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풍경. 1화
연애의 끝은 결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 인생에 가장 후회되는 생각을 하나 꼽아야 한다면 난 그 생각을 꼽을 것이다. 이는 그 생각을 갖는 순간 결혼은커녕 연애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이 입력되는 순간 우린 상대의 현재를 보지 않고 상대가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될지를 상상하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한 개인의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건 본인도 모른다. 10년 전에 누가 내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면 미친놈이라 생각하고 인연을 끊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연애의 끝은 결혼이어야 한다고, 아니면 결혼이었으면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것을 예측하고 맞출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상대를 선택하고, 그런 착각에 빠져 선택을 한 사람들은 상대가 변했다는 이유로 원망한다.
그런데 연애와 결혼을 연관 지어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있다. 그건 나이다. 아 물론, 나이가 들면서 결혼할 생각이 없어진 사람에 대한 얘기는 다음 글에서 할 예정이기 때문에 그분들 말고 언젠가는 결혼을 하고, 가능하면 아이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그렇단 얘기다. 나이가 들면 연애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워진다. 이는 여자는 30대 중반, 남자는 3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을 만나 줄 사람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기에 한 사람을 1년 정도 만나서 해가 바뀌면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만날 사람의 풀이 더 좁아진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30대 중후반의 남녀는 모두 이 사실을 안다. 그래서 일정 나이가 지나면 한 편으로는 연애가 더 어려워지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별이 쉬워진다. 하지만 결혼은 더 어려워진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는 항상 연애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이는 서두에 말했듯이 상대를 만나기 전에 아무리 상대의 미래에 대해 예측하더라도 그 예측은 빗나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애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달아 가고, 그 순간의 행복과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하거나 가능성이 높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어느 정도 희생하는 건 투자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포기하며 살아가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인간과 사랑과 관계에는 절대로 확실한 것이 있을 수 없단 것을 감안하면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처럼 결혼은 절대로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결혼은 연애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삶에서 공유되는 부분이 커지고, 상대만큼 본인을 수용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고 생각되고, 본인도 상대의 상당 부분을 수용할 수 있다는 착각이 들 때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하는, 사랑의 결과여야 하지 남녀관계나 연인관계의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서로를 일정 부분 수용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라 말하는 것은, 같은 공간에 함께 살다 보면 본인이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외에 상대의 다른 면들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거에 대한 문제는 이 시리즈에서 따로 다룰 예정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그 부분은 생략하겠다.) 그리고 살다 보면 환경과 상황은 계속 바뀌게 되어 있고, 그 환경과 상황에 따라 상대도 변하게 되기 때문에 지금 수용해 줄 수 있을 듯한 부분도 결혼한 후에는 상대의 변화에 따라 수용해주기 힘들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상대의 상당 부분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은 착각이다.
결혼 또는 혼인제도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3년간 써온 글들을 엮어서 발행한 브런치 북에서도 설명했듯이 난 꼭 결혼이나 부부라는 틀이 아니어도 인간은 자신의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확률적으로 결혼을 하는 것이 그런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상대의 모든 것을 수용해 줄 수 있는 것이 착각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건 때로는 내가 상대를 '수용'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받아넘겨주게 되어 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잘해서 수십억 자산가였던 사람이 결혼한 지 3년 안에 망하면 그걸 수용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대기업에 떵떵거리면서 억대 연봉을 받던 사람이 갑자기 닥친 경제난으로 권고사직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아니고 억대 연봉을 받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 사업을 한다고 퇴사한 후에 망한다면? 성직자가 되겠다고 한다면? 너무 극단적인 예시들이라고? 이런 사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자주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런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본 부부들은 그런 순간에 갈라서거나 버텨냈는데, 버텨낸 부부들의 경우 보통 두 사람 사이의 추억 또는 더 어렸을 때 사랑했던 감정에 대한 기억을 갖고 그 순간을 정으로, 의리로 버텨내더라. 그런데 또 그 순간을 그렇게 버텨내고 나면 함께 버텨냈던 것이 두 사람 간의 사랑을 더 깊고 강하게 만들더라. 그런 길을 함께 가는 것이 진짜 부부이고, 그런 부부가 되는 기초가 두 사람의 연애가 아닐까?
하지만 결혼이 연애의 종결을 의미한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난 개인적으로 연애와 결혼이 일도양단적으로 구분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법제도적으로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해도, 두 사람은 사실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연애를 계속해야 한다. 이는 결혼은 상대와 평생 연애를 하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내 정의에 의하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서 정말 정신이 없을 때도 일 년에 몇 번은 둘 만의 데이트를 하고, 서로에게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외모와 성품을 가꾼다.
그런 부부가 있냐고? 많지는 않지만 내 주위에 그런 부부들이 몇 있는 것을 보면 그런 부부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많을 것이다. 아이를 가진 후에도 사실 두 사람의 관계가 우선인 것이 아이를 위해서도 좋다. 부부관계는 포기하고 아이에게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 것 같지만, 아이를 그렇게 양육한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본인이 한 투자에 대한 대가나 보상을 아이에게 바라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못 간 대학에 아이를 보내는 것, 아이의 배우자를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결정하려는 것과 같은 패턴은 부부관계를 포기하고 아이에게 올인한 가족에서 자주 일어난다.
결혼을 연애의 목적으로 생각하지도 말고, 연애와 결혼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도 말자. 결혼은 연애의 결과이고, 결혼한 후에도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계속 연애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이상을 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이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이상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연애와 결혼에서 이상을 얘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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