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풍경 3화
이혼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예민하고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이혼은커녕 결혼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건 매우 조심스럽다. 이는 경험하지 않아서 머리로는 더 잘 이해하는 면도 있지만, 사람은 무엇이든지 직접 경험해 본 것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이혼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러운 두 번째 이유는, 그 내용이 자칫 잘못하면 '이혼, 그냥 해도 되는 거지 뭐'라는 식으로 가볍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평생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은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적으로는 맞춰지지 않을 듯하고 장기적으로도 맞춰질 수 있을지 모르겠는, 그리고 갈등이 계속 반복되어서 회복하기 힘든 수준의 상태에 이르렀다면, 이혼을 하는 게 두 사람과 가족을 위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과 감정은 두 사람만 알기 때문에 누구도 그에 대해 함부로 판단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이 이혼하는 일에 유별나게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을 넘어서 심한 경우에는 이혼했다는 이유로 사람 자체에 대한 평판을 부정적으로 만들기까지 할까? 그 평판은 왜 유독 여자들한테 엄격할까?
그 가장 큰 원인은 조선시대, 그것도 조선시대 일부 양반의 문화일 것이다. 남존여비가 전제되어 있고 가부장제가 굳건했던 그 시대의 문화는 여자가 이혼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남자는 여자가 칠거지악 중 한 가지를 범하면 언제든지 내칠 수 있었다. 그런데 칠거지악 중에 나머지는 그렇다고 쳐도 시부모를 잘 봉양하지 못한 경우와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한 경우 여자를 내칠 수 있었던 문화의 영향을 아직도 받고 있다니, 시대착오적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게 맞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혼한 여성은 칠거지악 중 한 가지를 범한 사람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녀들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부정적이었을 것이고, 나는 오늘날 이혼한 사람, 특히 여성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그런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시대의 칠거지악을 들먹이며 이혼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조선시대에 그런 이유로 이혼한 사람, 특히 여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게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어느 순간서부턴가 특별한 생각이나 논리 없이, 무의식적이고 자동반사적으로 이혼한 사람, 특히 여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문제는 조선시대의 그러한 문화는 조선 초기에 일부 양반 집안에서만 유효했던 문화라는데 있다. 여러 문헌들은 조선시대 양민, 평민이나 천민들은 이혼도 어렵지 않게 했고 남자가 이혼을 통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자가 이혼을 통보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문화와 시선을 '전통적'이라고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이 유교문화를 국가의 기초로 삼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유교문화는 조선 초기에 국가적인 정책을 통해 인위적으로 적용된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양반계층에 속해서 국가에서 요직에 가려는 자들이 아닌 이상, 특히 양반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는 고려시대 때부터 이어오던 풍습들이 상당기간 유지되었고, 그런 문화 중에 일부는 조선시대 전반에 거쳐서 유지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혼 역시 그러한 문화에 속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시대에는 재혼녀가 왕비가 된 적이 있을 정도로 이혼에 대한 시선이 조선시대와 완전히 달랐다 (물론 고려후기에는 그 문화가 조금 변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갖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기독교다. 성경에서는 이혼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여러 곳에서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그 내용을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런 내용 역시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보면 이혼을 금한 것은 당시 여성의 지위에 비춰봤을 때 소수자의 인권보호적인 성격이 강했고, 이혼을 할 수 있는 절차와 근거들이 성경에 나와있기 때문에 이혼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던 것도 아니다.
어떤 이들은 제사장들은 이혼한 여자와 결혼할 수 없다고 되어있지 않냐면서 항변할지 모르는데, 이혼한 여자와 결혼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당시에는 이혼한 여자도 있었고 이혼한 여자와 재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당시 제사장의 특수한 지위에 비춰봤을 때 제사장들이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금지했던 것은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이스라엘 민족의 문화적 특성상 이혼한 여성은 이혼하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상처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제사장과 그 가정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장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혼은 절대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렇다면 그 당시 풍습대로 형이 결혼하고 나서 죽으면 동생이 형의 아내를 다시 아내로 받아들이는 문화도 유지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상처를 주고 그 사람을 망가뜨리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혼해서는 안된다면, 그걸 강요하는 신은 어떤 신인가?
물론, 두 사람이 이혼하지 않고 맞지 않던 부분들을 맞춰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했다면, 두 사람은 그렇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신이 전지전능하시다면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치를, 그 한계를 알기에 그들을 이해하고 용납해주시지 않을까?
결혼을 하기로 하는 결정은 감정만으로, 감정적으로 해서는 안되고, 결혼을 한 이후에도 감정적인 부분이 결혼생활을 지탱해주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해서 하나의 가정을 함께 일궈나가기로 약속했다면, 두 사람은 그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는 그 약속은 본인이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두 사람이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기쁨과 즐거움보다 고통과 불행의 시간을 가져온다면, 두 사람은 이혼을 하는 게 맞다.
그런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그런 문화가 형성되었던 시기의 사회문화적 특징이 영향을 미쳤고, 그런 문화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도 있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혹자는 '전통'을 말할지도 모르는데, 모든 것이 '전통'으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전통이라고 포장된 악습까지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개인이 먼저다. 다만, 여기에서 사람이, 개인이 먼저라는 것이 '내'가 먼저란 것은 아니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꽤나 많은 사람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동일시하고,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결혼하고 이혼한다. 다음 글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써 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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