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풍경. 10화
우리 시대에 [결혼]은 행복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다. 두 사람 중 최소한 한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어느 정도 있어서 최소한 전세자금이라도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결혼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잘 나가는 사업가나 프리랜서를 제외하면 연봉이 높은 편인 괜찮은 회사에 다녀도 30대 초중반에 연봉이 6-8천만 원 정도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잘 나가는 사람들도 1억 전후인데, 20대 중후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가정한다면 10년 전후를 일해서 집을 살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처음 다녔던 회사의 경우 보너스와 각종 수당을 포함해서 13년 전에 세전으로 수입이 5천만 원이 조금 넘었고, 실수령으로는 4-5천만 원 사이가 됐는데 그 회사에서 '돈을 잘 모은 공식'은 3년에 1억 원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 기준으로 9년을 일하면 3억을 모을 수 있는데 대출 없이 서울 시내에 3억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는 거의 없고, 결혼할 사람이 같은 회사에서 일해서 역시나 돈을 잘 모은 편에 속해서 3억을 모았다고 쳐도 6억인데,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괜찮은 아파트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 공식은 그 회사에서도 [엄청 알뜰하게 돈을 잘 모으는 예외적인 케이스]였고, 내 동기들은 대부분이 3년이 지난 후에 1억을 모으진 못했다더라. 그 회사는 10년 전에도, 지금도 연봉 순위로는 5위 전후를 하니, 대부분 사람들은 자력으로 집을 마련해서 결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뿐인가? 결혼하고 나면 챙겨야 할게 엄청 많아진다. 결혼하기 전에 본인 부모님 챙기기도 힘들었는데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부모님도 챙겨야 한다. 여전히 유교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 시부모님들은 자신의 집안을 중심으로 자녀의 가정이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유교문화가 공식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처가는 양가를 똑같이 챙겨야 한다고 요구한다. 적지 않은 부부들은 이런 문제로 다투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시부모님이나 장인, 장모님도 계신다. 하지만 정말 이상적인 양가 부모님을 둔 커플이라 하더라도 챙겨야 하는 가족행사가 기본적으로 2배 혹은 그 이상으로 증가하고, 아무래도 상대의 생물학적 부모님을 찾아뵐 때는 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보니 두 사람이 결혼하면 신경 쓸게 2배 이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연애를 할 때는 서로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 됐고 일주일에 1-2번 보고 종종 연락하면 됐지만, 결혼한 후에는 더 많은 부분에서 부딪히게 된다. 지인들이 부부싸움을 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싱글의 입장에선 황당한 것들이 많은데, 그건 두 사람이 사실은 그 문제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한 공간에 살게 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그들이 이유라고 말하는 사건으로 인해 터지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치약 짜는 방법, 그릇 정리하는 방법 등으로 인해 이혼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싸우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런 일들은 계기가 될 뿐, 사실은 그전에 두 사람이 처음 한 공간에 살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엄청났던 것이다.
그뿐인가? 연애할 때는 본인이 힘들거나 혼자 쉬고 싶을 때는 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결혼한 후에는 그게 불가능해진다.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상대의 얼굴을 봐야 하고, 혹여나 생활리듬이 달라서 한 사람은 나가서 데이트를 하고 싶은 날 상대는 집에서 쉬고 싶다면 그것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본인의 남편이나 아내가 피곤한 자신을 집에 두고 다른 친구, 심지어는 이성인 친구와 나가서 놀게 되면 그 역시 다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수입이 일방적으로 많으면 이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연애할 때는 수입이 더 많은 사람이 '내 연인에게 준다'는 마음에 기꺼이 돈을 쓰던 것도 '한 공동체'가 되고 나면 아이러니하게도 '네가 우리 가정 유지하는데 얼마나 기여하는데?'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괜찮을 때는 그렇지 않지만, 두 사람 간의 갈등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생하게 되면 인간은 욱하는 마음에라도 그런 생각이 들고, 통제가 되지 않으면 그 말이 입 밖으로 나가기까지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사는데 적응하기 전까지는 두 사람 간의 갈등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은 보통 결혼을 하고 나면 서로를 의식하며 자기 관리하는데도 더 게을러지게 된다. 생각해보자. 연애를 할 때 두 사람은 만나러 나가는 당일에 옷과 외모에 신경을 쓰면 됐지만, 우리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상대를 만나지 않을 때는 마음대로 편하게 입고 다니기 때문이 아닌가? 결혼을 해서 한 공간에서 매일 상대를 보는 상황에서, 매일 그런 텐션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텐션 자체가 삶의 일부인 사람들은 다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나마 초기에는 서로 텐션을 그렇게 유지할지 몰라도, 그걸 5년, 10년, 20년 유지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삶이 그런 텐션으로 가득 찬 사람은 상대도 그러할 것을 기대하고 요구함으로 인해 상대를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
혹시 아이라도 갖게 되면 문제는 더 커진다. 경제적으로는 아이에게 들어가는 부담이 적지 않고, 아이는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부모들의 삶은 아이를 중심으로 형성되게 된다. 이는 아이는 연약한 존재고,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싱글로 살 때보다 챙길 일이 2배나 늘었고, 상대와 처음 한 공간 안에 살아서 매일 발생하는 작은 짜증과 갈등들이 축적되고 있는데, 거기에 아이까지 챙겨야 한다? 아이가 커갈수록 금전적인 부담까지 어마어마해지는데? 더군다나 현실적으로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아이를 갖게 되는 것은 또 두 사람 간뿐 아니라 부모와 관련된 갈등도 증폭시킨다. 부모님은 연세가 드셨는데 아이를 봐줘야 할 상황이 되시니 힘들어지시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엄마가 아이를 보는데 시간을 많이 쓰다 보니 처가에서 보통 아이를 많이 봐주는데, 시댁은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 남자네 집이 중심이 될 것을 요구하고, 처가의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필요한 도움은 처가에서 더 많이 주는데 시댁 중심으로 가정이 운영되는 게 비합리적인 것을 넘어서 말도 안 되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만약 부부가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철학이 다르면 이 또한 문제가 된다. 어떤 사람은 5살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고액과외를 시켜서라도 명문대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이는 자연스럽게, 행복하게 키우면 본인의 길을 자연스럽게 찾아갈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여기에서 불일치가 발생하면 아이는 가정을 묶는 역할이 아니라 파탄 내는 역할을 하는데,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아이를 갖기 전과 가진 후의 양육방식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데 있다. 자연스럽게 좋지, 행복이 최고지,라고 말하던 부모들도 적지 않은 이들이 막상 아이가 생기면 아이의 미래가 걱정이 되고, 이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학력이 좋아야 하고, 학력이 좋으려면 지금부터 해야 할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주위 사람들이,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게 가는데 그 안에서 중심을 잡는 건 매우 힘들다.
이처럼 결혼은 두 사람에게 엄청나게 많은 짐을 지운다. 아이를 갖게 되면 그 짐은 2배, 아니 그 이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거나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하는 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국가적, 사회적 손실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선 이러한 현실을 해결해줄 만한 신혼부부와 아이 양육에 대한 지원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지 않나? 우리나라처럼 시장이 작고 사람으로 돈을 버는 국가 또는 사회는 국민들이 결혼을 덜 하고, 인구가 줄어들면 그 타격이 어마어마하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국가] 여서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신혼부부의 주거문제와 아이들의 양육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든 보장해 줘야 할 텐데, 그런 정책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어르신들은 '우리 때는 단칸방에서도 여럿이 살았는데 엄살이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때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고 다른 옵션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본인들이 그렇게 산 것이 그 당시에 행복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아닐 것이다. 왜 하나만 낳아서 잘 살아보자는 운동이 공식적으로 전개됐었을까?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다른 선택권이, 옵션이 있다. 그리고 혼자 살아도 어느 정도는 누리고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안에서 분명해 보이는 행복을 선택하는 게 이상한가? 그분들은 왜 본인들이 힘들었던 것을 다음 세대도 똑같이 겪으라고 강요하시는 걸까? '돌아보니 행복했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이 그때의 힘들었던 감정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경제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하면서 그나마 일을 열심히 하면 확장될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하다못해 은행 이자도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도 끝이 뻔하게 보이는 시대, 0% 금리의 시대를 산다. 따라서 그때는 힘들어도 열심히 하면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우리 시대에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두 시대를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누군가가 명확하게 할 수는 없다. 결혼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을까? 아니다. 이런 엄청난 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은 함께 가정을 꾸려나갈 만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결혼을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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