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누구를 위한 결혼인가?

이혼의 풍경 1화

by Simon de Cyrene

결혼.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당위적으로 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지만 결혼이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인지는 누구도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으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나쁘지 않은데 더 좋은 사람 만나지 못할 것 같으면,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하니까, 상대가 조건이 좋으니까 적당한 시점에 적당히 떠밀려서 결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결혼은 본인을 위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를 신뢰할 수 있고, 상대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을 때, 내가 흔들리거나 힘들 때 상대가 나를 잡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상대와 결혼해야 한다. 그러한 것들이 결혼이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이다. 그리고 그러한 유익은 사실 '마음'적인 것들이지 '현실'적인 것들은 아니다. '신뢰'와 '믿음'은 모두 마음에 대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현실'과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현실과 조건은 상대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이고, 우리는 상대의 미래를 상대가 살아온 역사를 기준으로 예측하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의 현실과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상대의 역사를 모르면서 상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이처럼 현실과 조건은 상대가 걸어온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일정 부분 보여주기 때문에 상대의 현실과 조건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여기에서 문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대의 '현실'과 '조건'을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판단한다는데 있다. 같은 현실과 조건을 갖춘 사람도 현 지점에 오게 된 길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현실'과 '조건'에서 수치화하거나 줄 세울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의 집안, 연봉, 학벌, 외모. 그런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사실 그러한 객관적인 조건보다 상대가 그 조건들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누리고 있는지와 그런 조건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 왔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는 그 과정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의 현실과 조건이 좋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어떻게 거쳤느냐에 따라 향후에는 지금 보더 훨씬 나은 현실과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과정'은 상대의 가치관을 의미하고, 상대의 가치관은 상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좋은 대학을 가고, 괜찮아 보이는 직장에 취직한 게 본인이 관심이 있는 게 있거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하라고 하는 대로 해온 결과인 사람은 부모님의 얘기에 휘둘릴 가능성이 없지 않고, 돈을 많이 번 사람에게 돈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상대는 당신과의 관계에서도 반사적으로 금전적인 계산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반면에 같은 조건, 현실 또는 결과물을 가진 사람도 그 과정에서 가졌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결정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주위에 기혼자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한 사람들은 적지 않은 경우 상황과 분위기에 휩쓸려서 결혼을 하기도 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충분히 숙고하지 않고 결혼을 하기도 한다. '결혼하고 나면 알아서 되겠지'라는 나이브한 생각으로, 겉으로 보이는 상대의 조건이 나쁘지 않으니까. 어떤 이들은 심지어 본인이 어떤 삶을 살면서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과 고민도 해보지 않고 결혼식장에 걸어 들어간다. '평생' 함께 살겠다고 지인들 앞에서 약속하고, 법적으로 구속되는 결정을 그렇게 쉽게 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게 결혼을 했어도 운이 좋아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어쩌면 하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모를 가정생활을 버티고 견딘다. 그런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결혼은 기본적으로 본인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본인이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은 누구를 위해 유지해야 한단 말인가? 어떤 이들은 부모님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본인이 최선을 다해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부모님께서 아시면, 부모님은 그게 대견하고 행복하실까?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지는 면이 분명 있다. 이는 여전히 '이혼'이 실패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의 특성상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자녀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입을 수 있는 상처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로지 자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는 부부가 있다면, 그게 정말 자녀를 위해 더 건강할까? 집에 와도 부모님은 대화도 하지 않고, 때로는 둘 중에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모두 외도를 하고, 밥 먹을 때도 대화를 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가 건강하고 정상적인 자아를 가질 수 있을까?


정말 아이를 위해 가정을 유지하기로 했다면, 그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생각하기 이전에 부부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하고, 두 사람부터 서로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부관계가 망가져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부부가 이혼한 후에 어느 한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가 받는 상처는 크게 다르지 않다. 불행한 부부관계 속에서 건강한 자아를 가진 아이는 나올 수가 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내가 너 때문에 저 인간이랑 이혼하지 않고 계속 산거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혼을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아이에게 미안해서라도 잘해줬을 것 아닌가?


결혼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법적으로 그 관계를 구속하면서, 상대와 함께 평생 공동체를 꾸려 나가겠다고 스스로 한 약속이다. 그렇다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 간에는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선이 있고,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선이 있다. 인간은 감정에 일정한 수준 이상의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가 회복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상처가 회복되기 전에는 그 상처를 준 사람과 온전한 관계를 형성할 수가 없다.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까지 한 관계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그러한 신뢰가 깨졌다면, 서로 대화하려고 해도 어느 한쪽 혹은 양 쪽이 모두 듣지 않기 시작했다면, 그 선을 넘었다면, 그 관계는 정리하는 게 맞다. 결혼은 기본적으로 본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다만, 결혼을 할 때나 이혼을 할 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모든 것이 상대방의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결혼할 때 상대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지만, 그 잘못된 판단은 적지 않은 경우 본인이 자신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려진다. 그렇기 결혼 또는 이혼하기 전에는 상대에 대해서만 관찰하고, 고민하거나 판단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이혼을 하는 부부들은 두 사람 중 최소한 한 사람, 적지 않은 경우에는 두 사람 모두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결혼을 결정했기 때문에 갈라서게 되는 듯하다.


그런데 결혼생활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맞춰줘야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본인이 상대방에게 맞춰줄 준비는 되지 않은 상태로 결혼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상대방이 본인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거나 최소한 본인이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보다 상대방이 본인에게 더 맞춰주길 기대한다. 결혼생활이 파탄 나게 되는 데는 상대에게도 과실이 있을 수 있지만, 본인의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 상대와 맞춰나갈 준비가 되지 않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절대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없고, 당신이 그런 사람이거나 그런 성향이 강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혼하게 되는 경우, 최소한 다른 사람 탓만 하지는 말자.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 결혼을 하고,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의 압박이 아무리 심하다고 해도 결혼하기로 한 최종적인 결정은 자신이 한 것이다. 등 떠밀려서 결정한 것이라면, 그건 사실 누군가 등을 떠민다고 해서 떠밀리는 자신의 성향 탓이지 상대의 탓이 아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등을 떠밀어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떠밀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하는 것이, 최소한 과거보다는 행복한 미래를 살기 시작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이혼하게 된 것은 당신 탓이다'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당장 본인이 가진 능력치 안에서 상대와 함께 사는 것이 감당되지 않고, 그게 짧은 미래에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면 이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혼을 할 것이라면 최소한 본인이 왜 그렇게 끝이 날 결혼을 결정하게 되었는지를 돌아봐야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이혼에 대해 '당신 탓'이라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혼을 실패로 여기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 실패는 아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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