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번 주 토요일에는 꼭 나랑 같이 산에 올라가서 별 보러 갈 거지?"
하진이는 출근하는 아빠를 보고 계속 떼를 썼다. 잠옷 차림에 어린이집에서 휴지심 두 개로 만든 쌍안경을 목에 걸고 있으니, 얼핏 보면 아프리카를 탐험하는 리빙스턴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언젠가 하진이는 어린이집에서 휴지심 두 개와 색깔 셀로판지, 그리고 색종이로 얼기설기 만든 쌍안경 항상 목에 걸고 있었다. 그리고, 밤늦게 퇴근하는 날 볼 때마다 항상 별을 보러 가자고 했다.
항상 술에 취해 퇴근할 때마다 난 조용히 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내가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 하진이는 귀신과 같이 깨어났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할 때도 하진이는 귀신과 같이 깨어나 머리맡에 놔둔 휴지심 쌍안경을 목에 걸고 문 앞에 까지 나왔다. 평일에 하진이와 내가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별을 보러 가자고 떼쓰는 도합 2분 남짓의 시간뿐이었다.
"아빠가 주말에 피곤하지 않으면 꼭 이번엔 별 보러 가자."
"피. 아빤 맨날 그 말만 해."
5살짜리 하진이에게 별 보러 가자고 약속을 하다가도, 토요일 밤늦은 시간에 스르륵 잠들어버리면 하진이는 뾰로통하게 일요일 아침을 보냈다. 벌서 몇 주째 약속을 어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진이와 별을 보러 가기에는 서울의 밤하늘은 너무나 밝고, 나의 낮 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아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아침 6시 조금 넘는 시간 눈을 뜨고, 졸린 눈으로 씻은 뒤 급하게 옷을 갈아입니다. 그리고 커피머신의 버튼을 눌러 씁쓸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급하게 출근한다. 7시가 안 된 시각, 하진이는 8시 반까지 어린이집을 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자도 되지만,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항상 일어나 목에 휴지심 쌍안경을 걸고 꼭 주말에 별을 보러 가자고 한다. 그런 하진이를 바라보며, 난 그저 "응. 알았어."라고 이야기만 할 뿐,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집 밖을 나온다.
오늘도 여전히 지하철은 만원이다. 내 귓속에 흘러나오는 최신 인기 음악이 무색하게, 주위 사람들의 숨소리와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지하철의 소음이 함께 뒤섞여 흐르기 시작한다. 이 소리는 마치, 오늘도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편하지 않을 거란 예고편 같았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출근하였는데도, 팀장은 나를 보며 큰 소리를 쳤다. 어제 만든 보고서가 형편없다느니, 이런 보고서를 만들어서 월급 값은 하느니 하는 소리를 나에게 했다. 나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팀장을 바라보며,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 통장에 찍혀있는 대출잔액과 마이너스통장. 그 모든 것 때문에 눈물을 속으로 삭이며 잊어야 했다.
팀장에게 한 소리 들은 뒤, 조용히 동기를 불러 커피 한잔 하자 한다. 회사 흡연실 옆에 있는 자판기 커피 중 설탕이 없는 블랙커피를 누른다. 동기 윤호는 설탕이 들어간 가장 달콤한 커피를 고른다. 동기 윤호는 입사 이후로 10년 넘는 시간 동안 계속 같은 팀에서 근무를 했다. 분명 입사 초기에는 내가 더 돋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윤호가 나보다 먼저 진급을 했고, 윤호는 이제 파트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난 그저 평범한 담당일 뿐이지만 말이다.
커피를 들고, 윤호는 담배를 한 개비 문다. 그리고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나보고 한 대 필 거냐고 물어본다. 한 대 간절히 피고 싶다만, 그냥 손을 흔들며 거절한다.
"그냥 넘어가. 팀장 저러는 거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사실 그랬다. 팀장도 우리와 같이 10년 넘게 같은 부서에서 근무를 했고, 사수와 부사수로 만났다. 처음 입사를 했을 때, 어려운 일을 던지며 해결해보라 했고 난 보기 좋게 해결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이 되어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기 윤호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일은 그때 내가 그 시절 선배였던 팀장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뭐.. 그래도, 내가 그때 도와달라는 일을 눈 감고 도와줬다면 지금 같진 않았겠지."
"어쩌겠어? 그냥 다 지나간 일이잖아."
벌써 몇 년 전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일. 아니, 정확하게는 무슨 일인지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난 그 일을 거절했고, 윤호는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다. 며칠을 밤샜던가? 윤호는 어느 순간 나보다 한 발짝씩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저 멀리 뒤에 있으며 회사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커피를 한 잔 다 마시고 급하게 사무실로 올라간다. 그리고 오늘 팀장에게 한 소리 들었던 보고서를 보기 위에 워드 파일을 열었다. 아무리 봐도 이 이상 더 잘 흘수 없을 것 같았다. 손익이 문제가 있는지? 혹은 전략이 문제가 있는지? 무엇을 고쳐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컴퓨터의 모니터만 응시할 뿐이었다. 그때 마침 아침에도 졸린 눈을 비비며 휴지심 쌍안경을 낀 하진이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사실 난 팀장의 부탁도 거절했지만, 딸아이의 부탁도 들어주지 못한 그런 무능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쳐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무엇을 수정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으니 진도가 나질 않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문의를 하고, 내용을 업데이트해보려 해도 딱히 답이 나오지가 않을 뿐이었다. 그러니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고, 저녁 늦게 팀원들과 식사를 하며 또다시 무의식적으로 소주를 한 병 시키게 되었다. 결국 업무이야기로 시작해서, 아침에 팀장에게 한 소리 들은 이야기로 마무리가 된다. 항상 똑같은 패턴이다. 그리고 막차가 끝나기 전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급하게 뛰어가자 이야기했다.
윤호는 오늘 너무 피곤해 택시를 타고 가겠다 한다. 나도 택시를 탈까 했지만,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먹는다.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지하철이 온다. 막차라 그런지 빈자리가 없이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을 뿐이다. 아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은 술에 취해 있었고 다들 꾸벅꾸벅 졸 뿐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린 뒤, 집 까지 걸어간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밤하늘을 무심코 바라보았지만, 별이 보이지 않는다. 서울은 너무 불빛이 밝아 별을 볼 수 없었다. 그나마 볼 수 있는 건 네온사인의 빛나는 간판들뿐이었다. 가끔씩 보이는 비행기가 불빛을 비추며 깜빡이는 움직임은 마치 움직이는 별과 같았다. 언젠가 하진이는 저 비행기를 보며 소리를 쳤다.
"아빠! 저기 별!"
하진이는 하늘에서 별을 발견했다고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 아이에게 밤하늘에 보았던 것이 별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기가 힘들어, "우와! 우리 하진이가 별을 찾았구나!"라고 이야기하며 박수만 쳤을 뿐이다. 하진이의 기억 속에는 아마 그 별이 처음으로 본 별 일지 모른다. 하지만, 하진이가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별을 볼 수 없었던 건, 항상 일에 치여 여행도 못 가는 아빠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진이는 별을 너무 좋아했다. 클 하 / 별 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줘서 그런지, 항상 별을 보고 싶어 했다. 언젠가 하늘에서 별을 따왔다며 아빠 손에 별사탕을 쥐어주기도 했다. 과자 고래밥에 들어있는 불가사리도 별이라고 기뻐했다. 그런 하진이에게 진짜 별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난 그러질 못했다.
조금씩 걸어가다 집 앞에 다 달았다. 조용히 도어록 버튼을 누르고 문을 열었을 때였다. 문을 열자마자 하진이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 민다.
"아빠! 서프라이즈! 우리 지금 별 보러 가자!"
"하진아... 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어. 그리고 아빠가 지금 술을 많이 마셔서 별을 보러 갈 수 없어."
그러자 하진이는 내 바짓 자락을 끌고 이야기한다.
"아냐! 아빠. 별 볼 수 있어. 내가 별 찾았어! 따라와!"
하진이의 손을 잡고 하진이의 방으로 갔다.
"아빠. 잠깐만 눈 감아봐. 하나. 둘. 셋! 이제 눈 떠!"
눈을 떴을 때. 천장에는 형광빛 별이 은하수처럼 펼쳐져있었다. 그리고 하진이는 다시 이야기했다.
"거봐! 아빠! 별 있다고 했지?"
하진이는 아빠에게 별을 보여주기 위해 밤늦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걷다가 보았던 비행기의 불빛보다 왠지 더 밝게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