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풍경. 11화
지난 글에서는 결혼하면 힘들어지는 이유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쓰고 나서 읽어보니 그 글은 마치 '결혼하지 않아야 할 이유들'에 대한 나열 같더라.
사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생각 없이 결혼을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함께 살고, 어쩌다 보니 아이가 생기기도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결혼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분명하다. 난 그래서 비혼으로 사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한다. 물질적인 측면과 나의 생존이라는 측면만 생각한다면, 눈에 보이는 것만 따진다면, 그리고 인간이 물건처럼 감정이 없는 존재라면, 결혼은 하지 않는 게 맞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해 봐야 한다. '생존'이 아니라 '삶'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신은 쾌락이나 스쳐 지나가는 즐거움이 아니라 '행복'을 언제 느끼나? 좋은 차를 샀을 때, 많은 돈을 벌었을 때, 혼자 여행을 훌쩍 떠났을 때,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우린 작지 않은 쾌락,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쾌락, 즐거움과 행복이 얼마나 갈까? 좋은 차를 소유한 즐거움은 더 마음에 드는 다른 차가 눈에 들어오면 사그러 들 것이고, 돈은 벌어도 벌어도 항상 부족하거나 불안할 것이며, 혼자 떠난 여행도 1년 이상 가면 외로워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배고 고파지면 사라진다.
우리는 이 모든 예시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서 생각해보자. 우린 보통 가족과 함께 오래 쓴 차를 폐기할 때 마음이 아프고, 맛있는 음식을 누군가와 같이 먹었을 때 그 순간이 추억이 되고, 돈을 많이 벌어서 좋아하는 사람과 다양한 것을 할 수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며, 혼자 떠나는 여행도 즐거울 수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의 추억이 아무래도 더 오래, 많이 남는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인간뿐인가? 동물들도 모두 어느 정도는 사회적인 존재고, '관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간의 관계는 인간은 '깊이'를 추구하고,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추억'한다는 점에서 동물의 관계와 다르다. 우리는 그래서 오래 알았던 사람들, 같은 경험을 많이 공유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데, 그럴 때 모든 디테일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자신이 대충 말하면 상대가 날 파악하고 문제를 집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
두 사람이 그런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그만큼 시간, 공간과 이해관계를 많이 공유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가장 많이 쓰는 영역은 사실 회사인데, 회사의 경우 서로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엮여 있기 때문에 그렇게 속까지 온전히 다 터놓고 지내는 관계는 그렇게 쉽게 형성되지 못한다.
친구나 동호회에서도 가까운 관계가 형성될 수는 있지만, 그 관계는 서로를 엮어주는 이해관계가 그렇게 크지는 않고,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친구를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완전히 반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나이가 들고,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하기 시작하면 더 분명하게 와 닿는다.
우리가 인간에게 필요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가정'이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시고 형제들이 결혼하지 않았을 때는 그나마 자신이 태어난 가정이 그런 울타리 역할을 해줄 수 있지만, 사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은 의지할 대상이기보단 본인이 어느 정도는 돌봐야 되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그 가정에서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한계가 생기게 된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님은 결국 언젠간 돌아가시게 되어 있다. 그 후에 우린 어디에서 수용받고 위로받는 경험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하지 못했던 취미활동을 하면서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지만 활동이나 일을 통해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는 기간은 각 활동이나 일 별로 5-6년 이상 가기는 힘들다. 20대 중후반에 돈을 벌기 시작해서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취미활동을 시작하고 3-4가지로 취미활동을 돌려막기(?) 하다가 취미활동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재미에 익숙해지고 뭔가 더 새로운 것을 찾을 때, 뭔지 모르겠지만 결핍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점이 보통 40 전후인 듯하다. 개인차는 있지만 싱글들이 보통 40 전후에 결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특히 여자분들의 경우 비슷한 성향의 분들이 취미활동을 같이 하기도 하고, 아예 같이 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분들은 '준가정'과 같은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더라. 그런 관계가 잘 형성되면 결혼을 꼭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는 있다. (남자들은 그런 경우가 매우, 극히 드문 듯하다. 남자들은 서로 으쌰 으쌰를 잘하긴 하지만, 남자들끼리 마음을 나누며 공감하는 관계를 형성하진못하는 듯하다. 나도 남자지만, 그렇기 때문에 난 결혼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필요하고, 남자가 조금 더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고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그런 관계를 형성하긴 굉장히 힘들다. 이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이익이 우선시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즐거움, 쾌락과 행복들은 대부분이 유효기간이 있고, 대부분 깊이가 얕다.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우리는 모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한 공간을 같이 공유하며, 서로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공유함으로써 서로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함께 서로의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린 모두 전쟁터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공동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장 추상적이고 뻔한 표현을 쓰자면 '인간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결혼을 하고 나면 부수적으로 오는 짐의 양은 엄청나게 많다. 여기에 더해서 결혼을 한 상대가 항상 내 편이 되지도 않고,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남만도 못한 가족은 또 얼마나 많나? 많은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힘들어하는 것은, 기혼자들이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혼의 핵심은 '누구와 하느냐'와 '내가 얼마나 성숙한 사람이고 상대에게 맞춰줄 수 있느냐?'에 있다. 그 두 가지 변수에 따라 결혼은 로또 당첨이 될 수도 있고, 지옥행 고속열차가 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글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루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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