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일치겠지만, 요즘 군 훈련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특정 군을 비하할 목적으로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특정 군을 비하하려 한 목적이라면 이미 몇십 년 지난 뒤 작가의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이 왜곡되었을 뿐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 소대 들어!"
"악! XX기! 악!!"
우리는 조건반사식으로 소리를 외쳤다. 그날은 밀린 빨래를 하고, 찢어진 CS복을 수선하고 있었다. 노란색 고무 명찰은 너덜너덜 해졌고, 사관후보생을 뜻하는 육각형 계급장도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땟국물로 CS복이 절어있을 때였는데, 이 날만큼은 일요일 오전에 종교활동을 끝 마치고 점심시간까지 자기 정비를 하라고 했다. 각자 내무실에서 전투화 먼지 털고, 밀린 편지를 읽기도 하고 , 혹은 부모님에게 혹은 여자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게 우리들에게 주어진 달콤하고도 행복한 1시간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구대장은 뭔가 변덕이 생겼던 모양이다.
"사관후보생 XX 총원은 지금 즉시, CS복, 전투화 착용 후 연병장에 집합한다. 집합 5분 전!"
다들 착각한 모양이지만, 우리 군은 집합 5분 전은 집합 완료를 뜻하는 이야기였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다르게 5분 전에 모든 준비를 완료해야 했다. 추리닝을 입고 있었던 우리들은 우리들은 급하게 CS복으로 환복 해야 했다. 급하게 뛰어가느라 양말을 신을 틈도 없었다. 전투화 끈과 고무링을 채울 시간도 없어 급하게 연병장에 도착했다. 다들 재각각이다. 전투복이 앞으로 삐져나온 후보생. 전투화 혀가 덜렁덜렁 내려온 후보생. 고무링을 채워두지 않아 한쪽 발목이 축 내려간 후보생 등 각양각색이었다.
사열대 앞에는 김원희 중위가 전투모에 DI 반도를 찬 채 다리를 벌리고 두 손은 반도 버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앞에는 마이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김 중위 옆에는 최형석 후보생이 엎드려 있었다. 왜 엎드리 뻗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 김 중위 눈에 띄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재수 없게 걸려 그 자리에서 얼차려를 받고, 엎드려뻗치기만 하면 될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후보생 총원을 집합시켰다.
"다 꾸부려!"
모두들 소리를 외치며 "악"소리를 내며 엎드려뻗쳐를 한다. 이곳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구대장들은 후보생들을 괴롭힐 때 "꾸부려"라는 말을 한다. 그렇다. 우리는 막 민간인 신문의 때를 벗기 전에 "꾸부려"를 먼저 배웠다. 그리고 "재껴"를 배웠다. "꾸부려"가 뭔지도 몰랐지만, 어리바리한 후보생 몇 명 타깃으로 하면 그만이다. 몇 명 땀 흘릴 때까지, 스러질 때까지 "꾸부려"가 뭔지만 가르쳐주면 될 뿐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른 후보생들은 "꾸부려"가 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이 날은 왜 "꾸부려"를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구대장은 내무실에서 자기 정비를 하고 있을 때 전부 다 집합을 시켰다. 사실 어느 누구도 이유는 몰랐다. 단지 달콤한 자기 정비 시간에 갑자기 불려 나왔단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팔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최형석 일어서!"
"악!"
최형석 후보생의 얼굴은 이미 벌게져 있었다. 구대장은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 소리친다.
"나약한 새끼들. 다 일어서!"
"악"
그래도 다행인 게 1분도 안돼서 일어서라고 한다. 하지만 구대장은 단 한 차례 틈도 주지 않고 다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한다.
"연병장 찍고 찍어 선착순 5명! 무찔러!"
정말 미칠 노릇이다. 전투화 끈도 제대로 묶지 못했는데, 선착순이라니. 이대로 잘못 뛰었다간 끈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뛰지 않을 수 없다. 후보생들은 다들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재빠른 후보생 몇 명 축구골대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뛴다. 축구골대 양쪽을 찍고 찍어 다시 사열대 앞으로 선착순으로 줄을 서야 한다. 눈치 빠른 후보생 5명은 재빨리 뛰어서 앞에 서 있는다. 숨이 차서 폐가 터질 것 같지만 뛰어야 한다. 간신히 뛰어서 중간 앞에 섰다. 구대장은 눈길 한번 주더니 앞에 다섯 명에게 구부리라 했다. 그들은 엎드린다.
"선착순 5명! 무찔러!"
우리는 "악!"소리를 내고 다시 뛴다. 참 진퇴양난이다. 폐가 터질 것 같아 빨리 뛰어 도착하면 엎드려뻗쳐야 한다. 그것도 쉽지 않다. 연병장 바닥은 모래바닥이라 엎드려뻗치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계속 뛰어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병장 끝에서 끝까지 왕복을 하면 무로 1.5Km. 이걸 수십 번 왕복하면 짧은 시간 동안 몇십 Km를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 할 노릇이다. 숨만 차면 다행이지만, 다리도 후들거리고 오후 훈련도 힘들게 받아야 할지 모른다. 우린 이제 입소한 지 막 3주밖에 안된 신임 후보생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뛰어다녀요 하는지 모르겠다. 왜 엎드려뻗쳐 얼차려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구대장 김 중위의 변덕? 어쩌면, 주말에 당직으로 나온 게 짜증 나서 그럴지도 모른다. 괜히 주말에 나와 후보생들과 같이 있으려다 보니 짜증 나서 집합을 시켰을 수 있다. 아니다. 어떤 후보생은 이게 다 정예 장교를 만들기 위한 훈련의 일종이라 했다. 우리가 이 모든 지열한 훈련과 얼차려 역시 훈련 과정의 일부라 했다. 그래. 내가 처음 입대 준비를 했을 때 친구들은 장교 훈련은 고문을 견딜 수 있는 훈련이 있고, 구타 훈련이 있다고 했다. 적군들에게 포위되었을 때, 내 직무와 군번, 계급만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침묵을 지켜야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왠지 이게 그 훈련 같았다. 하지만, 도무지 모르겠다. 왜 엎드려뻗쳐야 하는지,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는가.
김중위는 사열대에 내려오더니 선착순에서 이긴 후보생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지긋이 군홧발로 그들의 손을 짓이긴다.
"으아아 아!"
군홧발로 밟히니 고통스러웠는지 이찬재 후보생이 소리를 지른다. S대 체대를 나온 엘리트로 체력도 좋았고, 머리도 좋았던 동기였다. 그래도 고통스러운 것은 참지 못할 노릇이었다. 구대장은 소리를 치는 이찬재 후보생을 아래로 내려보더니 발로 찬다. 그리고 "일어서!"라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악!"
이찬재 후보생은 땀을 흘리며 일어선다. 아마 선착순이 끝날 때까지 구부리고 있어야 할지 몰랐지만, 잠시나마 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구대장은 이런 여유도 놓치지를 않았다.
"구부려!"
"악"
10초도 안돼 다시 구부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일어서"라고 이야기하니, 이찬재 후보생은 반사적으로 다시 일어선다. 구대장은 씩 미소를 짓더니 "자동"이라 한다. 이찬재 후보생은 괜히 선착순 1등을 했는 모양이다. 혼자서 꾸부려와 일어서를 자동으로 한다. 사열대 최형석 후보생은 여전히 서 있었다. 여기서 가장 편한 후보생은 최형석 후보생이었다.
"총원 집합!"
구대장은 다시 사열대에 올라 소리를 친다.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각 소대별로 다시 섰다. 오와 열을 맞춘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왼손을 쭉 편다. 간신히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다시 "꾸부려" 소리가 들린다. 우린 반사적으로 다시 구부린다. 구대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참 사회에서 만났으면 같이 소주 한 잔 하며 친하게 지냈을 사이였는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누구는 억압을 하고, 누구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다시 마이크를 잡더니 "다 일어서!"라고 한다. 우린 반사적으로 "악!" 소리를 내며 일어선다.
"여기가 무슨 캠프야? 정신 나갔어? 감히 노래를 흥얼거려! 다 꾸부려!"
"악!"
왠지 오늘 얼차려는 1시간 안에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 밤 잠은 잘 올 것 같았다. 마침 새벽 2시에 불침번이 있다는 걸 생각나기 전 까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