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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Aug 23. 2022

거리사진 9 - 실패한 사진(빛의 실수)

카메라가 도와주지 않을 때

휴가 막바지. 이 날은 큰맘 먹고 카메라를 들고 거리 사진을 찍고자 했다. 얼마 전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확보했던 Mamiya RB67 테스트가 목적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걷는 것만큼 기분 좋은 순간은 없다. 일단,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 내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거리사진을 찍고자 할 때는 되도록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혹시라도 주차한 곳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도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목적지가 어디인지 나도 모를 때가 많다. 그냥 눈에 보이는 그곳이 내 목적지일 뿐이다.

목적지 없이 걷는 길이지만, 목적은 뚜렷하다. 난 주로 골목 사진을 찍곤 한다. 때론 옥상에 있는 장독대나 보안 창살의 녹슨 모습을 찍곤 한다. 그것도 아니면, 우리 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구조물들을 찍어보기도 한다. 사진의 소재로서는 참 단조로운 소재이지만, 언젠가는 이 사진을 보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 다른 색감, 다른 구도,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보았을 때의 놀라움도 함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자주 활용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당연히 목적이 뚜렷하니, 길을 걷는 그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 없이 사진에만 집중을 하며 걷곤 한다. 특히 회사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날. 혹은 모든 걸 다 잊고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을 때 카메라를 목에 메고 걷는 것만큼 별생각 없이 - 아니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 걷는 일은 자주 없을 것이다. 물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건 일이다.

 

이날은 내가 생각해도 욕심이 과했다. 당연히 디지털카메라 한 대 / 필름 카메라 한 대씩 두 대를 들고 다니는 이유는 너무나 오른 필름값 때문이라는 핑곗거리라도 있지만, 3kg에 육박하는 중형 카메라까지 어깨에 둘러 매고 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과하단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카메라를 확보한 목적이 있는 만큼,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는지 테스트를 할 필요가 있었고, 마침 이 날을 테스트하기 위한 날로 삼았다.

물론, 나도 처음 사용해본 카메라다. 기본적인 작동원리는 알고 있었지만, 중형 카메라의 조작법이 익숙지가 않아 아까운 필름 3컷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특히 Mamiya RB67은 내장 노출계가 없는 카메라이기 때문에, 외부 노출계가 없는 나는 스마트폰의 노출계 앱을 활용해가며 열심히 셔터를 눌렸다. 하지만 3컷 정도 찍은 순간. 이 카메라는 일명 칼이라는 다크 슬라이드 빼지 않고 사진을 찍은 것이다. 중형 카메라 - 특히  Mamiya RB67은 사진을 찍을 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우선 셔터를 장전한다. 그리고 노출을 확인하여 조리개 값과 셔터스피드 값을 조정한다. 그다음에 필름을 장전한다. 구도를 잡고, 초점을 잡은 뒤 마지막으로 다크 슬라이드를 뺀 뒤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난 일반 카메라를 생각해 다크 슬라이드를 빼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다.

10컷 밖에 찍을 수 없는 카메라인데, 아까운 3컷을 날렸으니 7컷에 신중해야 한다. 다소 무거웠지만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골목길을 누빈다. 그리고 원하는 구도가 나올 때 찰칵. 아쉽게 삼각대를 들고 가지 않아, 사진은 조금씩 기울었을 것이다. 그래도 테스트 컷이니 별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만든 지 30년이 넘은 카메라였고, 사진관에서 혹독하게 촬영한 카메라였다는 것을 간과했다.

현상 후 스캔을 해 보니, 어느 특정 부분에서 하얗게 빛이 번지는 현상. 즉 빛샘(light leak) 현상이 발견된다. 당연히 필름 백의 어느 부분이 완벽하게 빛을 차단하지 못해, 그곳으로 쓸데없는 빛이 들어갔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당연하게도 필름 카메라는 기본 10년이 넘은 카메라이기 때문에, 중고로 구입할 경우, 필름실의 스펀지 부식 등으로 인해 빛샘 현상이 발견될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이 현상이 설마 발생할까?라는 고민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사진 촬영을 했다.

얼핏 보면 빛샘 현상이 또 다른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 사진들은 작품성은 제로이지만, 아무래도 처음으로 중형 사진을 도전해 본 만큼 재밌는 결과라 생각한다. 사진을 찍을 때는 당연히 카메라가 도와주질 않아, 혹은 카메라의 결함 때문에 사진의 결과물이 나쁘게 나올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사진 자체도 내가 찍고 만든 사진이니 만큼 당연히 의미를 가지고 잘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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