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풍경. 2화
결혼이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아니, 명확한가? '결혼을 하면 당연히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입장에서 결혼은 명확하지만 요즘에는 '혹시 모르니 결혼하고 나서 1년 정도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지내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결혼이라는 것이 꼭 그렇게 명확하진 않을 수 있다. 오죽하면 결혼식 하기 전에 혼인신고하는 것을 보고 로맨틱하다는 사람들도 있겠는가?
사실 생각해보면 결혼과 동거는 분명히 다른 듯하면서도 같고,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 아 물론, 여기에서 내가 전제하는 동거는 '결혼하기 전에 우리 서로 알아보자'를 전제하는 동거가 아니라 '우리 같이 있는 게 행복하니까 같이 살자. 법적인 부부가 되는 게 꼭 그렇게 중요하진 않잖아'라는 동거를 의미한다. 내가 이와 같은 동거를 전제로 하는 것은 '결혼해서도 잘 살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한 동거'라는 개념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거를 할 경우 그렇지 않은 관계에서보다 상대를 일정 부분에서 더 잘 알게 되긴 하지만 여전히 결혼은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서로 조심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동거 후에 결혼을 해도 서로에 대해 새로 발견하는 것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결혼과 동거는 가족을 연관시키는지에 따라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는 동거를 하면서 상대 가족과 만나고 명절을 같이 지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게 동거와 결혼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차이가 있다면 부부로 인정되면 법적으로 다르게 적용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세금 공제, 부양가족 같은 거? 난 그래서 두 사람과 가족이 괜찮을 수 있고 두 사람이 아이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다면 결혼보다 동거가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동거의 경우 결혼보다 상대와 나를 느슨하게 묶어놓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더 많이, 심하게 흔들리고 깨질 수 있다는 면은 분명 있다.
그런데 결혼과 동거보다 더 애매한 개념이 있다. '비혼' 비혼과 관련된 글을 몇 개 썼었지만 난 지금도 사람들이 '난 비혼이야'라고 말할 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아.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비혼 주의의 범위에 포함시킨다. 그렇게 비혼을 넓게 정의한다면 나도 비혼주의자의 범위 안에 들어갈 것이다. 결혼을 위한 결혼은 애초에 하고 싶지도 않았고 지금도 할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비혼을 그렇게 넓게 정의할 경우 굳이 비혼이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있다. 그렇게 따지면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그 범위 안에 들어갈 테니까...
만약 비혼 주의라는 것이 '나는 절대 결혼을 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비혼 주의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비혼주의자들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과연?'이라는 의문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는 인간은 자신과 주변의 상황에 따라서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주위만 하더라도 절대로 결혼하지 않으며 평생 연애만 하겠다던 사람들이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경우들이 적지 않고, 30대 중반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던 사람들이 20대 중후반에 결혼을 해서 애가 초등학생인 사람도 있다. 자신이 그렇게 의지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본인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오만함일 수도 있단 것도 기억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혼을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사실 결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한 것도 현실이다. 만약 그런 케이스라면 차라리 본인이 안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정직해진다면 오히려 기회가 올 수도 있는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난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미국이나 유럽적인 문화를 갖고 있고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함께 사는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법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생각은 조금 더 확고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연애를 할 수 있고, 사람들이 이성을 만나는데 나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서로 헤어지고 나서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으며, 헤어진 이후에도 아이를 위해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라면 사실 난 굳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나라에 산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해 불평, 불만을 토로하고 그에 대해서 얼마든지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그래 봤자 현실은 바뀌지 않으며 우리가 외국에 나가 산다한들 우리가 그 나라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성인인 당신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선택은 어느 정도는 우리 사회의 문화에 수긍하고, 그 한계를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녀 모두 연애할 때 상대의 나이를 엄청나게 의식한다. 나 역시도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연상은 기피하면서도 연하는 한계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여자들은 연하는 죽어도 싫다던 사람들이 갑자기 연하를 선호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리고 20대에는 만났을 정도의 나이 차이도 본인이 30대 중후반에 되면 상대가 40대라는 이유로 만남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연애 상대를 찾는 게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물론, 본인이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도 연상도 만날 수 있는 남자나 본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도 만날 수 있는 여자라면 연애 상대를 찾는 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점점 더 양보나 타협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연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확연하게 줄어든다. 최근에는 학부시절 선배에게 '야, 남자도 40대 되면 사람 만나기 힘든 거 알지? 그러니까 빨리 만나'라는 당연한 말을 들으면서도 굳이 확인사살당하면서 짜증이 났었는데, 그게 현실이다. 그 경향성은 30대 후반인 나도 이미 2-3년 전부터 느끼고 있다.
사실 그래서 비혼으로 있으면서 평생 연애만 하겠다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 속에서 꿈에 가까운 이야기일 수 있다. 엄청난 외모나 재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녀불문 예외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연애를 하기가 힘들어진다.
난 그래서 굳이 본인이 작심하고 비혼주의자는 되지 말라고,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가능성은 항상 열어놓고 사람을 만나라고 조언한다. 이는 그 가능성이라도 열어놓고 사람을 만나야 연애라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와 결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를 만난다면,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이상 나이가 든 이후에는 그 마음을 알면서도 연애를 이어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두 사람의 관계에 선을 이미 그어 놓고 시작하는 것은 상대를 온전히 사랑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글에서도 말했지만 결혼은,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의 결과 이어야 하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옵션을 배제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아니,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만날수록 더 많이, 자주 보고 싶어 지고 그러다 보면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그렇게 이상하고 의식적으로 거부할 성격의 것은 아니지 않나?
나이가 들수록, 결혼을 결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단 생각이 확신이 되어간다. 결혼을 정말 하고 싶다고 해서 결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지금 현재를 살며 사랑하며 지내자. 그러다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단 마음이 들고 상황이 그렇게 이어지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면서 비혼을 말하는 사람들은 보통 결혼한 후에 찾아오는 부담감과 결혼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에 집중하는데, 그렇다고 혼자 있다고 해서 항상 행복하고 인생이 완벽한 것도 아니지 않나? 결혼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들이 그들에게 없음으로 인해 그들이 힘들고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혼하지 않거나 못한 사람들은 모르는 다른 차원의 행복, 즐거움과 기쁨이 보통 그들 삶에 있더라. 그리고 결혼을 정말 잘한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결혼함으로 인해 상실한 자유, 행복과 즐거움보다 결혼한 덕분에 누리게 된 다른 것에서 오는 다른 형태의 행복, 기쁨과 즐거움이 더 크기도 하더라.
결과론적으로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게 될 수는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정말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일부를 의지하게 되는 쉼터와 같은 편안한 사람들 또는 공동체가 필요하고,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가정이나 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공동체에서 그런 경험은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본인 힘으로 살아야지 누군한테 의지를 하겠다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의 삶의 부분을 일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과 의존적인 삶을 사는 것은 다르고 인생은, 사회생활은 참으로 만만하지 않아서 그 길을 함께 가는 사람 없이 오롯이 혼자서 그 과정을 죽을 때까지 살아낼 수 있다고 착각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그렇게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던 사람들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보통 신체나 정신적인 후유증이 찾아오더라.
그리고 지인, 친구, 부모님은 그런 역할을 일정 부분 해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부모님은 본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확률이 높고 (그게 부모님을 위해서도 나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먼저 떠난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인과 친구들도 본인 삶이 있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교류가 얕고 적어지는 것을 보면 그 관계가 갖는 한계도 분명해진다.
내가 결혼이, 가정이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러니까 무조건 결혼을 하라고!!'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결혼을 누구와 해서 어떤 가정을 꾸리느냐에 따라 그 가정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옵션에서 굳이 삭제하고 관계를 시작할 필요는 없다.
조금 더 결혼을 '잘'하고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생각은 다다음 글에서부터 풀어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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