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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신호등

by 별빛바람

토요일 오후. 아직은 늦여름이었지만 너무 더워 에어컨이 쉬질 못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분주하게 둘째 아이 병원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무래도 늦여름 무더위에 에어컨을 튼 탓에 콧물을 훌쩍여 걱정이 되었던 길이었는데 다행히 코감기라 했다. 첫째는 둘째 아이 병원 진료가 지루한지 연신 아이패드를 만지작 거릴 뿐이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일주일 동안 묵혔던 진료를 보러 오는 아이들과 엄마들로 분주했다. 진료시간은 고작 10분밖에 안되었지만, 그 10분의 진료를 받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차를 끌고 집으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사거리 교차로에서 막 빨간불이 들어와 자동차를 멈추었을 때다. 큰 아이의 아이패드에서 나오는 만화영화의 대사와 둘째 아이의 옹알이가 한대 섞여 있던 그때.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차가 앞으로 쏠렸다 뒤로 다시 돌아온다. 그 충격에 내 머리는 클락숀을 쌔게 쳤고, 와이프도 "아얏!" 하는 소리를 내며 대시보드에 이마를 부딪혔다. 그렇다. 빨간불 신호대기로 30초도 더 넘게 정차하였는데 뒷 차와 부딪혔다.

10초 간 정적이 흘렀다. 혹시, 내가 신호를 잘못 본 것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직 신호등은 빨간불이었다. 와이프는 대시보드에 갑자기 머리를 부딪혔는지 이마를 문지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뒷 자석에 아이들을 보니, 다행히 안전벨트 덕분에 큰 충격은 없었던 모양이다.


"얘들아 괜찮니?"

"아빠. 괜찮은데 어깨가 좀 아파."


아마 앞으로 쏠리면서 안전벨트에 어깨가 눌린 모양이다. 둘째는 유아용 카시트에 앉아 있었지만, 아직 말을 할 줄 몰라 다쳤는지 확인도 불가능했다. 우선, 사고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스마트 차키를 우선 와이프에게 전달해 주고 차 문을 열고 나갔다. 이제 막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기 시작해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XX상사 법인 소형차가 내 차와 충돌을 했다. 가해차량 운전자는 운전석에 안자 핸들을 두들기고 있을 뿐이다. 아마 본인의 차가 내 차와 충돌을 하였는지 모르는 듯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난 운전석으로 다가가 문을 두들긴다.


"저기요. 아저씨."


머리 희끗한 50대 초반의 남성이 창문을 내린다. 파란색 XX상사 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업무차 운전을 한 모양이다. 그 남성은 나를 쳐다보더니, 왜 자신의 차를 두들긴 지 궁금한 듯 쳐다보며 말을 한다.


"왜요?"

"아저씨. 제 차와 부딪히셨잖아요."


뒷 차 운전자는 "하... 시팔."이라고 중얼거리며, "그래서요?"라고 이야길 한다. 혹시 내가 예민한 걸까? 차가 부딪히지 않았는데, 부딪혔다고 착각한 것일까? 뒤를 돌아보며, 내 차와 뒷 차가 부딪힌 부위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분명 부딪혔다. 내 차 범퍼는 찌그러진 쑥 들어가 있었다. 다시 한번 뒷 차 남자를 쳐다보며 이야길 건넨다.


"아저씨. 지금 아저씨 차가 제 차를 쳤어요."


뒷 차 남자는 이상을 쓰며, 다시 "하... 시팔..."이라고 중얼거리며 차문을 열고 내린다. 그리고 인상을 쓰며 내 차와 자신의 차가 부딪힌 부위를 만져보더니, 내 차의 뒷 범퍼를 신발 앞코로 두 번 툭툭 친다. 그리고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더니 내차와 자신의 차가 사고가 난 부위를 계속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이미 차들은 파란불로 차량이 움직여야 했으나, 차량 사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느릿느릿 빠져나갈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 남자와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피곤할 듯했다.


"아저씨. 그냥, 서로 속 편하게 보험 처리하시죠."


그 남자는 내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는지 연신 사진을 찍기 시작하더나, 핸드폰의 전화번호부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래. 서로 이 상황에서 얼굴 붉히며 싸울 필요는 없다. 모든 시시비비는 보험사에서 처리할 사항이다. 그리고 내 차는 빨간불 신호대기로 정차한 상황에서 뒷 차가 후방 추돌을 하였으니, 굳이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도 없는 사고였다. 깔끔하게 대물과 대인 피해에 대한 보상만 해 주면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이 남자는 전화번호부를 뒤지더니 문자로 찍어둔 사진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화를 걸더니 통화를 한다.


"아... 시팔. 재수 없게 사고가 났지 뭐야. 앞차 새끼가 재수 없게 시리."


그 남자는 보험회사에 통화를 하려는 게 아니었고, 지인과 통화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약 30초 정도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농담도 하는 사이. 아무래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신호등을 바라보니 다시 빨간불로 바뀐다.


"아저씨. 보험 처리하시려면, 먼저 보험회사에 전화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보험 처리하면 될 거 아니에요. 가던 길 가세요."


이 남자가 무슨 속셈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지 순간 궁금했다. 아무래도 큰 사고 아니니 나중에 연락하라는 뜻인가? 그러기에는 이 남자는 나에게 전화번호도 물어보질 않고,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너니 자기가 이야기하던 지인과 사고 이야기를 하며, 재수가 없었다나 어쩐다나 하며 이야길 이어 나간다.


"아저씨. 사고를 내셨으면, 대인사고가 났는지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부터 하셔야죠. 그리고 우선 보험 처리를 요청하였으면 보험사에 먼저 전화를 해야지요."

"아... 내가 어디 도망가요? 시팛. 재수 없게. 대한민국에 있는데, 내가 어딜 도망가. 언제라도 보험사에 전화하면 될 거 아냐. 그리고, 차 이렇게 막히는데 차부터 빼고 이야기해야지. 젊은 새끼가 예의도 없어!"


다시 신호등은 파란불로 바뀐다. 운전자들은 나와 뒤차를 쳐다본다. 난 운전자들에게 "죄송합니다. 사고가 났습니다."라고 이야길 하며 연신 허리를 굽힌다. 하지만, 뒷 차 남자는 여전히 인상을 쓰며 전화 통화만 할 뿐이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소리를 친다.


"아... 차부터 치우고 이야기하자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분명 나는 신호대기로 차를 정차했다. 그리고 기어는 중립으로 놔두고 브레이크를 계속 밟고 있었다. 얼마 전 정기점검 때 등화장치는 이상이 없었다고 하니, 브레이크등도 정상 장동 중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 사람은 내 차를 뒤에서 박았다. 그것도 신호가 바뀐치 몇 초가 된 것도 아니고 무려 30초는 더 넘은 시각에서 말이다.


"아저씨. 아무래도 보험 부르고 이야기하시죠."

"보험은 무슨 보험이야! 일단 차부터 뺴자니까. 여기 차 막힌 거 안 보여?"

"아저씨. 보험사가 와서 과실 및 사고 확인하고 차를 빼야죠. 그리고 보험 안 부르세요?"

"아 부른다니까! 우선 통화 좀 하고! 하... 씨팔 새끼. 엄청 재수 없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난 그 남자를 바라보며, "아저씨. 통화 끊으시고 보험사부터 연락을 하시죠."라고 이야길 했다. 갑자기 나를 노려보더니 그 남자는 전화를 끊는다.


"이따가 보험 부른다고 했잖아!"


신호는 다시 파란불이고 차는 조금씩 움직인다. 다행히, 운전자들이 사고를 인지하였는가 내 차를 바라보며 차선을 변경하기 시작한다.


"지금 부르셔야죠. 어떻게 경찰을 부를까요?"

"뭐 이걸 가지고 경찰을 불러! 아 보험 부른다고. 근데, 회사 차인데, 당연히 회사 실장한테 보고는 하고 보험 부를지 말지 결정을 해야 하는 거 아녀. 내가 어딜 도망가?"


내 차로 돌아가 아이들 상태를 보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좀 아프다고 하긴 해도 괜찮은 눈치였다. 난 허리가 욱신거리고 이마가 아팠지만 그래도 우선 사고 수습을 해야 하니 꾹 참고 넘겼다. 와이프고 아프긴 하지만 참을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뒤차 운전자는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한 마디 한다.


"아... 시판. 재수 없게, 허리 아파 죽겠네. 그래서 보험 불러서 어쩌게?"

"아저씨. 안 되겠네요. 그냥 경찰 부르시죠."


핸드폰을 꺼내 키패드에 112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여기 XX로 19길 XX 아파트 맞은편 도로입니다. 여기 신호 대기 중 차량 충돌 사고가 났는데, 중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경찰 출동 요청드립니다."


통화를 하는 순간 뒷 차 남자는 나를 노려보며 소리를 치기 시작한다.


"아니! 뭐 이런 걸 가지고 경찰을 불러! 세금이 남아도는 줄 알아?"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이 좀 이상했다. 분명 오늘 아침 아이가 콧물을 훌쩍여 병원을 갔다 왔고, 병원 진료를 미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리고 사거리 앞에서 빨간불 신호 대기로 잠시 정차 중이었는데, 이 부분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순간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빨간불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내 아이가 콧물을 훌쩍여서 그런가? 아니면 그 시간에 그 도로에 차를 끌고 와서 그런가? 그것도 아니면 토요일에 나와서 일하는 뒷 차 남자는 일 때문에 짜증이 나서 죽겠는데, 가족끼리 놀러 갔다 오는 것 같아서 심술이 난 건가?

이제 막 차를 출고한 지 2년 남짓 되었다. 조금이라도 흠집이 날까 봐 셀프 세차나 손세차를 맡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왁스를 발라가며 애지중지 했던 차였다. 처음으로 수입차를 샀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그랬는지, 항상 차를 볼 때마다 뿌듯해했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던 그 차가 항상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빨간 신호등에 정차를 하였을 뿐인데 뒷 차와 내 차가 부딪히게 된 것이다.

뒷 차 남자는 보험을 안 부르려 했다. 그리고 계속 욕을 하며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분명 보험사가 출동해서 사고 상황만 확인하면 금방 끝날 일이었지만, 벌써 신호등은 4번이나 신호가 바뀐 뒤였다. 이제 다른 차선에 차량들은 마치 나와 뒷 차가 이 도로의 구조물 인양 자연스럽게 피해 가고 있었다.


"아저씨. 보험을 부르시는 게 서로 편하지 않을까요?"

"아... 부른다고. 부르면 될 거 아냐, "


하지만, 그 남자는 보험을 부를 생각이 없다.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더니 입에 담배를 불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하... 시팔..."이라고 중얼거리고, "어린 새끼가..."라고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니 짜증이 몰려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뒷 차 남자는 가해자고 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현명한 운전자라면 빨리 보험을 부르고, 자신이 말하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듯 여러 이야길 하며 나를 쳐다본다.

그러다 내 핸드폰에 전화가 울린다.


"XX 지구대 XXX 순경입니다. XX 아파트 앞 회색 차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그럼 바로 가겠습니다."


제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온다. 여름이라 그런지 하늘색 와이셔츠이지만 경찰 마크가 늠름하게 보였다. 두 경찰관은 호루라기를 부르며 우리에게 온다.


"아... 이거 후방 추돌 사고네요. 저희가 이 부분에 대해서 시시비비는 가릴 수 없어요. 보험사가 알아서 처리해줄 사항입니다만, 아무리 봐도 뒷 차가 가해자인 거 같네요. 혹시 보험 부르셨나요?"


갑자기 뒷 차 남자는 씩 웃으며 허리를 굽히며 말한다.


"아... 예예... 당연히 보험 불러야죠. 지금 부르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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