒤돌아본다. 단지 직장인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데 괜한 욕심을 부렸나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석사과정을 포기할까도 고민해본다. 당연히 내 글이 부족하니, 기존 등단 작가들에게 내 글을 한번 읽어보고 작은 말 한마디 해 달라는 말. 그래도 같이 공부하는 학우이며, 동기니까 당연히 함께 권유할 수 있다는 말 자체가 결례였는가도 생각해 본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으로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도 고민해본다. 단지 말 한마디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한마디가 많은 생각들을 이끌어낸다.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특히, 내 생각을 전달하고 - 상대방의 생각을 들어주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내가 부족하다 생각을 하고 많은 것들을 받아주고 - 들어주어야 하나, 난 아직 그럴 용기가 부족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뼈가 있을지라도 - 혹은 칼이 있을지라도, 그 이야기를 단지 깃털과 같이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그런 용기도 부족했던 것 같다. 단지 말 한마디에 많은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단지 퇴근 후 편하게 TV나 보며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꿈을 실현해보고자 도전을 시작했던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그땐 용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글을 써 보고자 노력을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읽어본다. 처음 글을 쓰던 그 시절엔 그래도 종이와 볼펜으로 쓰지 않았던가? 그래도 지금은 나에게 노트북이 있고, 생각나는 대로 열심히 두들겨 볼 수 있는 태블릿 PC가 잇으니 글을 쓰지 못한다 하는 것은 사실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핑계일 뿐이다.
마침 오늘 대학원 외국어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시험 준비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 본다. 커피를 연거푸 몇 잔씩 마시며 시험 범위의 내용을 여러 차례 읽어본다. 아무래도 번역 시험이다 보니,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도 다시 한번 되짚어본다. 특히 고유 명사의 의미, 문장의 구조에 대한 의미 하나하나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도 하고, 의미도 달라지기도 하니 단어 하나씩 읽어가며 그 내용을 되짚어보는 그 순간. 이미 20년쯤 전 대학시절에 하던 그 시절의 모습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그땐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시간을 때우다 시험 때가 되면 정신없이 공부를 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 현재의 즐거움이 더욱 행복했던 시절이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함께 하자고 이야기를 하며 손을 내밀던 그런 시절이었다. 정성스럽게 내가 썼던 노트를 건네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자 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달랐다. 함께 스터디를 하자는 말 한마디도 사치라 생각하는 순간. 나이 들어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방통대 과정을 지원한 게 아니냐 반문을 해보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건 타이틀이었던가? 아니면, 함께 하는 게 쉽지 않아 그랬던 것일까? 함께 공부를 해보고, 단어에 대한 의미도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각자 하면 됩니다."라는 말을 하며 애써 피하려 한다.
하지만 시험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절박해지나 보다. 고작 몇만 원 안 하는 교제를 구입하기 아까워 도서관에서 책을 뒤지려 하고, 스캔본을 찾아보려 한다. 그리고 각자 하면 된다고 하며 애써 도움의 손길을 피하던 그 사람들이 교제를 공유받을 수 없냐고 물어본다. 번역본도 달라한다. 그리고 있으면 족보도 달라한다. 함께 공부하자던 이야기보다, 지금의 위기 속에 "나만 잘 되면 된다."라는 생각뿐이었을까?
이 날의 외국어 시험은 학위 취득을 위한 시험이었지만, 그와 함께 삶에 대한 시험이기도 했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어떤 존재일까? 타인의 상처받은 말 한마디를 들으며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그래도 손을 내밀어야 하나? 아니면 도움의 손길을 당연히 뿌리쳐야 하는 것일까? 아직은 나도 마음이 부족하고, 생각이 짧은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모를 때가 많다. 단지 시험은 시험일뿐이니, 각자의 순간에 열심히 다하자고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다.
바쁜 와중에도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하는 당신. 오늘 하루도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