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풍경 2화
개인적으로 '어른 말을 들어야지!'란 말을 가장 싫어한다. 이는 어른이라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관계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상황에서는 어른들이 갖고 있는 지혜가 일정 부분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변화가 많지 않은 영역에서 어른들의 경험은 분명 유용하고, 어른들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나을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말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에 오염되지 않은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제대로 된 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들은 경험이 많지 않은 만큼 순수하고, 본질적인 부분을 짚어낸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쪼끄만한게 대단한데!'라거나 '애어른'이란 표현을 쓰지만 사실 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어른보다 나을 수밖에 없는 영역이 있다.
그런 것들의 예시를 한 트럭 이상 들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말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노력을 하지 않아. 너무 쉽게 이혼해.'라는 것이다. 그 말은 틀렸다. '한국사회'에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도 이혼은 쉽지 않다. 이혼은커녕 결혼도 한 번 못했지만, 주위에서 이혼한 지인들을 보면 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내 주위에는 배우자가 간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배우자의 의처증/의부증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어서 헤어진 사람도 있다. 또 부모님께서 반대하는 결혼을 우겨서 한 다음 아이까지 가졌음에도 버티다 못해 갈라 선 사람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혼하기로 하는 결정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결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고, 사람들은 '이혼=실패'란 생각을 무의식 중에라도 갖고 있다 보니 이혼이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을 쉽게, 생각 없이 결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니 본인이 평생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상대와 자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경험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이혼하겠다고 하는데 상대는 절대로 못해준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미 상대가 확고하게 갈라서기로 마음을 먹었는데도 그 사람을 놔주지 못하는 것은 상대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본인이 인생에서 가장 큰 마음을 먹고 한 결정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혼한 후 자신의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고민해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대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신뢰하고 내린 결정이 실패로 여겨지고나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꼭 연애나 결혼 상대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 자체를 다시 신뢰할 수 있을까? 이혼을 고민했던 사람들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 부분 때문에 다시 마음을 돌이켜서 다시 한 번 노력해보기로 하더라. 그걸 넘어서 이혼을 결정했다면, 그건 그만큼 그들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주는 고통이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는 이혼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는 여자들의 경우 더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혼한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문화가 여전히 있는데, 나이가 든 싱글이 되면서 한 번 결혼한 경험이 있는 사람과 만나는 것에 대해 어른들이 '사별한 사람이랑은 괜찮아도 이혼한 사람이랑은 결혼하면 안 된다' 고 하시는 것에서 그런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지를 여실히 느낀다. 그 말은 '이혼하게 된 것은 뭔가 큰 결함이 있으니까 그런 거야' 또는 '이혼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있는 사람이랑은 살기 힘들어'란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이혼 과정에서 오롯이 피해자였던 사람도 존재하고, 대부분 사람들이 이혼한 후에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잘 극복해 낸 사람도 있고, 그 상처가 좋은 사람을 만남으로써 치유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일정 나이 이상이 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차라리 한 번 다녀온 사람이 낫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혼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히 매우, 매우 강하다. 그리고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주위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이 모르는 사람도 본인을 그런 시선으로 보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시되는 이 시대에 이혼을 쉽게 하는 사람은 절대 없다.
부부 사이의 일은 두 사람만 안다. 두 사람이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를 온전히, 100% 알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갈라서기로 했다면 주위 사람들은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왜 그런지를 캐물을 것이 아니라 관심을 꺼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다가올 수 있게 옆자리를 지켜주고, 다가오면 그 자리를 지켜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주위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해줘야 하는 유일한 일이다.
아주 어려서 사고를 쳤거나 감정에 휩쓸려서 결혼한 것이 아닌 이상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을 쉽게 결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상대방과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고, 신뢰가 형성되어야 결혼을 결정한다. 그렇게 어렵게 한 결정을 돌이키는 것이 쉬운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한 것은 적지 않은 '어른'들은 결혼은 그냥 적당히, 적당히 빨리 하고 그다음에 나머지는 맞춰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는데 있다. 적당히, 적당히 빨리한 결혼은 두 사람 간의 신뢰가 약하기 때문에 갈라서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빠르고 적당히, 이혼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은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것이 아닐까?
어른들은 '살다 보면 다 맞춰져'라고 하는데, 노년에 보이는 '어른'들의 모습은 그와 다른 경우가 매우 많다. 요즘 사람들은 이혼을 너무 쉽게 한다는 말을 폭력적이고 내로남불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혼하지 않고 상대와 억지로 견디며 산 수많은 어른들은 자녀들이 결혼한 후에 상대의 얼굴도 보기 싫어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한 때는 심지어 황혼이혼이나 졸혼이 유형처럼 회자되기도 하지 않았나?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지금 이 고비를 넘기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요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십 년을 함께 살고 나서 상대와 갈라설 수 있는 것은 그 수십 년 동안 같이 산다고 해서 다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갈라서지 않더라도 그렇게 참고 산 수십 년 후에 남는 것이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말도 섞지 않는 부부관계라면, 비슷한 길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리석은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은 결정을 하기엔, 노년에 행복한 부부보다 불행한 부부가 더 많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혼은 왜 금기시 되어왔을까? 그에 대한 정당한 이유는 있을까?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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