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풍경. 13화
결혼생활은 그냥 잘 되지 않는다. 부모와 자녀가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밥을 먹으면서 평생 살아도 부모가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들이 자신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이 생기면서 달라지는데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던 두 사람이 한 가정을 꾸리고 만들어 나가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겠나? 연애를 하면서 행복했기 때문에 결혼한 후에도 마냥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연애하면서 서로 엄청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사람도 깨어 잇는 시간의 1/10을 함께 보내기도 힘들다. 그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노력은 '상대는 내가 알지 못한 나와 다른 면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연인, 특히 연애기간이 길었던 연인들의 경우 본인이 상대에 대해 거의 안다고 착각한다. 연애기간이 정말 길었던 연인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헤어지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상대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점들을 너무나 많이 발견하면서 '내가 그렇게 오래 만나면서 이 사람에 대해 이것밖에 모른다면, 이 사람에게 또 어떤 면이 있는 거지?'란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너무 깊었기에 역설적으로 신뢰가 크게 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린 같이 살기 전까지 상대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이 굉장히 많다. 따라서 우린 상대와 내가 부딪힐 때 '그렇지, 나와 다른 면이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과정에서는 '상대를 나의 소유가 아니라 상대 그 자체, 개인으로' 인정하고 존중해 줘야 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란 말 때문인지 적지 않은 이들은 결혼을 하면 상대와 본인이 모든 것을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물론, 부부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있고 공유할 수 있는 게 많을수록 좋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결혼을 해도 개인으로써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영역은 존재한다. 이는 두 사람이 결혼했다고 해서 단번에 두 사람이 하나의 마음과 몸이 될 수도 없고, 현대사회처럼 맞벌이를 하거나 부부가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떨어져 지내는 형태의 가족생활에서는 두 사람 모두 상대의 배우자가 아니라 개인으로 존재하는 영역이 크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래서 결혼한 후에도 개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 난 개인적으로 많은 이들이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너, 내꺼해라'라는 식의 표현을 싫어하는데 이는 그 표현은 상대가 본인에게 종속되고 소유물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부부가 되는 것은 '함께'하는 것이지 누군가의 소유가 되거나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적지 않은 부부들이 이 부분을 잘하지 못하는데, 많은 경우에 이는 두 사람 모두 또는 둘 중 한 사람이 그 가장의 일정과 시간을 본인 중심으로 끌고 나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정을 본인 마음대로만 끌고 나가려는 것은 본인의 시간은 확보하되 상대는 모든 것을 본인에게 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본인이 취미 생활을 토요일 오전에 하니 그 시간은 각자 시간으로 보내자고 하면서 평일 저녁과 주말 저녁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냐고 하거나, 이제 함께 살기 때문에 평일에 매일 서로 보는데 무슨 주말까지 함께 뭔가를 하려고 하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얼굴을 자주 보는 것과 두 사람이 별도의 공간에 시간을 따로 내서 대화를 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상대가 개인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본인의 시간과 맞지 않으면 그에 대한 조율도 함께 해야 하지 그걸 일방적으로 강요해선 안된다.
내가 봤던 가장 인상적인 부부는 두 사람이 여행 패턴이 워낙 다르다 보니 휴가를 각각 따로 여행을 갔다 오기도 하더라. 1년에 딱 1주일씩. 그 외에 주말을 한 번은 아내가 원하는 대로, 남편이 원하는 대로 보내고 아이들과의 시간은 꼭 일주일 동안 휴가를 가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조합해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갖더라. 조금만 마음을 열고 다른 방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면, 부부도 따로 또 같이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함께 상대에게 나를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모두 해야만 한다. 이는 한 사람만 노력하는 관계는 어느 정도 기간은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지만, 그런 노력을 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그런 형태의 노력은 노력이 아니라 희생이기 때문이다. 연세가 드신 분들이 이혼을 하거나 비혼 선언을 하시는 것은 그 관계가 일방의 희생 위에서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결혼하고 두 사람만 있는 상황이 되면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받아온 사람은 더 이상 상대와 함께 있을 이유도 없고, 본인의 삶도 찾고 싶어 지기 때문에 각자의 삶을 살자고 선언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에 대한 [지금까지 잘 참으셨으면서 왜 그러냐]는 말만큼 폭력적인 말이 또 있을까? 지금까지 참았기 때문에 더 이상 참지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지치고 상처 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에.
이혼하는 대부분 부부들은 그 노력을 하지 않아서 갈라선다. 두 사람이 모두 그럴 때도 있지만 때로는 한 사람이 상대가 본인에게 모든 것을 맞추라고 강요해서, 그걸 더 견디지 못하겠어서 갈라서게 될 때도 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두 사람의 다름을 다름으로 존중하고 인정하지 않고, 상대의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데,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부부관계도 다름은 다름으로 존중해주고 그 다름이 구현될 수 있는 영역을 허용해 줘야 두 사람이 함께 다름을 맞춰가면서 가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사람들은 '결혼'이라고 하면 경제적인 부분이나 감정적인 부분과 성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적지 않다.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이 상대방과 본인의 다름을 인지하고 있고, 상대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줄 수 있는가?'이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는 것은 한 가정을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지, 결혼을 하는 순간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은 하나의 가정을 같이 만들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 닮아가면서 일심동체에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진 두 사람이 함께 열심히, 꾸준히 노력한다는 전제 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을 존중하고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본인뿐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라도 결혼을 하지 않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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