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핸드폰을 열고 사진보관함을 열어보면 각자만의 특성이 있는 사진들이 들어 있다. 아이 엄마는 모든 사진이 아이들의 행복한 순간과 이쁜 순간들의 모음집이다. 연인들은 서로의 사랑하는 순간을 찍고, 신혼부부들 역시 자신들의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진보관함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진보관함,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진 보관함이 다 서로 간의 특징이 있다는 것은 분명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당연히 그 사진은 이야깃거리의 좋은 조미료와 같은 역할을 한다. 분명 이 사진은 나의 이야기에 증거가 되며, 힘을 부여해주는 좋은 소재가 된다. 때론 백 마디의 말 보다 사진 한 장이 더 가깝게 와닿을 때도 있다. 당연히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대어를 낚은 증거로 핸드폰의 사진보관함을 검색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 모든 순간들은 내가 행복하고, 기쁜 순간들에 대한 모음집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진보관함에는 가슴이 아리도록 그리운 사진이 없다. 아니 아직 그런 사진이 없을 수 있다. 물론 헤어진 옛 연인의 사진을 보관하는 것은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반려자에 대한 예의는 아니니, 그 사진이 가슴이 아리도록 그리운 사진이라 할 수는 없다. 당연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진 중 혹은 아직 찍지 않은 사진 중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분명 가슴이 아리도록 그리운 사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한다.
언젠가 카메라를 들고 밖을 나가본 적이 있었다. 외대역 맞은편에 있는 낡은 나무 전봇대는 그곳이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현재의 콘크리트 기둥으로 만든 전봇대와는 다른 못질의 흔적과 갈라짐과 세월의 흔적이 있는 그런 전봇대의 모습. 이건 어린 시절 추억의 그리움이 될 수 있다. 당연히, 내가 가진 사진들 속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 혹은 이제는 지나간 시간의 추억이 될 수도 있고, 앞으로 가지 못할 곳의 추억이 될 수 있다. 돈이 부족해서 혹은 시간이 부족해서 나가지 못했던 과거의 그리움들이 흔적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사진이 우리에겐 기억에 남는 사진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공간에서 아름다운 추억이 존재한다면 더욱 그리움에 남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커가는 아이의 보습 속에서 어린 시절의 귀여움을, 혹은 나의 연인이 나이 들어감 속에서 과거 젊음에 대한 그리움이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우리가 찍은 사진은 결국 과거 어느 한순간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에 그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사진이 꼭 가슴이 사무치도록 그리움이 남는 사진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학시절, 술에 많이 취해 집에 걸어가다 우연히 아버지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며 혹시 담배를 피우냐고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담배를 끊으셨기 때문에 내 손에서 혹은 옷에서 나는 담배냄새로 담배를 피운다고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난 술에 취한 채 조심스레 담배를 꺼내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 아마 그전에 걸어가며 담배를 피우다 아버지가 보았을 수 있다.
아버지는 말없이 담배를 꺼내 물더니 나도 같이 피라 이야기하시며 불을 붙였다. 몇십 년 만에 피는 담배라 그런지 아버지는 많이 힘들어했지만 같이 한 대를 태우며 밤길을 걸어갔었다. 그 뒤 나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순댓국에 소주 한 잔을 하며 길을 걷다 조용히 담배 한 대를 피는 게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했다. 하지만 체력이 약했는지 곧잘 취하곤 했다. 토할 때도 많았고, 정신을 잃을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소주를 좋아했다. 늘 저녁을 먹을 때, 마음에 드는 반찬이 있으면 소주 한 잔을 빠지지 않고 따르곤 하였다. 그런 아버지와의 추억에서 소주는 늘 빠지지 않는 소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 아버지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뿐만 아니라 몸에 익숙했던 행동을 잃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순간 아버지는 좋아하는 소주에 대한 기억도 잃어버리고,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갔다. 이제는 반듯한 정장보다 기저귀가 더 어울리고, 맛있는 음식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던 아버지는 흔적이 없을 정도로 갈아 넣은 죽을 마셔야 하는 상황이 왔다. 당연히 아버지는 나와 몰래 담배를 피우던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나와 소주 한 잔을 하며, 같이 웃으며 걸어가던 그 시간의 추억은 핸드폰 속에만 남아 있고, 나의 컴퓨터 외장 하드디스크에만 남아있다. 늦은 시간에 아버지와 함께 순댓국에 소주를 마시던 그 추억은 이제 실현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니 내 핸드폰에 남아 있는 사진 들 중, 가슴이 아리도록 그리운 사진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 사진이 영원히 간직되도록 머릿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담아둬야 하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어린아이가 된 아버지의 모습도 가슴이 아리도록 그리움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 그 시절의 기억과 그 순간의 기억들. 그건 그래도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덜 아리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수많은 사진 들 중, 딸아이의 이쁜 사진보다 가끔은 가슴이 아리도록 그리운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그때의 아름다웠던 기억이 생각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