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임님! 이거 몇십 년 만에 저희 지부로 전달된 편지죠?."
아주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편지. 편지봉투에 주소를 적고, 편지지에 연필 혹은 볼펜으로 꼼꼼히 써 내려간 편지 위에 우표를 붙여 넣은 편지. 하지만, 나도 실물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 먼 옛날에는 비둘기 다리에 편지를 묶어서 날리기도 했다고는 하지만, 요즘은 SMS나 E-mail도 구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였다. 각자 팔 목에 감겨있는 휴대용 통신기를 활용해 메시지를 보내면 그만이었다. 어느 누구도 "문자"를 활용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그 시절이었다.
우리 우체국은 간신히 택배를 배달하며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몇십 년 전 미국의 아마존이라는 기업이 드론을 활용해서 배달을 하기도 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정교함을 아직까지는 기계가 대체하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특히 택배와 우편물은 고객의 부재중인 상황, 혹은 고객의 사인을 받아야 하는 등기 물품에 대한 상황에 대해 자의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인공지능과 AI가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실상은 AI가 투입되어 발생하는 비용보다 사람이 직접 배달하는 게 더욱 저렴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드론 하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관제 센터를 유지하는 비용부터 시작해 설비에 대한 유지보수 비용이 필요하였지만, 사람은 일당 몇 푼과 소주 한 두병 쥐어주고 좀 힘들 때 커피 한 잔 태워주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가성비 측면에서는 사람이 직접 배달하는 것을. 따를 수 없었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무인 배달 시스템이라는 DT 업무에서 전환하여 다른 과제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 같이 학교를 다니다 중퇴한 사람들이 선택하기에는 최적의 직업이었다.
언젠가부터 시장에서 식료품을 구입하는 빈도도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어느 업체가 가격이 더 싼 지 조회를 하여 클릭하고 카드 결제만 누르면 되었다. 그러면 나와 같은 배달업 종사자들이 오더를 받아 각자 구역으로 배달을 진행했다. 만약 구역이 넘어갈 경우 각 담당 구역의 배달원에게 물건을 인계하는 방식으로 배달을 진행한다.
하지만 배달이라는 일 자체는 쉽지는 않았다. 나의 할아버지 때문 하더라도 높은 빌딩과 지하 정도만 움직이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의 한계는 없었다. 우주, 바닷속, 산속 그 어느 곳이던 사람들의 거주지는 분명 있었다. 물론, 이런 다양한 환경을 개척한 것 때문이라도 무인 택배니 드론 택배니 하는 것이 제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기계라 하더라도 저 높은 산 위를 올라가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배달부들은 사기업 소속이긴 했지만, 우리와 같은 우체국 소속 집배원들은 정부 소속의 공무원"이었다. 즉, 배달 의뢰가 들어오면 반드시 배달을 해야 했다.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배달을 해야 했다. 이미 편지가 사라진 지 몇십 년이 흘렀지만, 우정국은 여전히 우표를 발행했다. 일부는 취미용으로 수집을 하긴 하였지만, 이 우표가 현금의 가치를 가지지는 못했다. 적어도, 이제는 이메일조차 사용하지 않는 시대였고, 연필과 볼펜을 사용하는 방법도 잊어버린 세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와 제시 쳐만으로도 글을 표현할 수 있는 시대였다.
이미 내 어린 시절부터 그러했는데, 몇십 년 만에 배달된 편지라니. 그나마 식료품이나 약간의 선물 정도를 배달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편지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얼마 전인가 텔레 링크를 통해 제주도 지부에서도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제주도 지부도 난리가 난 모양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기 우체국에 있는 사람들 모두 편지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물며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손글씨라니. 거기에 침으로 바른 우표에 소인이 찍인 편지봉투라니. 다들 놀랄 노릇이다.
"제주 지부에서도 편지가 발견되었다고 했으니 우체국에서는 처음이지만, 나도 처음 보긴 해."
다들 신기한 눈치였다. 어디서 우편봉투를 구해왔는지? 어디서 편지지를 구해왔는지 놀랄 노릇이다. 심지어 우정국에서 우표를 발행하긴 하지만, 우체부인 나 조차도 어디서 우표를 파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우체통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요즘도 편지는 우체통에 넣어 보내는 걸까? 아니면 우리와 같은 우체부에게 택배 배달을 요청하며 진행을 하는 것일까? 아마 둘 중하나인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표를 붙였다는 것은 적어도 이 편지를 쓴 사람은 과거와 같이 "우체통"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썼는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본다.
나도 그 편지를 한번 들어본다. 정말 솜털만큼 가벼웠다. 아마 편지지 한 장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쓰여있진 않지만, 받는 사람의 이름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흔적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글씨를 보며 그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을 했고, 심지어 나이가 많은 사람인지 젊은 사람인지 구분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글씨를 쓰는 사람이 없으니, 이 글씨를 쓴 사람이 몇 살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들 볼펜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신기해할 따름이었다. 스타일러스 펜은 누구나 손쉽게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었지만, 볼펜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인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보았지만, 아무리 뒤져보다오 "볼펜"을 만들고 판다는 회사가 있는지 조회가 되질 않았다. 이것도 참 신기할 노릇이었다. 적어도 자주는 아니지만 여러 지부에서 편지가 발견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누군가는 우표와 편지봉투, 편지지를 공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이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일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새로운 레트로 열풍으로 편지를 쓰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내용일까요?"
편지를 보는 것도 처음이니, 편지의 내용도 궁금해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편지는 무슨 내용일까? 그리고 이 편지를 열어보아도 되는 것일까? 누구에게 배달이 되는지는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우체부와 같은 배달부들은 누가 - 누구에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금기사항이었다. 하지만 이런 편지처럼 몇십 년 만에 처음 보는 배달 물품은 신기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한 번 용기를 내 보고 뜯어보는 건 어떨까? 까짓 거 누가 보내는지도 모르고, 꼭 배달해야 하는 의무도 없는 물품이라면 잠깐 뜯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리고 뜯어보고자 살며시 칼을 그어 열어본다. 그리고 더듬더듬 읽으니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한 바퀴를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